"퇴사"는 꿈이 아니라 생존
시작은 COVID-19 였다. 그러니까 회사는 급작스러운 바이러스 전투 시대를 맞이하여 대대적인 재택근무 체계를 순식간에 구축하기 시작했고, 관리자들은 집에서 놀지 않고(?) 직원들이 일을 잘 하는지를 어떻게 감시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했다.
어느 날 재택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그 날 마무리해야 하는 사안이 있어서 이메일을 통해 보고서를 팀장에게 상신 했다. 보고를 상신 한 시간은 분명 점심시간 즈음이었는데, 팀장에게 피드백은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왔다. 수화기 너머 울리는 팀장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찢어지고 있었다.
"아니, 문장 끝에 마침표를 안 찍으면 어떻게 해! 기본이 안되어 있어!"
장장 몇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의 내용은 안중에 없었다. 표 안에 기재한 문장 끝에 마침표가 찍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입사 15년차에 기본기 운운하는 퇴짜를 맞아야 했다. 그의 다음말은 더 가관이었다.
"뭘 잘 알고 쓰기는 한 거야?!"
수많은 레퍼런스를 검토했고, 상당히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고민했던 나로서는 팀장의 그 몇 마디가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 자리에 얼음처럼 온 몸이 굳어버렸다. 성대마저 얼어버린 것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날의 그 모욕적인 통화는 빙산의 일각이었고, 그 이후로도 팀장은 툭 하면 재택근무를 할 때 마다 부당한 언행으로 괴롭혔다.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 이슈이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즈음이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먹은 음식은 토하기 일쑤였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엔 잠이 오지 않았다. 출근을 하면, 파티션 너머 팀장의 머리통이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팀장이 나를 부를 때면 명치 끝에 숨이 데롱 데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막혔다.
물론 바이러스 시대 이전에도 나는 팀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런대로 회사를 다녔다. 불만이 없다 라기보다는, 이 일을 던지고 이 직장을 뛰쳐나가서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우직하게 걸어온 지난 15년의 조직생활은 나를 더 무능하고 무지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스트레스성 식도염과 위염으로 미음만 먹으며 두 달을 살았다. 좀처럼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내 몸의 모든 감각과 감정은 바삭하게 말라버렸고, 툭 치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나는 눈 앞에 "퇴사" 라는 단어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