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ynil 안의 vynil
한 시간을 전철을 타고 홍대 앞에 갔는데, 도착해 보니 이차저차 해 하려던 일이 취소되었다.
멀리 왔는데 그냥 집에 돌아가긴 아쉬워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을 기다리며 천천히 걸었다.
요즘은 탱고를 추러 오지 않으면 올 일이 없는 곳이지만, 홍대 앞은 내게 참 많은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장소다.
그림 일을 할 때 처음으로 얻었던 작은 작업실도 이곳 근처였고, 그 이전엔 홍대 옆으로 길게 늘어선 입시 미술학원들 중 한 곳에 다녔고, 이십 대엔 오랫동안 이 거리에서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며 하루 걸러 이곳을 찾았다.
그때 옆옆 자리에서 손으로 그리고 엮은 수첩을 팔던, 동그란 얼굴과 큰 눈이 인상적이던 언니가 문득 생각났다.
그리고 14년 전쯤, 놀이터 아래쪽에서 vinyl이라는 bar를 동생들과 함께 연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 그 가게가 아직 있을까.
아무렇게나 스친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자리로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합정으로 작업실을 옮긴 이후론 놀이터 아래쪽으로 내려온 적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그 길을 걸으니, 오래 잠들었던 감각 하나가 천천히 깨어나는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리의 공기와 냄새, 오래된 간판들, 어둑한 골목의 결이 하나하나 느리게 스며왔다.
밤새 만든 액세서리를 펼쳐 놓고 장사를 하던 그 거리.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드물어,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조금 어긋난 또 다른 시간이 열려 있는 것만 같았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와 조용한 가로등만이 고개를 숙인 채 그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득, 그때의 자리 앞에 도착했다.
기대 없이 걸어왔건만, Bar Vynil의 간판은 그대로였고, bar 안쪽으로 머리가 길고 동그란 얼굴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언니다.
언니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순간, 시간의 문이 흐르듯 열렸다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
17년 전의 조각들이 공기 중에 흩뿌려져 다시 제자리로 모여드는 듯했다.
들어가 무알콜 칵테일을 시켰다. 언니는 날 못 알아보았다.
당연했다. 17년 전, 난 렌즈도 못 끼고, 늘 두꺼운 안경을 쓰던 모습이었으니까.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그제야 알아보며 놀라셨다.
순수한 눈빛도, 약간 느린 말투도 그대로였다.
조금 지나 언니의 남편이 와서 교대를 했다.
오빠도 오래전부터 알던 얼굴이다.
그때 코코어라는 인기 있는 인디밴드를 하던 오빠는, 여전히 같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지금은 언니와 함께 *쩜오구(. 59)*라는 밴드를 한다며 앨범을 내미셨다.
cd 두 장을 집어들고 얼마냐고 묻자, 한사코 그냥 가져가라 하신다.
그러다 “오빠, 저 직장 다녀요…” 하자 그제야 천 원을 깎은 한장값인 만 원만 받으셨다.
여전히, 그 시절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잠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다 일어나려는데, 언니가 작은 귤을 내밀었다.
제주에서 올라온 레드향이라며, 살짝 상처 난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라고.
언니 손끝의 따뜻함이 과일 껍질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다음엔 친구와 같이 오겠다고 말하고 나와, 오랜만에 정처 없이 홍대 거리를 걸었다.
오늘의 일들이 마치 뜻밖의 선물처럼 가슴 깊숙이 쟁여져, 콩닥이는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와서 컴퓨터로 CD를 틀어보려다 실패하고 유튜브로. 59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역시 언니, 오빠다운 소박하고 고운 음악이다.
기억 속 시간과 방금 스친 시간이 한 데 얽혀,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하게 울렸다.
살다 보면 문득 마주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 그런 순간 하나가 조용히 나를 지나갔다.
그 마법 같은 이상한 시간 덕분에, 한동안은 또 살아갈 힘이 생길 것만 같다.
Vynil 안의 vynil. 영수증위에 펜 드로잉.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