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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창호 Aug 17. 2023

운명의 향수

단편소설- 추리

프롤로그

  이곳은 관악산 남쪽의 도시이다. 경찰서 뒷골목의 양평해장국이란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사람들이 들어온다. 뛰엄 뛰엄 테이블을 건너 식사를 한다. 손님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구석진 곳에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들이 앉아 해장국을 먹는다. 곧 이어 두꺼비 소주가 나오니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숫가락으로 뚜껑을 뻥하고 딴다. 그리곤 그가 한 잔씩 따라 준 후 “자, 우문!”하고 선창하니, 다른 사람들이“현답!”으로 후창하며 소주잔을 댄다. 짠하는 소리가 식당 안을 경쾌히 울린다. 우문현답! 우리들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형사들의 구호인 듯하다. 저녁을 마친 형사들은 각자 집으로 가고자 헤어진다. 그들 중 한 남자가 일찍 돌아 갈 곳이 없는지 우두커니 서 있다. 담배를 한 대 피며 건너편 새로 들어선 신도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다 근처의 스포츠토토점으로 걸어간다. 그가 강명호 형사이다.      

*

“배달입니다.”

“네 고마워요. 여기에 놓아 주세요”

화원에서 배달된 식물을 거실에 놓았다. 그리고 에어컨도 적당히 틀어 놓았다. 이제 사흘만 기다리면 거금이 들어온다. 이게 웬 횡재냐. 민지는 새삼 엄마의 치밀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민지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엄마는 티브이에 나오는 그 가수를 딱 보자마자 외쳤다.

“딸, 저 애 유진이 아냐. 유지라는 가수 말야. 유진이잖아”

“에이, 그 애 죽었잖아. 어떻게 죽은 애가 나와.”

“야, 내가 촉이 와서 그래. 쟤 한번 만나봐라. 유진이가 틀림이 없어.”

  이게 육개월전의 일이다. 티브이를 켜니 가요 경연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계속 틀어 주고 있다. 금년은 가수 유지의 해이다. 그녀는 지난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어 무명가수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부르는 곡은 유지의 신곡 인듯 그녀로선 처음 들어 보는 곡이다. 곡조가 경쾌할 뿐더러 시원한 고음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라 한번만 들어도 아, 잘하네 하는 맘이 드는 곡이다. 

  아 졸립다. 민지는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겨져 잠이 들었다.


                                     *

“강형사, 어디 있어? 또 늦잠인거야. 잘 한다. 이번 근평에서 또 꼴찌면 승진은 꿈도 꾸지마.”

“왜, 이러세요. 지금 가고 있어요.”

박반장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책상위의 아메리카노를 왕창 들이 마신다.

“야, 들어 올 필요 없어. 웬 놈의 형사가 매일 지각이냐. 너 임마 또 토토했냐. 이 자식 이거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어. 폭싹 망해 봐야 정신 차릴래? 야, 바로 현장으로 출동해. 돌연사인듯 한데, 그래도 가봐. 카톡으로 주소 찍어 줄테니, 네비켜고 그리 먼저 가. 어서.”

안양경찰서 강형사는 반장의 전화에 얼굴을 찌푸린다. 웬일인지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유튜브로 이것 저것 보다 보면 새벽 세시가 넘는다. 스마트폰에서 유튜브를 보게 되자 그는 불면증이 생겼다. 밤새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스마트폰이 최고였다. 그가 좋아하는 축구토토 배팅 예상을 듣다 보면 서너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새벽 늦게야 잠이 든다. 그러니 두세 시간 밖에 못자 지각을 밥 먹듯 하였던 것이다. 내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나, 한숨을 쉬며 네비를 따라 소나타를 인덕원역으로 몰았다. 

  아침의 유흥가는 썰렁하기만 하다. 흥청거리던 거리가 조용하기만 하다. 코로나는 언제 종식되려는지 걱정이 된다. 인덕원역 근처는 주차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도로 옆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지하철 출구 앞의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이 곳은 역세권이라 오피스텔 빌딩이 즐비하다. 과천이 바로 위이고 강남과도 30분내라서 교통이 좋은 편이다.  

  현장에는 신참 형사인 김형사가 미리 와 있다. 

“강형사님 오셨습니까. 이 곳입니다.”

김형사는 거실 위를 가리킨다. 한 여자가 외출복을 입은 채 죽어 있다. 이상하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고 집안도 깨끗합니다. 강형사님, 혹시 돌연사 아닐까요.” 

“야, 조사도 안하고, 지문도 안 뜨고 어떻게 알아? 일단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해 봐. 독극물이 나올 수도 있잖아. 사망 시간도 알아야 하니까. 난 CCTV 확인해 볼게.”

침입당한 흔적도 없고 여자 혼자 죽어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김형사는 여기 저기를 살펴보다가 한 시간만에 현장에서 나왔다. 

“김형사, 이 여자, 최근 한 달간 통화내역 뽑아 달래 해.  넌 계속 지키고 있어. 필요하면 내가 핸드폰으로 다시 연락할게, 수고해.”

오피스텔 입구에서 강형사는 최초 신고자를 알려 달라 문자를 날렸다. 곧 반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신고자의 주소와 연락처를 얼핏 본 강형사는 주머니에서 라이타와 담배를 꺼냈다. 숨진 여자는 주민지이다. 37세 미혼이다. 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을까 궁리하며 핸드폰 숫자를 눌러 김사장이란 신고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

  강명호는 내년이면 마흔이 된다. 경찰이 된지 10년이 되었다. 청주가 고향으로 그곳에서 국립대 사대를 나와 3년간 학원 강사를 하다가 경찰이 되었다. 강사 일은 오후 2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끝났지만 밤새 추리소설을 읽거나 새벽까지 술을 먹는 날이 많았다. 학생들만 상대하니 대인관계가 줄어 들고 답답함이 밀려와 경찰직 시험을 보았는데 덜컥 붙어버렸던 것이다. 추리소설에 빠져들어 경찰이 된 게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애들은 2년을 공부했다는데 명호는 한 번에 붙어 버려 얼떨떨했다. 공시보다 낙방한 애들이 너무 많아 누구에게도 한번에 붙었다는 말을 안했다. 전에는 이십대 초중반에 공무원이 된다지만 지금은 어인일인지 이십대후반이거나 삼십대도 있었다. 옛날에 비하면 늦은 나이에 들어 온 셈이었다. 

  그는 근무 시간 이외에는 여자친구도 없어 집에서 혼술 하거나 스포츠토토를 즐겨 한다. 축구 매니아였다. 초등부터 대학 때까지 아마추어 축구부원이었다. 경기에서 가장 많이 뛰어야 하고 패스가 정확해야 하는 미드필더가 그의 포지션이었다. 그런데 5년전 조기축구를 하다 발목 인대를 다친 뒤로 과격한 운동을 못해 축구를 그만 두었다. 그러나 서장에게는 범인 검거 중 다친 것으로 해 공가를 내고 몇 달간 요양을 하였다. 반장이 조기축구 회원이기 때문에 잘 봐 준 것이다. 잘 뛰어야 범인을 잡는데 추격전이 벌어지면 젊은 형사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 이제 형사부에서 다른 부로 가고 싶기도 하지만 승진을 하고 나서 옮기고 싶다. 월급은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준다. 돈 떨어질 때쯤 이것 저것 수당이 나와 근근히 버티고 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축구 토토 승무패의 14경기를 다 맞추는 것이다. 로또는 안 한지 오래이다. 오직 축구 승무패를 맞추려 밤새 이것 저것 분석한다. 대진 팀들간의 상대 전적을 분석하고 부상 선수를 조사하고 최근 성적과 홈이나 어웨이 경기의 승률을 조사한다. 일등이 되길 바라며 매주 배팅하고 있으나 이변이 늘 일어나 적중한 적이 없다. 내일의 세상일도 변화무쌍해 알 수 없고 축구 역시 바람이 제멋대로 불듯 이변의 연속이다. 토토하는 것은 그의 남모르는 비밀이다. 근데 이제 사실 비밀도 아니다. 동료 형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한달 전 회식 때에 지갑이 떨어진 것을 반장이 주워 주면서 지갑 안에 든 토토구매권을 보았던 것이다. 뽀록이 나서 기분이 별로였다. 그 이후 지각할 때마다 반장은 잔소리를 해댔던 것이다. 

