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글로 먹고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이번 주 금요일부터 고깃집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면접은 3주 전에 봤고 이미 합격도 한 상태지만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2주나 늦어져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해고되는 경우도 허다하니 운이 좋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조그만 합격 소식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불안과 빈곤 속에서 잠시나마 몸을 가릴 수 있는 얇디얇은 비닐우산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이 참 처량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거대한 느티나무 마냥 여기지는 않았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소식을 들은 내 모친은 절대 안 된다며 화를 냈다.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그런 험한 일을 하냐며 차라리 동생이 하는 알바 같은 일을 하라고 했다. 동생은 낮에는 법률사무소에서 의뢰인을 접대하고, 밤에는 재수학원에서 자발적으로 갇혀있는 학생들을 관리한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의 나는 내 인생 하나 책임지는 것도 벅차서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기계적인 일을 하고 싶다 했다. 살아 숨 쉬며 펄떡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죽어있지만 신선한 고요함을 유지하는 고기를 만지고 싶다 했다. 혹여나 무지한 나로 인해 요상한 길을 걷게 될 학생이 생기느니 기름이 잔뜩 낀 그릇이나 닦고 싶다 했다.
내 부친은 그렇게 알바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말했다. 자퇴를 못 해 퇴학을 꿈꾸는 내게 공부를 하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물론 그가 말한 공부가 학과 공부만을 의미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알바 역시 인생 공부의 한 면 아니겠는가.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꾸역꾸역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오로지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함임을. 그는 차라리 네가 좋아하는 글을 쓰라고 했다. 그는 모를 것이다. 내게는 타인의 고기를 구워주는 손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훨씬 무겁게 느껴짐을, 그 중압감을 견디기 위해 밤마다 몸서리치고 있음을.
올해 스물다섯, 한 건 드럽게 없는데 나이만 잔뜩 먹었다. 그간 돌아보니 참 많은 알바를 해왔더라.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온갖 알바를 시작했다. 옷도 팔고 카시트도 팔고 젖병도 팔고 맥주도 팔고 화장품도 팔고 고기도 팔고 나도 팔았다. 혹여나 몸을 팔았다고 오해하지는 말기를, 그 정도로 비참하게 무너지진 않았다. 나는 나를 성급하게 팔았다. 내 노동력을 팔았고, 내 언변을 팔았고, 내 시간을 팔았으며 내 자존심을 팔았다.
나는 구매자들에게 꽤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구매자가 외우라는 정보는 모조리 외웠고, 여기까지는 몰라도 된다 했던 정보까지 언급해가며 물건을 팔았다. 타사 제품을 교묘하게 까내리며 자사 제품을 강조하고 유연한 말솜씨로 고객들을 현혹해 판매율을 높였다. 예전부터 시간에 얽매이는 걸 싫어했던 탓에 단기 알바만 고집했고, 그리하여 내 시간에만 맞는다면 다른 알바생들의 잦은 펑크도 잘 메꿔줄 수 있었다. 다소 앳된 얼굴이 흠이었다만 마스크로 가리면 그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파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고객이라는 가면을 쓴 이웃들에게 푸대접받고 쌍욕 먹으면서도 굽실대고 있는 내가 불쌍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연신 죄송하다 말하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집 가는 길에 청승맞게 울고 있는 내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내게는 가혹해진 모습을 본 그 순간, 나는 모든 알바들을 그만두었다. 구매자들은 퍽 아까워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상품을 찾았다. 나는 딱 그 정도의 값어치였을 뿐이고, 비슷한 가격대의 상품은 많았다.
그렇다고 알바가 내게 부정적인 영향만 준 건 아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분명 얻은 게 있었다. 옷을 팔 때는 눈대중으로 타인의 사이즈를 알아보는 방법과 옷이 지닌 나름의 각을 살리는 방법을 배웠다. 카시트와 젖병을 팔 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조를 체화하고 부모에게 능청스럽게 말을 거는 방법을 배웠다. 맥주를 팔 때는 한적할 때 남몰래 시음용 맥주를 홀짝이며 금지된 음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화장품을 팔 때는 시즌에 따라 달라지는 화장품의 색감과 제형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고기를 팔 때는 각종 부위의 명칭과 용도는 물론, 고기를 가장 맛있게 구울 수 있는 적정 온도와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이렇게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집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의 고깃집.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열다섯 시간 동안 고기를 굽고 반찬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겠지. 맡은 일을 다 해내면 다소 깐깐해도 선해 보이는 사장님이 시간당 10,500원이나 준다. 완성하기까지 최소 세 시간에서 최대 스물네 시간이 걸리는 내 글 한 편이 500원에 팔리는 마당에 이 알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는 다시 나를 팔기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억울하지는 않다. 애초에 글로 먹고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 중인 3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 다른 원고나 서평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은 다붓한 공간 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