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리타, 사라지는, 살아지는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마음이 있다. 이불 안에서 서로가
체온을 다하듯, 땅 속 갚이 웅크리고 있는 씨앗들, 찔끔
자란 수풀도, 늙은 고목 뿌리들도 흙 아래서 손과 손을
견고히 맞잡고 겨울을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의지를 다하는 빈 뜰에도 이제 볕이 내린다.
어떤 날엔 참으로 인간이라 외로웠다.
안리타, <사라지는, 살아지는> 中
*어떤 날엔 참으로 인간이라 외로웠다* 라는 문구가 눈길을 멈추게 했다.
안리타 작가의 글은 어딘지 빼곡하게 우울하던 나의 스무살을 닮았다. 그 땐 토해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글을 썼다. 쓰고 또 지우면서도 매일 쓸 말이 넘치도록 많았다. 감당할 수 없었다.그래서 나는 언제나 노트를 쥐고 살았고, 그 날들의 기록들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문장이 시구 같다. 무심코 펼쳐 든 책에서 익숙한 언젠가의 내 감성을 느낀다는 것은 습관 같은 향수를 겪는 것과 같다.
독립서점에 들를 때마다, 눈에 보이면 안리타 작가의 책을 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모두 다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이해를 넘어선 공감이 있었고, 공감을 뛰어넘는 감수성이 그의 글엔 존재했다. 마치 물에 젖은 손수건 같다. 언제고 스윽 건져내서 손에 힘을 주어 짜내면 온 힘을 다해 머금은 물기를 후두둑 떨어트리고 다시 팟팟하게 메마를 준비를 할 손수건 처럼, 안리타 작가의 글은 그런 묘미가 있다.
사두었던 대부분의 책을 완독하지 못하고, 매번 손에 잡은 채 절반 이상을 읽고 그대로 사장되어 버리는, 아니 어쩌면 책장에 잠식되어 버린 안 작가의 책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이 나오면 매번 사 놓은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