강형사는 전화를 마치고 다시 오피스텔 문을 밀고 들어가 관리사무소에서 CCTV 영상 파일을 달라면서 경비를 불러 물어 보았다.

“저, 혹시 어제 1005호에 찾아오거나 방문한 사람 있었나요. 1005호 여자가 죽어 있어서요. 최근 방문한 사람 있는지 물어봅니다. 물론 CCTV 보면 나오겠지만 말입니다.”

“아, 네, 어제 저녁에 꽃집에서 배달원이 화분 2개를 들고 갔어요. 그 외에는 주인 말고 들어간 사람은 없구요.”

“혹시 1005호 살았던 분 말이죠, 특이한 점이 없었나요.”

“저도 잘 몰라요. 여기서 근무한지 몇 달이 안돼서요. 새벽에 들어오는 건 몇 번 봤지만 말에요. 혼자 사는 것으로 보이고…가끔 어머니로 보이는 부인이 드나드는 것은 봤지만 사생활이라서…잘 모르겠네요.”     

 

                                                                              *

  몇 달전이다. 유지는 노래를 마치고 세트장을 나왔다. 공영방송 녹화는 늘 긴장하기 마련이다. 티브이무대는 밤무대와는 다르다. 밤무대는 심야에 주로 서고 나이트나 카바레에서 노래만 부르면 된다. 때론 춤도 추지만 그녀는 보컬이라서 노래만 신경 써 부르면 된다. 예전에 비해 요즈음은 난폭하게 치근대거나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스토커 비슷한 손님이 없어 좋다. 이에 비해 방송출연은 낮에 하는 라이브나 녹화인데 노래뿐만 아니라 말솜씨와 예능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자주 초대되고 인기가 올라 간다. 방송 출연은 출연료가 적지만 인기를 유지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가야 한다. 방송에 자주 노출될 수록 대중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 연예인은 바로 잊어 먹는다. 그날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그 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너 유진이 아니야? 맞지, 맞구나! 너무 반가워! 나 민지야. ”

유지는 그때 그 여자를 무시해야 했다. 모르는 분이라고. 딱 잡아 떼야 했다. 몰라요, 라고 강하게 말해야 했다. 근데 그녀는 말하지 못하고 놀라움에 그냥 서 있었다. 너무나 당황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면서 후회했다. 메니저를 차에 대기시킨 것을 말이다. 그 여자는 손을 내밀어 유지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녀는 놀라움에 그만 도피하고 싶어 그 여자를 외면했다. 다행히 엘레베이터가 내려와 재빨리 들어갔다.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불안감에 뒤를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그 여자를 아는 체할 수 없었다. 뱀을 피하듯 빨리 차 안에 들어가며 지난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이 머리가 아팠다. 꿈에도 만나기 싫은 어린 날의 슬픔과 고통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

 명호는 주민지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데 몇 시간을 보냈다. 신참에게서 주민지의 통화기록을 받고 최근 일주일간 주민지가 통화한 사람을 정리해 보았다. 가장 많이 통화한 사람은 숨진 주민지의 엄마였다. 주민지의 엄마는 산본에서 룸싸롱 마담을 하고 있었다. 국과수로부터는 주민지의 사망시간이 밤11시부터 새벽 4시 사이라는 답변을 들었고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독가스에 의한 사망이라면 독가스가 화학성분이라 인체에 어떤 흔적이 있기 마련인데 아무런 흔적도 없으니 결국 심장에 이상이 있어 죽은 것이라는 거였다. 원인 모를 죽음은 심장마비 이외엔 없다. 오후 늦게 명호는 김마담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갔다. 십년간의 형사 생활에서 텐프로 룸싸롱이 무엇인지를 대강 알고 있는 명호는 마치 자신이 단골 고객인 양 실장에게 마담을 불러 달랬다. 

“실장님이죠, 이리로 김마담 불러 주세요.”

“무슨 일이시죠, 아직 영업 전이에요. 여섯 시에 오세요.”

“아, 방금 통화했어요. 어서 불러요.”

십분이 지나자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들어 왔다. 그녀는 키가 크고 늘씬했는데 나이가 들어선지 피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젊었을 때에는 꽤 미인이었을 듯했다. 화장이 너무 짙고 요란했다. 가까이 오자 향수 냄새가 확 났다. 명호는 밖에 나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소파에 앉았다. 

“따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조사 좀 할 게 있어 왔습니다. 통화 내역을 보니 어머님과 민지씨가 하루에 열 번 이상 통화한 적이 종종 있더라구요. 최근 한달간은 거의 매일 했던데 무슨 일로 요즈음 통화를 많이 하셨는지요?”

  “모녀지간에 매일 전화할 수 있는 거지요. 사실 그 애는 내 딸인 동시에 내 밑에서 일하는 새끼 마담이에요. 그래서 업무적으로 매일 통화 하는 것이죠.”

“그럼, 그렇다고 합시다. 하나만 더 물어 보죠. 따님이 최근 가수 유지라는 분과 자주 통화했네요. 한번 통화를 하면 오래했더라구요. 민지와 가수 유지가 무슨 관계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세요. 어머님이 말을 안 해도 카톡 문자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조사해 보면 어머님과 가수 유지와의 관계도 다 나와요. 어서 말해요.”

  카페를 나온 명호는 신참 김형사에게 전화해 가수 유지의 본명을 알려주고 더 조사해야 될 것을 말했다. 민지와 유지가 무슨 관계였는지 더 파 봐야 한다. 김마담은 사실을 다 말해주지 않았다. 현재의 사건은 과거 흔적의 퇴적물이다. 살인 사건이라면 동기가 있는 법이고 그것은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임을 명호는 잘 알고 있었다. 원인 없는 죽음은 이 세상에 없다, 가 그의 경험이었다.      


                                                                                        *

 명호는 유지라는 가수를 알고 있었다. 금년 최고의 인기 가수는 그녀였다. 나이가 37세로 많지만 대중들은 그녀의 노래에 열광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고 방에서 티브이만 보던 대중들은 유지를 보고 80년대 초의 혜은이를 연상했다. 아담한 체형에 귀엽고 예쁜 얼굴에 남자들은 더 열광하였다. 혜은이와 비교하면 차이가 나는 것은 나이가 많다는 거였다. 그러나 긴 무명시절을 겪은 유지는 인생의 스토리가 있어 더 좋아했다. 김형사가 조사해 준 유지에 대한 정보는 빈약했다. 과거의 삶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베일에 쌓인 여가수였다. 명호는 혹시 그녀가 남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호는 유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 가서 탐문하고 싶었다.

“반장님 저 하루 동안 인천 출장을 갔다 오겠습니다. 유지 가족에 대해 조사해 보려 합니다.”

“야, 근데 주민지씨 부검 결과 나왔잖아. 심장마비 돌연사야. 빨리 종결지어라, 응.”

