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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Mar 10. 2020

프라하의 봄을 위하여 (feat. 관광지 소음)

Praha, Česká republika



#1

 
체코는 '내가 바로 동유럽이다!'라고 외쳐대는 것 마냥 누가 봐도 동유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붉게 물든 지붕, 콘크리트는 찾아보기 힘든 도로, 부드럽게 지나가는 트램, 아시아와 유럽의 느낌이 공존하는 사람들까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스타벅스 중 하나라는 프라하성 스타벅스에서


여러 동유럽 국가 중 체코가 가장 마음에 남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나치의 지배를 받고, 이후 공산당과 자유당의 진영으로 나뉘고,
쿠데타로 독재정부가 들어서고, 시민들이 주도한 무혈혁명인 벨벳혁명이 일어나고….
여러모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3.1 운동을 거쳐 자유주의 진영이 자리 잡을 때까지의 한반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더라.



명동과 느낌이 비슷한 바츨라프 광장


북적이는 사람들과 거리마다 가득한 쇼핑몰,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이름을 지닌 노점상이 즐비한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봄을 비롯한 시민운동 및 집회가 일어났던 곳이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외치며 죽어나간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평화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어느 작은 골목길에서



혼자 상상했던 것보다 프라하는 훨씬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크리스마스 시즌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았고

여러 국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과연 지금 프라하에는 봄이 찾아왔을까?
자유주의 진영이 자리 잡았다고 해서 봄이 바로 찾아왔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봄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이 피어나야 봄으로 여길 수 있을까.

무지한 외국인이 본 프라하와 체코 시민이 본 프라하는 확연히 다를 테지.

그들은 지금 봄이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분명 새롭게 돌아오고야 말 프라하의 봄은 외신 기자가 아닌 체코에서 정의 내렸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왠지 체코는 남의 나라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2


내가 관광지 여행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이다.
관광지에 가면 가이드 투어나 패키지여행을 하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랜드마크 혹은 포토존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사진에 집착하는 소음들을 내뱉는다.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이동해 도착한 체스키 크롬로프



여러 수많은 소음 중 이 곳, 체스키에서 들은 소음이 단연 으뜸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자 어머님 아버님, 이제 사진 찍을 시간입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왜 왔죠? 네~~ 사진 찍으러 왔죠!
여기서 사진 찍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뙇 바꾸면 이제 나 지금 동유럽이다! 나 여행 중이다!
나 지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증이 가능한 겁니다. 다들 아시죠?? (네~~~)
자 모델분들 한 줄로 서서 준비하시고, 저한테 핸드폰 주고 가서 포즈 취하시면 됩니다. 아까 우리 버스에서 연습했죠?
자 하나, 둘, 셋! (찰칵) × 3 ... 아버님, 이혼 여행 오신 거 아니죠? 신혼처럼 다정하게~ 어깨에 손 올리고~
자 다음 모델!! 빨리빨리!!! 우리 사진 다 찍고 개인 시간 갖고 이동하려면 시간이 없어요!
한국인한테 시간은 뭐다? 금이다~~ 기다리시는 분들은 미리 포즈 생각해두면 아주 좋습니다~~ 자 다음!



정말 노련한 말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일행이 아니었던 나도 왠지 줄 서서 사진 찍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특유의 능숙하고도 능글맞은 멘트는 내 기분을 아리까리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여행을 해서 과연 조그만 의미라도 찾을 수 있을까,
그냥 현장체험학습을 외국으로 나온 건가,
현장체험학습은 보고 배우는 거라도 있는데.. 돈이 많나 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빠르게 사진을 찍는 와중에 남는 건 무엇일까,
사진 몇 장으로 남기는 추억?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사진 몇 장을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일까..
이런 여러 잡생각들만 가득해졌다.


뭔가에 이끌리듯 남긴 내 모습. 상당히 별로다.



그럼에도 제일 가증스러운 사실은, 나 역시도 누군가의 손을 빌려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는 것.
처음이자 마지막일 랜드마크 도장 깨기 여행에 내 모습을 끼워 넣어 보았는데,
역시 이런 풍경에는 내가 없는 게 제일 아름답다는 사실만 다시 한번 깨닫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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