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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Apr 10. 2020

밤마다 찾아오던 귀신

그, 그녀 어쩌면 그들에 관한 기록


요즘 매일 같이 가위에 눌리고 있다.

 가장 기분 나쁜  잠들기 직전, 가진 거라곤 형상밖에 없는 것들이  희미한 의식을 파고들면서 간사하게도  가족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아버지, 언니인  발걸음 소리까지 내면서 다가와  농락하고 자지 말라고 깨우고 발로 짓밟고.. 지속 시간이 10 이내라는  그나마 다행인가? 덕분에  일주일  잠을  잤고, 두려움이 많아졌고, 잊고 살았던 폭식을 시작했으며 혼자 집에 있는 상황을 극도로 피하게 되었다. 인생 쉬운  하나 없다지만 잠자는 것만큼은 쉬워도 되는  아닌가?

 어제는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독서실 근처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게 돌아온 첫마디는 "예약하셨어요? 당일 진료  되는데". 대꾸할 힘조차 없어 그냥  김에 예약하고 가겠다 했더니 이어지는 말은 "11 13 이후로 가능한데 괜찮으신 거죠?"였다. 마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너보다  힘든 사람들이라는 듯한 무신경한 표정을 짓는 간호사 뒤쪽의 거울에  얼굴이 비췄다. 수척하고 초점 없는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던지. 결국 됐다는 초라한 말만 남기고  돌아 나왔다. 그런 곳에  정신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게 되었는데, 언니는 내게 정신과는 하나의 병원일 뿐이며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아닌가 고민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모친은  몸을 보호할  있다는 불교의 진언을 알려주셨다. 귀신이란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도 덧붙이셨다. 허상이라는 말을 들으니 혹여나 내게 원한을 품었을 듯한 고인이 나를 찾아오고 있는  아닌가 하는 망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인에 관한 얘기는 언젠가 찬찬히 풀어보겠다. 괜히 기분이 나쁘네. 사람은 힘들어질  종교를 찾는다더니, 내가 그런 사람   명이 되어가는  같다. 내가 '' 존재를 믿은 순간은 산티아고에서 죽을 뻔했던   순간뿐이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애인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손등에 생긴 상처를 보고 그가 심각하게 "자해한  아니지? 그런  아니지?  정도일 거라고 걱정  해도 되는 거지?"라고 묻더라.  정도의 범위는 어떻게 정의될  있으며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충분히 견뎌낼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인지 되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웃어 보였다. 사실이다. 나는 약해 보이지만 약함을 드러낼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다.

 이런 글을 공개했다는  자체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음을 의미하니 혹여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죽고 싶어 미칠 지경에는 손가락을 움직일  조차 없으니까. 아무튼  간사한 개불 딱지 같은 것들이 오늘 밤에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영영.




*본 글은 2019년 10월 18일에 노트에 적어뒀던 글이다. 지금은 괜찮다. 이때보다는.



그, 그녀 혹은 그들의 모습을 굳이 그려본다면 이런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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