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밖의 세상에서 나를 보다
“퇴사”라는 단어를 책상 위에 꺼내 놓고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나는 얼마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네이버에 “퇴직금 계신기”를 검색해 본다. 지난 3개월간의 급여와 1년간 받은 상여금을 조합해서 계산된 퇴직금은 생각보다 적었다.
물론 내가 오랜 시간을 재직했고, 소속된 회사가 마침 급여 수준이 꽤 높은 편에 속하는 대기업 인 점을 감안하자면 네이버 계산기가 알려준 예상 퇴직금은 다른 분야에 비해 높은 수준일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남은 대출의 상당액을 상환할 수 있는 수준의 퇴직금을 기대했기 때문에 모니터에 또렷하게 찍힌 숫자를 보고 눈을 껌뻑 일 수밖에 없었다.
조직에서 보낸 15년 동안 내 나이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무작정 열정을 가득 안고 장미 빛 미래를 꿈꾸며 돌연 사직서를 날리기에 나를 지탱하고 있는 삶의 무게가 묵직했다. 퇴사와 동시에 생활수준이 곤두박질 칠 것이 눈에 훤히 보였던 것이다. 속도를 조절해야만 했다.
빛의 속도로 이 사무실을 뛰쳐나갈 수 없다면, 나에겐 용기가 아니라 계획이 필요했다. 계획을 위해서는 방향을 잡아야 했고, 방향은 곧 목적지를 뜻했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갈 것 인가. 어디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할 것 인가. 머리 속이 회로가 급격하게 꼬인 것처럼 복잡했다.
그러니까, 머릿속 물음표 뒤에 서 있는 나는 목적지는 커녕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