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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Apr 02. 2020

이색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초록의 분홍의 보라의 붉고도 푸르른 흰 것들


그다지 반갑지 않은 병원 다녀오는 길.
남들이 ‘올 때 메로나’ 하듯이 ‘올 때 맥주’를 외쳐대는 동생이 생각나 발걸음을 돌려 하나로마트에 들렀다.


이색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


입구에서 날 반기는 건 다름 아닌 꽃이 잔뜩 핀 화분들.
옆 가게에 잘못 들어왔나?

아닌데, 내 옆에 카트가 있는데.
저쪽엔 고깃덩어리들이 쌓여있고 

이쪽엔 시퍼런 것들이 쌓여있는데.
여기 하나로마트 맞는데.

KF94 마스크마저 뚫고 들어오는 그 향기에 반해
각각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보라는 듯
형형색색의 모습을 자랑하는 꽃들에 이끌려 다가갔다.


어떤 꽃은 만개했고,
어떤 꽃은 봉우리만 졌고,
어떤 꽃은 봉우리와 만개한 것이 공존했다.
이 어떠한 것들은 분명 각각 이름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불러주기는커녕 기억도 못 하니 미안할 뿐이다.

각 꽃, 정확히는 화분 앞에 꽃말이 적혀있었다.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뜻밖의 꽃말을 마주했다.
<파리지옥 - 유혹>
꽃말을 알고 파리지옥을 보니 아주 매혹적이었다.
언제든지 날 낚아챌 것만 같은 이빨도
금방 다물어버릴 것만 같은 입도
그 안에서 날 녹일 혓바닥도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꽃말은 인간이 꽃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뿐인데,
이에 매혹되어 관심도 없던 파리지옥을 바라본다.
내가 고작 이런 인간이다.

내 생각보다 화분의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다.
3,000원에서 8,000원 사이
초록 지폐 한 장을 지불하면 반려 식물을 들일 수 있다.
계속 바라본다
계속해서 바라본다
초록의 분홍의 보라의 붉고도 푸르른 흰 것들을 바라본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카프리



계산대에 들고 간 건 맥주 세 병
결국 반려 식물은 들이지 못했다.
나 하나도 간수 못 하는 데 무슨 반려 식물.
저 화분, 아니 저 꽃, 아니 저 생명체들은
저곳에 있는 게 가장 편할 테다.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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