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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Mar 19. 2020

중도의 길

그 어딘가에 존재할 회색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분법적 사고,
그 속에 자리 잡은 극단적인 사회.
더 이상 우리 사회에는 중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좌파는 빨갱이
우파는 일베
페미니즘은 정신병
안티-페미니즘은 정상인
나이 많으면 꼰대
나이 어리면 애새끼
누군가의 위치는 갑 아니면 을
모든 것은 흑 아니면 백
선 아니면 악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롯한 회색분자.
정치성향은 집권당에 따라 반대 성향으로 기우는 중도 (현재는 중도우파),
페미니즘은 선택적 수용,
나이는 숫자일 뿐,
갑도 을도 아닌 인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회색분자.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완벽할 수 없다.
하물며 대립적인 이념들의 종착지가 일치하는 시점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선택적으로 수용하면 되는 문제다.
굳이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고 외쳐야만 하는가?
자신의 주관을 확고히 하기 전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고뇌할 수 있도록
유연한 사고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회색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뉴스 댓글은 역시 정신건강에 해롭다니까.



가는 빗줄기가 내린 후 도서관 옥상에 비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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