“아, 카톡 문자에 의심되는 게 있어서 그래요. 우문현답이잖아요. 오늘 갔다가 올게요.” 

  명호는 송유진이 나온 인천의 연수구에 있는 학교로 찾아가 유진의 중학생 담임 선생을 수소문하였다. 교육청에 전화해 도움을 받았다. 다행히 세월이 지났음에도 당시 담임 선생은 유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 유지라는 가수가 본명이 송유진이라구요. 성형수술을 했다구요? 유진이가 분명해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명호는 담임으로부터 유진에 대해 이것 저것을 물어 보았다. 담임은 유진이 중학교 때 노래를 잘 부르고 춤도 곧잘 추어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성격도 명랑했는데 중3이 되면서 사춘기가 왔는지 아니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결석이 몇 번 있었다고 하였다. 고교 진학 후에 다른 학생들은 종종 연락이 오곤 했는데 유진에게서는 연락온 적이 없다고 하였다. 명호는 별 소식이 없자 유지가 졸업한 고등학교까지 찾아갔다. 그 곳은 도시임에도 한적한 시골 같은 곳에 자리한 산 아래 있는 여고였다. 학교 주변이 재개발을 하려는지 낡은 구식 주택을 헐어 버리는 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고3때 담임은 이제는 교장이 되어 있었다.

“저 혹시 송유진이라는 학생이 여고 시절에 누구와 친했나요? 혹시 주민지라는 학생과 친했나요? 특이한 점이 있었나요?”

“예, 유진이는 민지와 친했지요. 둘이 듀엣으로 노래를 참 잘했어요. 춤은 민지가 더 잘 추었고, 가창력이야 유진이가 최고였구요. 그 여리 여리한 몸에서 폭발적인 고음이 나와 깜짝 놀랐지요. 슬픈 이별 노래는 딱이었지요.”

“근데 왜 대학 진학을 안 했나요?”

“공부도 못하는 편은 아닌데 입시 상담날 어머님을 불렀는데 유진이 어머님은 무슨 일인지 안 왔어요. 민지 어머님이 그 애들을 가수로 데뷔시킨다고 하면서 대학을 안 보낸다 하더라구요. 그런데 어인 일인지 민지도 유진이도 신인 가수로 데뷰하질 않더라구요. 궁금해서 알아보니 민지 어머님이 싸롱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짐작을 했지요. 애들이 당장의 돈벌이를 위해 밤무대에 다니는구나, 하구요. 십년이 지나도 티브이에서 볼 수 없자, 그러려니 짐작 했어요. 유진이가 아까웠죠. 유진네 집이 망해 민지네 신세를 진다는 소문이 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얼마전에 티브이에서 유지라는 가수를 보고 깜작 놀랐어요. 이십년전의 그 애라는 것을 난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단번에 알았지요. 성형수술로 얼굴은 고쳐도 타고난 목소리 톤은 어쩔 수 없잖아요.” 

“교장님, 민지와 유진의 학생부 좀 복사해 주세요. 협조 요청 공문은 보낼게요.”

학생부를 복사해 주길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을 먹을 때 명호의 핸드폰이 울린다. 신참 김형사로부터이다.

“아, 유지의 최근 통화 발신 목록을 카톡에 넣어 주었다고. 알았어.” 

형사들은 단체 카톡방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카톡을 보고 나서 강형사는 누구를 만나 볼까 생각 중이다. 오늘은 일단 두 명을 만나 볼 계획이다. 가수 유지와 유지의 배후에 있는 사람을 만나 보려 한다. 유지를 만나기 전에 먼저 유지의 배후 인물을 탐문해 정보를 쥐고 나서 유지를 만나야 한다. 강형사는 급히 화원으로 향한다. 그 꽃집은 찾아가 보니 에덴 농원이라는 곳이었다. 화원이 아니라 농원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아 꽃 뿐만 아니라 각종 식물을 재배하고 있는 듯 했다.      


                                                                            *

  이름이 요한이라는 꽃집 주인은 둥근 안경을 쓴 아저씨인데 체격이 작아 실제보다 젊어 보였다. 청바지에 보라색 티를 입은 주인은 화분갈이를 하고 있었다. 수십개의 화분들 옆에 마사토와 배양토와 자갈이 놓여 있었다. 작업에 방해를 할 것 같이 분갈이를 마칠 때까지 화원을 살펴보았다. 온실은 상당히 컸다. 작은 꽃집에서 출발해 시설을 늘린 듯 여기저기 온실이 몇개나 되었다. 신참 김형사로부터 요한이라는 주인에 대해서는 정보를 들어 알고 있었다. 개인정보법 위반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면 절차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확실한 살인 사건이라면 알리바이를 조사하지만 이 경우는 살해 당한 정황도 없어 오리무중이다. 일단 의심스러운 사람을 용의선상에 두고 다 만나 볼 수 밖에 없다. 명호는 요한이 작업을 끝내자 그의 안내로 안쪽의 온실까지 둘러보았다. 바깥의 온실에서는 없는 이상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여름철에도 꽃이 피는 식물들로 안쪽 온실은 만원이었다. 

“사장님, 이것도 파는 건가요. 처음 보는 특이한 식물과 꽃이 많네요.”

“네, 팔기도 하고 제가 개량도 해요. 개량한 것은 일정 기간 못 팔지요.”

“이곳 온실은 향기가 아주 좋네요.”

“그렇지요. 여긴 에덴동산이지요. 각종 특별한 식물과 꽃이 자라는 곳이거든요. 특히 꽃향기는 치유 효과가 좋아요. 꽃향기가 코의 점막에 접촉하면 말초신경에서 전기 신호로 바뀌죠. 그럼 감정을 좌우하는 변연계에 들어가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코로 맡을 수 없을 경우에는 피부에 바르거나 먹는 아로마테라피 요법도 있잖아요.”

명호는 온실을 보고 나서 밖으로 나와 사장과 담배를 피웠다. 사장은 보기보다는 강단지고 목청에서 울림이 나는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저 혹시 가수 유지와는 어떤 사이인가요”

“유지 어머니가 학원을 하였을 때 제가 그 학원을 다닌 적이 있어요. 외국서 2년간 유학하고 돌아오니 국내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 숙제나 시험 볼 때 그 학원을 갔지요. 그 때는 저의 집이 살만했거든요. 필요할 경우 시간제로 선생님들 도움을 받았어요. 원장님 딸인 유지를 알기는 하지만 못 본적 오래 되었어요. 만나 봤다면 카톡에 문자 흔적이 있을 걸요? 조사해 봤을 텐데 왜 묻지요?”

“최근에도 못 받나요. 혹시 두분 연인 아니세요? 나이가 유지씨보다 조금 많잖아요. 조사해 보니 같은 동네서 살았더라구요.”

“그건 맞아요. 학생때 알고는 있었지요. 그 뿐이에요. 화분 주문 오면 전화 받을 뿐이에요. 애인이라고 여기세요? 하하, 웃기군요. 형사님은 세상사가 자기 뜻대로 되나요?”

“외고 나왔더군요. 대학도 좋은 대학 나온 분이 농원을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전공이 생물학이셨네요.”

“아 그거야 뭐 옛날 일이죠. 이제 곧 사십인데요.”

 요한은 자기가 이 농원을 한 게 삼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예전 어머님이 인천에서 꽃집을 운영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 일이 힘드지 않냐는 물음에는 식물학으로 박사논문을 쓰다가 지도교수와 갈등으로 논문을 중단하고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고 한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식물을 가꾸고 새 품종을 개발하는 것인데 조직과 연구비가 없이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명호는 온실 옆에 딸린 방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그 곳에 방이라기보다는 연구실로 각종 책들과 프린트물이 쌓여 있었다.      

