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녀 어쩌면 그들에 관한 기록
요즘 매일 같이 가위에 눌리고 있다.
가장 기분 나쁜 건 잠들기 직전, 가진 거라곤 형상밖에 없는 것들이 내 희미한 의식을 파고들면서 간사하게도 내 가족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아버지, 언니인 척 발걸음 소리까지 내면서 다가와 날 농락하고 자지 말라고 깨우고 발로 짓밟고.. 지속 시간이 10초 이내라는 건 그나마 다행인가? 덕분에 근 일주일 간 잠을 못 잤고, 두려움이 많아졌고, 잊고 살았던 폭식을 시작했으며 혼자 집에 있는 상황을 극도로 피하게 되었다. 인생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잠자는 것만큼은 쉬워도 되는 거 아닌가?
어제는 학교 갔다 집 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독서실 근처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게 돌아온 첫마디는 "예약하셨어요? 당일 진료 안 되는데". 대꾸할 힘조차 없어 그냥 온 김에 예약하고 가겠다 했더니 이어지는 말은 "11월 13일 이후로 가능한데 괜찮으신 거죠?"였다. 마치 네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라는 듯한 무신경한 표정을 짓는 간호사 뒤쪽의 거울에 내 얼굴이 비췄다. 수척하고 초점 없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던지. 결국 됐다는 초라한 말만 남기고 뒤 돌아 나왔다. 그런 곳에 내 정신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게 되었는데, 언니는 내게 정신과는 하나의 병원일 뿐이며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고민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모친은 내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불교의 진언을 알려주셨다. 귀신이란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도 덧붙이셨다. 허상이라는 말을 들으니 혹여나 내게 원한을 품었을 듯한 고인이 나를 찾아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망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고인에 관한 얘기는 언젠가 찬찬히 풀어보겠다. 괜히 기분이 나쁘네. 사람은 힘들어질 때 종교를 찾는다더니, 내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은 순간은 산티아고에서 죽을 뻔했던 그 두 순간뿐이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애인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내 손등에 생긴 상처를 보고 그가 심각하게 "자해한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지? 그 정도일 거라고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지?"라고 묻더라. 그 정도의 범위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으며 그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인지 되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웃어 보였다. 사실이다. 나는 약해 보이지만 약함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다.
이런 글을 공개했다는 것 자체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음을 의미하니 혹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죽고 싶어 미칠 지경에는 손가락을 움직일 힘 조차 없으니까. 아무튼 그 간사한 개불 딱지 같은 것들이 오늘 밤에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영영.
*본 글은 2019년 10월 18일에 노트에 적어뒀던 글이다. 지금은 괜찮다. 이때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