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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May 22. 2020

지랄 맞은 일상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하라 하면 하기 싫은 걸 어떡해


 정말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 쓰는 데 무슨 계획이 필요하냐며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로서는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곳에 연재해야 하는 글도 있고, 서평도 간간이 써야 하고, 줄기차게 미뤄온 전공 공부도 해야 되니까. 언제나 욕심이 마음을 앞선다.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게 언제나 베스트인데, 그 할 수 있는 만큼을 가늠조차 못하는 게 나다.




 나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조율한 방법은 ‘연재 중인 원고 몇 편과 단상을 기록하자’였다. 실제로 이 방법은 꽤 효율적이었다. 긴 글로 풀어내기에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다루고 싶은 글감을 만질 수 있었고, 연재 원고를 올리기 위해 다시 읽으며 퇴고 과정을 몇 번 더 거치면서 조금이나마 ‘올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는 믿고 싶고, 믿고 있다.



 

 브런치에 공유하고 싶었던 건 다름 아닌 ‘내 생각’이었다. 단상도, 연재 중인 원고도 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들이니까. 그리하여 단상용 매거진과 월간 연재 매거진을 따로 만들다가 ‘한국인이라면 3 아니면 5 또는 10이지!’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에 빠져 ‘Buen Camino’ 매거진을 하나 더 만들었다. 2017년, 그러니까 내가 22살 때 처음으로 혼자 도보여행을 떠났던 시절의 기록을 담은 매거진. 보수적인 집안이라 외박 한 번 제대로 못해봤던 꼬맹이가 휴학하고 혼자 성지순례를 가겠다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지만, 부모님으로서는 늘 제 멋대로 사는 딸내미를 막을 방법이 딱히 없으셨던 모양이다. <무교 + 체력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의 힘 + 무지식>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우당탕탕 순례길 도전기를 남겨두기로 했다. 그때만큼 정말 마음이 편했던 적은 여태껏 없었으니까.




 언제까지나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기록은 부가적인 요소였을 뿐, 내가 브런치에 담고자 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순례길 관련 글만 조회수가 무지하게 높다던가, ‘Buen Camino’ 매거진만 구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긍정적인 반응은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글을 쓰기 싫어지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내가 진정으로 기록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닌데, 사람들이 이 글을 더 좋아하니 왠지 이런 글을 더 많이 올려야 하는 건가 싶은 의문감이 들었달까. 물론 시험기간인 것도 한몫했겠다만.





 그렇다고 산티아고 기록을 남기지 않을 것이냐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테다.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하는 건 당연하며 나 역시 그 순간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마다 감상에 젖고 추억에 빠지는 순간은 다르니 만약 ‘Buen Camino’를 기다리는 독자님들이 계신다면 조금의(아니 사실 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이다. 내 모든 일들은 (글, 서평, 연애, 과제, 만남, 심지어 카톡이나 이메일까지도) 최대한 늦추고 미루다가 괜찮은 생각이나 영감 따위가 떠올랐을 때 후다닥 처리해버리니까. 한 마디로 겁나 게으른 사람이란 얘기다. 머릿속은 미친 듯이 굴러가는 데 몸은 안 움직이는 케이스랄까. 아마 영혼이 육체를 잘못 찾아온 것 같다. 내가 볼 때 너희는 썩 잘 맞지 않는 것 같단 말이야...




 아무튼 대강 여태껏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이유와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이상한 포부를 내비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지금 내 옆에는 코로나 19로 인한 수많은 대체 과제와 화상 시험용 자료가 쌓여있다. 스무 살 때부터 줄기차게 미뤄온 전공 여섯 과목 공부를 먼저 끝내야 한다. 물론, 시험기간에는 지우개 가루 치우는 것마저 즐거우니 브런치에 더 자주 놀러 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부디 모두 무탈하시기를.


환상적인 듯 환상적이지 않은, 현실적인 독서가 좋다. 어딘가로 홀리는 것 같으면서도 돌아보면 현실이라니까.




+ 덧)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 건 더 싫어하는 내가 자발적으로 독서모임에 나가고, 블록체인 관련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문학적 요소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블록체인을 공부한다니 참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견문을 넓혀가는 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는 이런 뻘글 대신 블록체인이나 P2P, 토큰, 사물인터넷 뭐 이런 얘기들을 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언젠가는 아마 아주 먼 미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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