 

                                                                                   *

 유지의 매니저는 티브이 녹화 행사가 많아 바쁘다며 경찰서로 출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참고인 조사는 그 대상이 거부하면 출두 명령을 강제할 수 없어 강형사는 유지의 스케쥴을 물어 약속된 시간에 방송국으로 찾아갔다. 유지는 예상보다 체형이 더 작았다.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에 머리카락이 매우 검었고 이마와 눈이 커서 시원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죽은 민지씨와는 엄청 친했다면서요. 민지씨가 죽기 전 한달동안 유지씨와도 통화를 많이 했더라구요.”

“네 통화 한 것 사실이구요. 두 번 만나기도 했어요.”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말 못 해요. 그건 사생활이에요. 십오년이 지난 일이라서 기억하기도 싫고요. 중고생때 친구였어요. 형사님, 사람마다 말 못할 사생활은 있기 마련이에요. 사생활보호법 잘 아시지요? 정 궁금하면 형사님이 파 보세요. 저는 그 얘가 왜 죽었는지 몰라요.”

“민지씨와 듀엣으로 가수 활동을 한 적 있더라구요. 혹시 왜 둘이 헤어졌나요”

“그걸 왜 내가 말해야 하지요? 가수들이 그룹을 만들면 몇 년 못가 해체하는 게 다반사에요. 유명한 그룹이 되면 모를까 말에요. 아마추어 그룹이야 신곡이 뜨지 못하면 힘들죠. 그러니 헤어져 살 길을 찾는 거죠. 그 뿐이에요. 우린 아마츄어 정도도 아니었어요. 죄송하지만 더 드릴 말이 없어요. 형사라고 남의 사생활 함부로 파지 마세요. 걸리는 거 알죠? 여기서 끝내죠.”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 보죠. 화분을 자주 주문했고 통화도 종종 했던데 꽃집 주인과는 어떤 사이죠? 통화 발신 기록에 다 나와요. 사실대로 말해요.”

“그 분이야 알고는 있죠. 이 근처 사람들 그 농원 단골 많아요. 그 곳엔 여러 식물과 꽃이 많잖아요. 아는 사이 일 뿐이에요.” 

“애인인가요?”

“무례하시군요. 제가 대답할 가치가 없어요. 제 애인이 제 대신 죽였다는 말인가요. 어이가 없군요. 전 애인 없습니다. 남자라면 지긋 지긋해요. 조사 좀 제대로 하시죠. 애인이라면 카톡 문자라도 남아 있을 거 아니에요?”

  명호는 유지라는 여가수로부터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보다도 더 잔인한 범죄가 너무 많아 이 사건에 올인할 수도 없었다.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사건을 빨리 종결지어도 문제삼을 수는 없었다. 딸이 죽었는데도 담담한 김마담에게 약간 놀랐기도 했지만 룸싸롱 마담으로 살아왔기에 친딸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하였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형사 생활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반장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대든게 좀 후회되었다. 이제 손을 떼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건이 밀려 있었던 것이다. 어제 명호는 반장에게 불려갔다.

“이봐 강형사, 그 사건 말야, 주민지 사건, 돌연사로보여. 이제 손 떼. 심장마비잖아.”
 “반장님, 통화 내역 조사해 보니 좀 의심스러운 게 있습니다.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수사에 종결이 어디 있어요? 의심스러우면 하는 거지.” 

“야, 너 형사 짬밥 꽁으로 먹었냐? 척 보면 알잖아. 부검결과도 나왔구, CCTV도 문제 없고 말야. 빨리 손떼. 지금은 임마, 과학수사야. 감으로 하면 안돼. 어서 손 떼.”

“반장님, 감이 아니에요. 팩트 체크라구요. 의심 나는 주변인들 조사하는 거라구요.  카톡 보니 돈 거래인지 협박인지 뭐 있더라구요, 이상하잖아요. 법의학이 만능은 아니잖아요. 형사 짬밥이 왜 있겠어요. 우리의 구호가 우문현답, 아닙니까. 미심쩍으면 현장 가서 부딪혀 보라면서요?”

“야, 임마, 그놈의 우문현답을 여기서 써 먹냐. 현장 너무 좋아 하지마, 현장에서 한번에 훅 간다. 정도껏 해. 근데, 시간을 많이 못 주는 것 알지? 더 중요한 사건이 많잖아. 일주일간 조사 해보고, 이상없으면 손 떼. 명령이야. 알지? 살인 사건이라야 전담 팀을 꾸리지. 이건 타살이 아냐. 돌연사야. 비록 젊은 여자라서 이상하지만 말야. 타살이면 부검하면 다 나오는데 타살의 흔적이 없잖아, 안그래? 그럼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다른 살인 사건 조사나 잘해, 임마.”          


                                                                                   *

  이틀간 명호는 현장도 나가지 않고 종일 사무실서 여기 저기 전화하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다른 사건도 조사할 게 많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온 명호는 민지 사건을 정리해 보았다. 민지라는 여자가 죽었는데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다. 국과수 말로는 시체에 아무런 외상과 내상, 출혈도 없다고 한다. 위와 폐 등 모든 장기와 심장 마저 약물 중독이나 쇼크의 흔적도 없다고 한다. 그럼 결국 이 경우에는 심장마비에 의한 돌연사 밖에 없다. 의심이 가는 주변 인물도 없다. 카톡 문자를 조회한 결과도 민지가 죽기 전 가수 유지에게 돈을 받아 내려 했다는 거 이외에는 특이한 사항은 나오질 않는다. 그거야 둘의 채무 관계인지 알 수 없다. 김마담은 유지가 자기들에게 빚이 있다고 했지만 술집 접대부가 진 선불금이란 차용증은 이젠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 그 딴 것은 안 갚아도 된다. 아무래도 다른 것으로 협박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민지는 텐프로 생활을 유지와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죽기 며칠 전에 가수 유지를 만났고 이는 통화 기록에 나와 있다. 가수 유지가 민지와 함께 텐프로에서 고급 작부를 한 적 있지만 그것으론 깜이 안 되었다. 민지는 원인 모를 심장마비로 돌연사 한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고 생각했다. 다만 유지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이상한 느낌은 지워 버릴 수 없었다. 남자를 끌어 당겨 자기를 보호해 주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명호는 이번 주 내에 이 사건을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하며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고 나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가 주말부터 열리는 축구 승무패에 배팅을 하려고 소파에 누워 유투버를 검색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박반장이다.

“야, 강형사, 빨리 김마담 집에 가봐. 그 여자 죽었다는 신고가 들어 왔어.”

  명호는 자기에게 먼저 연락한 박반장의 마음을 안다. 지난해 그보다 늦게 들어 온 윤형사가 경위로 승진했는데 자신은 만년 경사이니 말이다. 경찰은 군대와 같다. 계급이 깡패이다. 더러운 꼴 안 보려면 제 때 승진해야 한다. 그날 밤 반장과 밤새 술을 마시며 아픈 속을 달랬던 것이다. 이제 실적을 올려야 한다. 남들이 포기하거나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내야 근평을 잘 받는다. 이년간의 근평 점수가 높아야 승진 순위가 올라간다. 지금의 근평 점수로는 상위권은커녕 중위권도 어렵다는 것을 그도 반장도 잘 안다. 

