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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Nov 26. 2020

나는 왜 글쓰기를 멈췄는가

글도 중요하지만, 내 삶이 더 소중해



 하루 일과와도 같았던 글쓰기를 그만둔  어느덧  달이  되어간다. -물론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행위를 그만둔 지는  오래되긴 했다- '연재'라는 과한 이름을 붙이고 나의 글을  내려가던 날들은 행복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  안의 암울한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감히 다뤄본 삶에 대한 이야기. 담아내고 싶은 내용은 많았지만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비루한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만족한 글은 손에 꼽히는 정도였달까.  글이 대중적이지 못한 것일까,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만의 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 의문과 함께 회의감이 드는 시간이었다. 글을 쓰며 행복했고, 글을 쓰며 우울했다.  역설적인 감정의 병존을 어찌 설명할  있으리.






(좌) 진통제를 비롯한 온갖 수액으로 터질듯이 부어오른 팔   (우) 기념 선물로(?) 받은 담석들. 4~50개 중 몇 개만 골라오셨다고.


 9월에 담낭을 제거했다. 늘 달고 살던 단순한 위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담석이 담도를 막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더라. 병원으로 이송되는 와중에 운 좋게 담석이 알아서 빠져나가 큰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쓸데없이 담석들을 정성껏 만들어 품고 있던 담낭 덕분에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다. 간단한 수술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갔던 모양이다. 일주일 동안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일어나지도 못했고, 운 나쁘게도 움직일 수 있을 수준이 되자마자 개강을 해버렸다. 물론, 이건 애초에 내 체력과 건강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야속하기 그지없더라.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도 높은 일상을 버티는 일은 너무나도 버거웠다.






 보통의 대학생은 4학년이 되면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1, 2, 3학년  필수적인 강의를  수강하고, 4학년에는 최소한의 강의만을 들으며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건 '보통의' 대학생에 한정 이야기. 학사 경고  , 휴학   때린 내게는 -그것도 들으라는 글로벌 경영학과 전공은  듣고 단순히 들어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학과 (동양 어문, 한국 어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 전공만  멋대로 수강한-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초과학기생이 되어버린 나는 어떻게든 졸업을 앞당기기 위해 이번 학기를 전공 수업으로  채워버렸고,  결과 지옥을 맛보았다. 이렇게나 보고서와 팀플이 넘쳐나고 수업 내용이 방대하다니.  뇌가 따라갈 수는 있는 수준인지 의문스럽더라. , 대체 어떻게 대학생이  거지?






그냥 대충 열심히 하라는 거 하고 살았다는 사진들


 무리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리하고 있었다. 이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지쳤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뭐가 어떻게 되려고 했는지, 대학 생활 내내 배워온 '경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블록체인데이터 사이언스에 관심이 생겨버렸다. 잠을 줄여가며 학회 활동을 이어가고, 혼자 세미나를 듣고, 논문을 뒤적거리는 날이 계속되었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분야였지만 그만큼 내 '능력'의 부족을 체감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c언어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블록체인을 기획한다? 그건 숟가락으로 터널 파는 행위와 비슷했다. 데이터 분석의 경우도 c언어를 몰라도 통계 지식만 있다면 충분히 분석 및 해석할 수 있는 여러 툴이 있지만, 본질적인 개념을 공부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관심 따위 꺼버리고 최대한 전공을 살려 경영으로 빠지느냐, 미친 척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느냐.






 이 과정에서 배제된 것이 바로 '글'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었는데, 막상 정말 힘든 순간이 찾아오니 가장 먼저 내려놓게 되더라. 글 한 편을 쓰면서 주제를 고민하고 퇴고하고 문제가 될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그 모든 과정이 은근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물론 그만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글쓰기를 중단한 날에는 뭔가 해야만 할 일을 하지 않은 찝찝함에 몸서리쳤지만, 다음 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글을 쓰던 시간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 오히려 불안함이나 초조함이 사라지니 편안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자 적응의 동물이라니까.






 '글쓰기를 멈추겠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스스로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모른다. 더 무리해서라도 연재를 이어가고 싶었고, 설령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만의 글을 계속 남기고 싶었다. 욕심인지 열정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그 애매한 경계 사이에서 나는 글과의 싸움을 지속했다. 글은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완벽해서, 그 경계를 넘어서기란 내게 버거워서, 허점 많은 인간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스스로 부끄럽고 아깝고 화가 나더라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살아야 하니까.






글쓰기, 글쓰기, 글쓰기, 나를 쓰기, 나를 지우기



 글쓰기를 멈춘 지 두 달째. 여전히 건강은 좋지 않다. 수면 패턴은 들쑥날쑥, 하는 일도 중구난방, 새로운 공부는 두렵기만 하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쓰러지기 전에 병원 좀 가라는 말을 입에서 내려놓지 않으며, 동생은 내 모습이 눈 뜨고 돌아다니는 좀비 같다고 하더라. 뭐 어쩌겠어, 잠이 부족하고 고민이 많으면 모든 인간이 그렇게 되는걸.  


 정말이지 내 인생은 어떻게 될지 예측은커녕 예상도 못 하겠다. 내 인생인데 내가 모르면 어쩌라는 거야. 하기야 미래를 다 알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저 내 앞에 놓인 선택지를 고른 후 그에 충실하면 되는 게지. 여태껏 내가 내린 모든 선택에 후회 따위는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나 미련은 남지 않기 마련이고, 지금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덧. 혹여나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Ganesis 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부족한 점이 많아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배우고 싶습니다.


+덧2. 혹여나 서평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다붓한공간 에도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6월에 멈춰있지만, 12월부터 찬찬히 재개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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