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트루니에, <외면일기>
심심해서 죽는 것이다.
미셸 트루니에, <외면일기> 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재미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밑줄 감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사실 빌려온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엄격하게 말해 매너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쩐 일인지 10권 중 4권에는 누군가가 쳐 둔 희미한 연필 밑줄이 듬성 듬성 먼지처럼 앉아 있곤 한다.
누군가 밑줄 친 문장을 바라보면 어떤 때엔 내 마음 같기도 하고, 어느 날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기도 하는데, 오늘은 후자에 해당되는 날이었다. <외면일기>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다. 우리 도서관엔 비치된 도서가 없어서 타 도서관의 장서를 상호대차 서비스를 신청해서 읽고 있는데, 이 오래된 도서엔 한 명의 독자로 추정되는 이의 밑줄 흔적이 군데 군데 보인다.
오늘 나는 그 흔적들 중 일부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왜 이 문장에 밑줄을 친 것일까? <심심해서 죽는 것이다.> 라는 문장에 밑줄을 친 누군가의 감상을 상상하다, 문득 그 독자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심심해서 죽는 지경에 이르는 심정을 이 밑줄 친 독자는 알고 있는 자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약 나의 예상이 맞다고 한다면, 참 슬픈 일이다.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 내게는 곧 외로움의 극단에 처한 표현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외면일기를 읽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직면하게 된 것은 아닐지. 그 외로움의 극한을 표현한 것 같은 문구에서 잠시 숨이 멎듯이 눈길이 멈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란 말인가. 그것은 고독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고독하기까지 한다면 덮어놓고 이건 걷잡을 수 없게 되니까 말이다.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문장에 쳐진 밑줄에 고개를 갸우뚱한 나는 고독할지 몰라도, 외롭진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언젠가 외로움에 사무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오로지 ‘나’만 내 편임을 여실히 자각한 날이었다. 그 땐 가슴에 묻고 또 묻고 있었던 고독을 짊어지고도 아직도 외로운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막연했다.
혹시 나 보다 앞서, 이 책을 읽은 이가 그와 같은 처지라면 애써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길고 긴 생각을 이어 나의 외면일기로 남겨둔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기억해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