  명호는 누구 보다 먼저 현장을 가려고 사건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사건 현장은 백운 호숫가 위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였다. 이 아파트 단지는 백운산 아래에 자리 잡아 주로 중년 이상이나 퇴직한 노부부의 실버타운으로 좋은 곳이었다. 예전의 도로가에는 벚나무가 줄줄이 심어져 운치가 좋아 드라이브를 하기 좋았는데 얼마전에 도로를 넓히자 시골길의 운치가 그만 없어져 버렸다. 라이브 카페가 있는 곳곳에 불빛은 요란하나 코로나로 인해선지 을씨년스러웠다. 시체를 보러 가는 밤길에 명호는 비상 출동과 잠복근무에 찌든 형사과를 벗어나고 싶은 맘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 빨리 보고 와서 토토를 배팅해야지, 하며 명호는 차에서 내렸다. 

  김마담은 소파에 누워 있었다. 마담이 가게로 나오지 않자 불길한 예감에 룸싸롱 실장이 신고를 하였다는 것이다. 김마담 집 역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고 외상도 없었다. 귀신 곡할 노릇이다. 명호는 그 시체를 보자 소름이 돋았다. 혹시 연쇄살인범 아닌가. 딸과 어머니가 어찌 똑같은 모습으로 일주일 사이에 연달아 죽는단 말인가.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푼단 말인가. 

“반장님, 주민지씨하고 똑 같은데요. 집안이 깨끗하고 누구도 침입한 흔적이 없어요. 지문감식은 했구요. CCTV도 내일 오전, 파일 보내라 했습니다.”

“알았어. 혹시 심장에 문제 있던 모녀 아니야? 가족력이 있는지 조사해 봐야겠군. 내일 형사1팀 모두 9시 회의야. 네가 정리해서 보고해.”     


                                                                                 *

  명호는 회의를 마친 후 신참 김형사에게 두 사건의 현장 수거물을 다 가져오라고 하여 하루 종일 분석실에서 보냈다. 국과수에게 부검을 의뢰해 봤자 똑같은 대답을 들을 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절차대로 부검의뢰서를 공문으로 보냈다. 사람이 죽이지 않았다면 누가 죽였단 말인가. 일주일 사이에 모녀가 죽었다. 같은 수업으로 말이다. 어떻게 둘이 자연사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점을 자다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지만 너무 기묘하지 않는가. 반장님 말처럼 가족력이 있는지 병원기록을 찾아 봐도 심장에 대한 검사는 없었다. 명호는 두 사건 현장의 공통분모를 표로 정리하고 체킹 해야 할 것을 붉은 색연필로 동그라미 쳤다. 

  명호는 다음날 신참과 함께 다시 꽃집으로 향했다. 꽃집을 다시 가보니 온실 뒤에 야외 마당이 또 있었다. 거기에도 낯선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야외엔 여름철이라 그런지 꽃이 피어나는 나무는 거의 없었다. 

“혹시 최근 삼개월간 백운호수 대림아파트 103동 504호에 화분 배달한 적 있나요. 장부 좀 보여 주세요.”

“제가 배달하진 않구요. 배달 업체에 맡기죠. 잠깐 기다려 보세요. 장부에 적혀 있나 보게요”

  명호는 신참을 사장에 붙여 놓고 여기 저기를 다니며 지난 번 보다 꼼꼼히 보았다. 처음 보는 꽃이 많은 데 놀랐다. 온실 안쪽에 실험도구가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명호는 요한에게 돌아가서 아예 최근 삼개월간 식물이나 꽃화분을 배달한 장부를 보여 달라고 했다. 요한이 건네 준 장부를 급한 김에 스마트 폰으로 찍어 사무실로 돌아온 명호는 구입자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일일이 조사해보았다. 자주 화분을 배달한 곳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명호는 가수 유지를 도와 주는 누군가가 벌인 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유지 자신도 모르게 도와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진정 유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자보다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에도 현장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맘이 들었다. 살인 사건이라면 돈과 여자문제가 얽혀 있게 마련이다. 가수 유지 정도라면 지극한 순애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불행한 유지에게 익명의 구원자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 말이다. 명호는 자기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 하고 지난날을 생각해 보았다.

  명호는 휴학하고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봄날에 소개팅으로 인숙이를 만났다. 인숙이는 사회교육과생이었는데 졸업반이었다. 교원연수를 한다고 한 달간 괴산의 중학교에 가 있을 때에는 자주 찾아가 화양 계곡으로 함께 놀러 갔다. 인숙이를 좋아했으나 결혼까지는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주사위를 던질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것은 앞으로 자기에게 운명의 여인이 나타날 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운명같은 사랑은 로멘스 영화에나 가능하고 판타지 소설 속의 허구임을 알았지만, 그 때 당시는 정말 몰랐다. 그가 꿈 꾼 한 순간에 뽕 가는 여자는 나이가 드니 점점 만나기 힘들었고 이제는 불혹이 되어 운명 같은 사랑은 낡은 휴지 종이가 되었다. 인숙이는 임용고시에 네 번 떨어졌다. 형편상 노량진 학원가로 갈 수 없어 학원 강사를 하면서 계속 응시했는데 경쟁률이 볼 때마다 올라갔다. 명호의 장래도 불안했지만 인숙이 역시 사대를 나왔으니 교사가 되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끔 만나 영화도 보고 술을 마셨다. 그 뿐이었다. 다들 취업하기가 힘들었다. 비정규직은 늘고 사오정이니 뭐니 해서 한창 일할 사오십대 중년들이 회사에서 짤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여 철밥통이라는 교사나 공무원에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결혼해도 맞벌이를 해야 살 수 있는 경쟁 사회로 변해 있었다. 남녀 모두 직장이 없으면 결혼은 물건너 가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외벌이는 살기 힘든 세상이었다. 사랑도 연애도 낭만도 그저 그렇게 지나가 버렸고 자신은 경찰로 들어 왔고 인숙은 기간제 교사를 하다 아주 늦은 나이에 사회 선생이 되었다. 멀리 있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인연이 거기까지였는지, 또는 세월 따라 사랑도 변해 가는지, 서로에게 결혼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랑을 꿈꾸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카톡으로 보낸 날은 잠복 중이었고 결혼식 날 청주로 내려가 바로 올라와 버렸다. 신랑신부 입장을 일부러 안 보고 말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

  유지의 매니저에게 연락해 가수 유지가 사는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확실한 물증이 없으면 참고인으로 부를 수 없어 우문현답을 뇌까리며 찾아가야 했다. 퇴근을 하면서 명호는 꽃집에서 산 장미 한 묶음을 들고 현관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니 연하게 화장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유지가 보였다. 아마 방금 집에 돌아 왔는가 보았다.

“요점만 묻겠습니다. 꽃집 사장과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다 알고 있다면서 뭘 더 물으세요. 저와 꽃집 주인을 엮으시려나 본 데 전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송유진씨, 숨기지 마세요. 십오년간 무명가수로 있었다고 했지만 조사해 보니 텐프로에서 탑을 달렸더군요. 안 그래요?”

“맞아요, 저 룸싸롱서 술을 팔았어요. 그게 죄가 되나요?”

“물론, 술을 판 게 죄는 안 되지요. 근데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에요.”

“나는 살인을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난 모르는 일이라구요.”

“민지씨와는 친구라 했지만 조사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구요. 특히 민지씨가 유진씨를 교묘하게 괴롭혔더라구요. 협박 받으셨잖아요? 기다려 보세요. 조금 기다리면 당신의 애인이 들어 올 거에요. 그와 당신이 공범이에요.” 

“뭐라구요? 누가 내 애인이라고 그래요?”

“네, 당신 애인요. 잠시 후에 도착할 겁니다. 어서 사실대로 말해요.”

 

                                                                                       *

  유진은 민지와 친구였다.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고 같은 동네라서 같은 중학교와 여고를 다니며 자주 어울렸다. 유진은 노래를 잘했고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귀여운 인상이었다. 유진 아버지는 그녀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성공한 벤처 사업가였다. 유진 아버지는 공대를 나와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직 후 최신 지리정보시스템을 개발하였다. 마침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IMF를 극복한다고 벤처기업에게 정책자금을 쏟아 부을 때라서 기술만 있으면 성공할 가망성이 많았다. IMF로 망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건만 테헤란의 밤거리는 고급 룸싸롱이 늘어나고 전국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들이 돈을 따라 모여 들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자금을 끌여들여 지리정보와 위치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최신 소포트웨어 개발해 성공했다. 지리정보는 차량에 달 경우 네비게이션으로 쓸 수 있고, 또 상하수도와 전선 등의 지하시설물을 관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이어서 도시개발에 필수적인 시스템이었다.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송유진은 남부러울 정도로 잘 살았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자 아버지가 욕망을 절제할 줄 몰랐다. 순식간에 거액의 돈을 벌자 그만 바카라 도박에 빠져 들었다. 홍콩에 오일간 여행을 간 게 화근이었다. 우연히 해 본 바카라에 빠져들어 십일 밤낮을 카지노에서 보내며 인간이 누릴 온갖 쾌락에 빠져들었다. 금단의 열매는 처음엔 달콤했으나 마지막엔 독즙이 줄줄 나왔다. 그 후 잃은 돈을 찾고자 틈날 때마다 남몰래 홍콩과 마카오를 드나들었으나 결국 빌린 돈 마져 다 날렸다. 성공의 탑을 빨리 쌓았건만 더 큰 욕망 앞에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유진 아버지는 자기의 운을 믿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큰 거 한방은 끝내 오지 않고 거액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결국 폐인이 되어 사기죄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진 어머니는 서울과 신도시 학생들의 내신관리를 책임져 주는 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외국에서 유학하다가 귀국한 중고등학생들에게 맞춤식 과외를 제공해주고 비싼 수업료를 받았다. 귀국학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국어였다. 그 애들의 숙제를 대신해 주거나 국영수 등 내신관리를 책임져 주는 학원이 유진 어머니의 학원이었다. 그 학원에는 소속된 강사와 대학원생들이 시간제로 학생들을 지도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 회사를 날렸을 뿐만 아니라 엄마 몰래 학원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것마저도 날려 버리자 엄마 아빠의 싸움이 잦아 졌다. 아파트마저 날라 가자 엄마는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친척들에게도 거액의 돈을 빌려 도박을 했고 결국 친척들은 아버지를 사기죄로 집어넣었다. 당장 어머니의 심장병 수술을 해야 되는데 유진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파트는 경매에 들어갔고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될 처지였다. 돈 한 푼 없게 되었다.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니. 

  그때가 세상 물정 모르던 열일곱 살 무렵이었다. 담임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자기네 집이 망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기 힘으로 어떡하든 일으킬 것을 기도하였다. 병든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야, 라고 다짐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하고 또 해도 구원의 목소리는 없었다. 세상은 너무나 잔인했다. 신은 없었다. 그 어디에도. 병든 엄마를 두고 도망가고도 싶었다. 온갖 생각과 두려움이 유진의 여린 마음을 강타해 그녀를 올라 올 수 없는 미끄러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죽을 수는 없었다. 엄마를 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어느 날 민지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민지가 알려 주었구나, 생각하였다. 

“유진아 학교 끝나고 가게로 와라.” 

민지네 엄마가 싸롱을 운영하는 줄은 진작 알고 있었다. 민지가 데리고 간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민지와는 죽이 잘 맞아 듀엣으로 온갖 노래를 불러 왔기에 자신의 말 못할 고통을 알고 있는 친구는 민지 밖에 없었다.

 유진은 싸롱이라는 곳이 싫었다. 민지와 몇 번 가 본적이 있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 그 곳이었다. 싸롱은 역겨운 곳이었다. 유진은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일단 들어가야 한다. 혹시 돈이 생길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날 밤 민지 엄마는 유진에게 엄마의 수술비를 대신 내 주마, 말해 주었다. 그건 거액이 나가는 돈이었다. 유진은 그날 밤 울었다. 돈이 생겨서 울었고 자신의 앞날이 돈 때문에 어찌 되는지 짐작해 울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어 울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는 현실에 울었다. 교과서나 책에 있는 것이 얼마나 쓸모 없는지 알았고 돈과 세상의 무서움을 알았다.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그 위에 악마가 조종하는 곳으로 보였다. 그래도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야, 하고 다짐을 했다. 

  유진은 졸업할 때까지 민지네의 도움을 받았다. 그 때마다 유진은 차용증을 갱신해 썼다. 그리고 김마담이 부를 때마다 그 음습한 곳에 들어가 귀빈들을 모셔야 했다. 졸업할 때까지. 졸업 후에도 부르면 나가야 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래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만은 고이 간직해 남몰래 노래와 춤 연습을 하였다. 

  그녀는 십오년 이상을 무명가수로 견디었으나 사실 술집 아가씨로 보낸 세월이 더 많았다. 허세부리고 야비하고 야만스런 온갖 남자들을 상대했다. 돈은 현대인의 우상이고 신이었다. 보이는 신이고 보이지 않는 숨은 신 그 자체였다. 예쁜 여자에 대한 짐승같은 욕정 앞에 남자는 허물어졌고, 무서운 돈의 권세에 돈에 굶주린 여자는 아양을 떨고 못 먹는 술을 먹고, 그리고 먹여 매상을 올려야 했다. 물론 마지막은 남자의 욕구를 풀어 줘야 했다. 짐승들에게 깔려 역한 냄새와 술 냄새를 밤새 들이마셔야 했다. 그곳은 죄악의 소돔과 고모라요 번쩍 번쩍 휘황차나 음란한 바벨론이었다. 어린 유진은 ‘미짜’(미성년자)로 통했다. 그리고 가명을 썼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진 선불금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열심히 일을 하면 빚을 다 갚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몸이 아파 결근하면 벌금을 물어야 했고 손님을 받으려면 비싼 홀복과 화장품과 명품옷과 신발과 향수를 사야 했다. 그것이 다 선불금이라는 빚이었다. 착취의 빨대는 가장 연약한 심장에 박혀 쓸모없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피를 빨아 대었다. 

  악의 사슬을 알자 유진은 김마담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나 곧 소개장이와 조폭에게 잡혔다. 김마담은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니?”하는 천연덕스런 말을 들어야 했다.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러나 갚을 수 없는 매트리스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한번 도망을 쳤다. 또 잡혔다. 그러자 소개장이는 “야, ㅆㅂㄴ아, 장사 말아 먹으려고 환장을 했냐? 어딜 도망가 ㅇㄴ아, 빚이나 갚고 뒤져 ㅇㄴ아, 이 ㅆㅂㄴ아.”하며 사정없이 두드려 팼다. 그 날 김마담은 “네가 도망갈 곳 어디도 없어, ㅇㄴ아. 내 돈 받아먹은 놈들이 쫙 깔렸거든.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이 ㅆㄴ아.”하는 등 갖은 욕을 퍼 부었다. 무시무시한 세상이었다.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접대 받고, 접대 받는 권력층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술과 여자로 말이다. 자신은 그 찌꺼기를 먹는 기생충이였다. 악마가 천사를 능욕하는 세상이었다. 그 후 유진은 몇 군데를 팔려 다녔다. 자학과 원망의 나날이었다. 유진은 가는 곳마다 지옥을 보았다.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선불금이라는 빚은 이자가 월 십프로에서 이십프로여서 빚은 점점 더 많아져 갔다. 헤어 나갈 수 없는 현대판 노예였다. 그녀가 바라 본 세상은 한마디로 어둠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남모르는 빚이 늘어나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꽃집 아들 요한을 만났다. 요한은 그녀로 변장해 탈출을 했다. 요한은 탈출 전에 몇 달 동안 유진과 비슷한 몸매를 만들었다. 그리곤 어디선가 유진의 얼굴과 같은 인피면구를 만들어 얼굴에 뒤집어쓰고 가발도 하여 감쪽같이 차를 타고 도망 나왔다. 그 차는 높은 다리에서 바다로 추락했다. 유진을 추격한 소개장이는 실종사한 것으로 여기고, 찔리는 게 있는지 경찰에 신고도 못했다. 이렇게 유도한 것은 요한이었고 이것을 지나고 나서 유진은 알게 되었다. 상처 입은 영혼에겐 무심히 흐르는 세월이 약이었다. 백일을 잠만 자다 일어난 유진은 다 잊고 싶었다. 다시 잃어버린 노래를 하고 싶었다.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뿐이었다. 이젠 유진을 버리고 새로운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유지가 가수로 성공하자 어떻게 연락처를 알게 된 민지가 찾아왔던 것이다.      


                                                                            *

  유진은 민지와 민지 엄마가 살인으로 죽은 것이 아닌데 자꾸 조사하고 다니는 강형사를 이해 할 수 없었다. 

“형사님, 내가 지금 한창 인기인데 왜 죽이겠어요? 그들이 타살 당했다는 증거가 있냐구요. 정말 이상해요. 사이코세요?”

“최근 한 달간 민지 모녀에게서 협박 받았잖아요. 다 조사해 봤어요. 죽은 민지씨는 당신을 질투했어요. 물론 겉으론 친한 척 했지만 어떻게 하면 괴롭히고 망하게 할까 늘 당신을 저주했더라구요. 여기 증거가 있어요.”

강형사는 민지 집에서 압수한 노트 몇 권의 낙서를 보여 주었다.      

유진이를 용서할 수 없어. 오빠를 차지하다니. 복수할거야. 망가뜨려야지.

…유진이네가 망하다니 꼴 좋다.      

“이것은 중학생 때 낙서에요. 삼각관계인지는 모르나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를 당신이 빼앗았다고 생각한 거에요. 그리고 당신 부모님의 행복한 모습에 비해 술장사 하는 자기 집을 보니 열등감에 그만 당신 집이 망하길 바랬지요. 여기 증거보세요.”     

드디어 유진이를 지옥으로 보내 버렸다. 엄마에게 말이다. 나보다 예쁜 그 애가 철저하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다. 난 악녀다…

…엄마는 앞날을 위해 유진의 영상을 날 보고 찍게 했다. 나도 악녀지만 우리 엄마는 정말 악독한 악녀다.      

“이것은 고등학생 때 낙서요. 잘 보이지도 않아 고생했지요. 아마 영상을 보여 주고 당신을 협박했을 거요. 그 영상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텐프로 생활할 때 찍어 놓은 것이라고 짐작돼요. 수십개나 말이요. 협박의 증거가 무어냐구요? 카톡 문자의 큰 거 한장이란 문자요. 10억인지 그 이상인지는 모르나 당신은 일주일내로 마련해 준다고 했지요. 아닌가요?”

바로 그 때 요한이가 들어 왔다. 강형사는 미리 문을 열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은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는 강형사에게 말하였다. 

“형사님이 절 왜 이리로 불렀는지 알아요.”

“요한씨, 대단하네요. 감쪽같이 속을 뻔 했어요. 식물로 사람을 죽이다니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하지요? 타살이라는 부검 결과도 없고, 설령 타살이라 하더라도 내가 죽였다는 증가가 있나요?”

“살해된 분들의 집에 모두 화분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접시꽃이 아담하게 작더라구요. 원래 접시꽃은 늘씬하고 키가 크거든요. 실내용으로 개량한 것으로 보이네요. 그래서 오늘 이 집은 어떤가 하고 와 본 거에요. 여기도 접시꽃이 피어 있더라구요. 요한씨 화원에 보니 접시꽃 배양을 했는지 흔적이 남아 있더라구요. 두 번째 갔을 때 접시꽃 옆에 무슨 꽃인지 모르나 꽃향기가 섞여 있는게 이상하고 또 독특한 향기가 나서 직감적으로 화분(花粉)을 몰래 긁어 왔지요. 국립식물원에서 의뢰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당신이 쓰고자 하는 논문이 무엇이었는지 지도교수와 통화했어요. 그 교수말로는 무슨 꽃향기에서 독성을 추출하는 방법이 논문 주제라 하더군요. 그래서 좀더 향기 전문가에게 물어 보니 꽃향기를 통해 사람을 치유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연구가 네덜란드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내가 여기 장미 한 묶음을 가져다 놓고 어떤가 실험해 보는 중이에요. 국립식물원 분석으로는 화분은 세가지가 6:6:6의 비율로 합성되어 있다고 하더라구요. 접시꽃과 장미꽃은 분명하고 나머지 하나는 알 수 없다네요. 당신이 개발한 신품종인가요?” 

 요한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접시꽃과 장미, 그리고 이름 모를 꽃을 모아 놓고 거기에 서서 잠시 뜸을 들였다. 

“살인의 증거는 없어요. 꽃향기는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거든요. 반반입니다. 죽으면 그 사람의 운명인 거죠. 저는 이렇게 봐요. 악인은 이 세상에 있어요. 현실이에요. 그들은 구제불능이에요. 그렇다고 강제로 죽일 수는 없는 거죠. 하늘에 맡기든 신에게 맡기든 죽을 때인지 아닌 지 운명에 맡긴 것 뿐이에요. 내가 죽인 게 아니란 말이에요. 식물원에서도 알아요. 향수는 여섯 시간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죠. 천연향은 더 빨리 없어져요. 연탄가스 중독사는 폐에 손상을 주어 흔적이 남으나, 천연 향기는 독향으로 변해 심장에 영향을 주어 부정맥으로 죽게 하는 거에요. 흔적 없는 완전 범죄이지요. 법의학은 아직 멀었어요.”

요한의 눈은 점점 붉어지고 그의 작은 체구가 커 보였다.

“아니, 그럼, 어떤 경우에 독가스를 흡입해 죽게 되는 거요?”

“온도와 습도에 따라 변화 무쌍해요. 죽게 되는 경우는 거의 희박해요. 접시꽃 향기의 농도가 그 공간에서 8퍼센트를 차지하고 장미꽃은 5퍼센트가 되어야 해요. 나머지 한 개는 3퍼센트지요. 피보나치 수열의 숫자가 거꾸로 진행돼요. 아직 나도 다 몰라요.”

“당신은 꽃향기가 변연계에 들어가 치료효과가 나타난다 말했는데 조사해보니 심장에 영향을 주더라구요. 실내 온도 18도에 습도가 60퍼센트 내외일 때, 그리고 삭망(朔望)에 꽃향이 진해졌다가 무슨 조화인지 독가스가 분사된다는 것을 당신이 쓰다만 논문에서 알게 되었지요. 불확정성의 원리 같은 거지요. 그 때 ‘픽투스파시오’라는 독향이 뿜어져 나오나 이건 죽이더라도 천연향이기에 흔적이 없지요. 위험한 것이기에 당신 교수는 이 논문의 진행을 막았던 거구요.”

요한은 명호의 말을 잠자코 들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형사님이 말한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타살의 증거가 없어요. 심장마비에 의한 돌연사가 부검 결과 아닌가요. 법의학을 무시하면 안되죠. 타살이 아니니 범인이 없단 말입니다.”

“아니요. 당신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실험해 온 거에요. 그래서 이 근처로 이사 온 것이요. 천연향에 의한 살인이지요. 식물이 살인의 도구가 된 적이 없기에 누구도 의심을 할 수 없지요.” 

 명호는 요한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조사한 요한의 삶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었다.       


                                                                                      *

  요한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꽃집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꽃집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봉사 단체에 자원봉사를 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이고 갈 때마다 두 시간씩 봉사를 하였다. 가게를 비울 때는 알바생을 썼다. 알바생은 주로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교회가 그 봉사 활동에 참여했고, 그 교회 목사를 알게 되었다. 그 교회는 봉사를 많이 해서 각종 상을 받은 교회라 소문난 교회였다. 그 교회 목사는 50대 초반으로 설교가 뛰어나고 친절하여 교인들이 매년 늘어 났다. 요한의 엄마는 봉사 단체 회원들과 그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교회는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교회였다. 엄마는 성경공부에 심취해 교회일에 열심이었다. 구원의 감격이 너무 크다고 하였다.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종말이 온다는 시한부 종말론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 날 엄마는 하얀 옷을 차려 입고 밤12시까지 교인들과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중들림이라는 휴거는 없었다. 불발로 끝나자 엄마는 정신이 황폐해져 공황장애에 걸렸다. 목사가 교인들로부터 받은 막대한 헌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해놓았다는 뉴스도 나왔다. 휴거되어 하늘나라 갈 터인데 지상에 돈을 갖고 있을 필요가 뭐 있단 말인가, 하는 비아냥이 연일 들렸다. 그 목사는 사기죄로 구속되었다. 엄마는 원인 모를 병이 걸렸다. 심장이 쿵하고 뛰면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나날이 여위어 갔다. 터널을 못 들어 갔고 좁은 길도 무서워했다. 운전 역시 할 수가 없었다. 언제 심장이 쿵 뛰면 앞이 안 보인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심장병인지 공황장애인지 원인 모를 병이었다.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아 보았으나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자연히 치료방법이 없었다. 아파트는 이미 교회에 갖다 바쳤고 오직 꽃집만이 남았다. 엄마는 꽃집을 운영할 수 없어 세를 주었다. 월세 받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요한은 학원을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아 밤 열시까지 자습하였다. 종말론으로 시끄러운 그 때가 고2때였다. 일년간 열심히 공부해 신촌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장학금을 주는 사립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재수하기에는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이것이 강형사가 조사한 요한의 이력이었다.     


                                                                                       *

  요한은 외쳤다. 

“내가 죽인 게 아니요. 죽인 것은 식물이 죽인 거란 말이요.” 

“아니요, 당신이 죽였소. 다만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증거는 부족하지만 말이요. 당신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꽃향기가 독향이 되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그 순간의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그럼, 그게 죄가 되요? 증거가 없는 데 나를 기소할 수 있어요? 언제 누가 어떻게 살해를 했다는 시간과 방법과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지 않나요? 증거가 없으면 조서를 작성할 수 없음을 잘 알 거요.”

“당신은 유진씨 엄마의 학원을 잠시 다녔고 그 때부터 유진이를 알고 있었지요. 화원에서 유진씨가 알바를 했다는 증인도 있어요. 유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게 당신 아닌가요?”

 명호는 그가 지금껏 조사하고 추론한 것을 말해주었다. 유진과 요한은 사랑하고 있었고 요한의 사랑이 맹목적으로 보였다. 그 이유를 다 모르겠지만 남녀간의 사랑의 유형이 얼마나 많겠는가. 요한의 사랑은 지극한 것인가, 바보같은 것인가. 팜프파탈에게 속고 있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지난날 인숙이에게 고백하지 못한 것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거실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시원한 물이라도 먹고 싶었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요한에게서 어떡하든 많은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마담의 시신을 부검하고 나니 민지씨와 똑같이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 이것은 정말 돌연사를 가장해 죽인 것이란 결론을 내렸지요. 동일범에 의한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요. 안 그래요? 심장마비는 가족력이 있으려면 어려서 발견되는 것이지요. 이 경우는 아니요. 유진씨는 거액을 주려 했고 김마담과 민지는 협박으로 받아내려 했으니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요? 유지는 직접 죽인 게 아니고 당신이 죽이게 끔 유도한 것이란 말이지요. 뱀을 잡을 때 자기 손으로 잡지 않고 친구 손을 빌리는 것이지요. 안 그런가요. 그리고 당신은 악에 대한 처벌을 꽃향기를 이용해 한 것이지요. 시간은 기나길더라도 말이에요.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지요. 안 그런가요? 운명에 맡긴 거지요. 그런데 정말 우연히 두 명 다 죽어 버린 것이지요. 하하, 안 그런가요?”

명호의 말에 유지는 요한을 보고 확인하듯이 물었다. 

“요한씨, 형사님의 말이 맞나요? 내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알았군요. 내 폰을 감청했나요. 내 카톡을 엿보았군요. 어떻게 그걸 했지요? 왜 그랬죠? 날 위해선가요. 전에는 나 대신에 가발 쓰고 변장하여 바다에 빠지기도 했잖아요. 그 때문에 나는 자유를 얻었지만, 요한씨는 후유증으로 성형수술을 해야 했잖아요. 정말 두 사람을 죽인 게 맞나요. 사실 나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지요. 더 이상 빨대 꽂히고 싶지 않았거든요. 난 노래만 있으면 돼요. 그런데 그들은 오직 나를 돈으로만 보았어요.”

요한은 아무말없이 잠자코 있다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여 주며 광기에 차서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개량한 라일락 꽃이에요. 여름에도 꽃이 피죠. 라일락과 히야신스를 합성한 개량종이지요. 음과 양이 만나면 조화를 이루나 음과 음이 만나면 죽음의 향기가 나지요. 아주 작아요. 이렇게 손에 들고 있어도 돼요. 이 거실엔 얼마 전 죽은 자들이 마신 향기들이 나오고 있지요. 이제 거의 때가 되어 갈 거요. 향기는 십분만 마시면 점점 혼미해져 잠이 들지요. 살아날지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운명인 거지요. 죽으면 아무 흔적도 없게 되지요. 형사님이 이리로 부를 줄 알았지요.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거나 나의 천사를 못살게 하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어요. 김마담 모녀는 내가 죽인 게 아니라 그들의 탐욕이 죽음을 자초한 것이지요. 자기 욕심으로 자기를 죽에 만들었던 말입니다. 안 그런가요. 강형사님이 죽게 된 것은 현장 조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지요.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왜 굳이 조사하느냐 말입니다. 현명한 의문에 어리석은 답이 나온 격이죠. 현문우답이란 말이지요.”

  명호는 아까부터 갈증이 나고 수면제를 먹은 듯 졸음이 밀려 오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자기의 조사가 맞는 것으로 보이는데 타살임을 증명할 수도 없고 살인의 원인 또한 잘 알 수 없는 이상한 운명의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은 추리소설이 될 수도 없어 하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며칠간의 조사가 이렇게 종결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에 묵직한 바위에 맞아 머리가 하얗게 뽀개지는 느낌을 받으며 마지막 숨을 가쁘게 들이마셨다가, 그리곤 고개를 떨구었다. 유지와 요한의 목소리가 꿈인지 환청인지 아련히 들려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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