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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창호 Aug 17. 2023

노인과 죄수

대심문관



    

  그 사람은 하늘로 올라간지 1천오백년후인 15세기에 스페인 세비야에 내려왔다. 그가 강림한 날은 백명의 이단자들이 종교재판에 의해 장작더미위에서 화형을 당한 그 다음날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신의 영광을 위해 종교재판이 도처에서 벌어질 때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승천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강림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보고 싶어 지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의 외모는 천오백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모습으로 3년간 돌아다닐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외모였다. 다만 푸른 눈빛만이 이채롭게 빛을 낼 뿐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자유로이 돌아다녔다. 때론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도 하였고 때론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목청은 깊은 울림을 주었고 묘하게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목소리 톤을 갖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몸과 옷지락에 닿기만 해도 치유의 기적이 나왔다. 그의 말을 경청하던 장님이 무슨 용기를 냈는지 그의 몸을 만지자 눈을 떴고, 죽은 어린 소녀는 그의 달리타 쿰! 한마디에 그만 몸을 일으켰다. 놀란 사람들의 함성을 듣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 왔다. 병든 자들이 너도나도 그에게 몰려가 옷지락이라도 잡고자 아우성이 요란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 90살의 대심문관(大審問官)인 추기경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백발머리를 길게 늘여뜨려 묶고 있었다. 그의 키는 나무처럼 장대했고 몸은 꼿꼿했다. 바싹 야윈 얼굴에 눈은 움푹 파였으나 눈에선 불꽃같은 광채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낡은 수도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보좌관들과 근위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는 사실 맹인이 눈을 뜨고 소녀가 부활하는 것을 현장에서 빠짐없이 보고 있었다. 그는 짙은 회색 눈썹을 찌푸렸다. 그의 눈은 불길한 불길을 내뿜으며 이리저리로 번득이고 있었다. 

  추기경은 손가락을 뻗어 그 사람을 가르켰다.

“저 자를 체포하라.”

  명령대로 근위병들이 그 사람에게 달려들자 사람들은 도망가 버렸다. 일부는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였다. 

“끌고 가서 재판소의 감옥에 가두라.” 

 그 누구도 추기경과 근위병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날 밤이 깊어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짙은 암흑이 깔린 가운데 갑자기 감옥의 철문이 열리고 늙은 대심문관이 몸소 횃불을 들고 감옥에 들어섰다. 추기경은 혼자였다. 그는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 횃불을 탁자위에 올려 놓고 말했다.

“네가 그 자냐? 정말 그 사람이냐?”

그 사람은 아무말이 없다. 추기경은 기다리지 않는다.

“대답하지 말라. 네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넌 왜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 내일 너는 극악한 이단자로서 화형에 처해질 것이다. 오늘 널 보고 환호한 저 민중들이 내 손가락 하나에 널 태우려고 석탄을 들고 네게 달려들거다.”

  그 사람은 아무말이 없다. 추기경은 그가 듣던지 말던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에 한 마디도 반박할 권리가 네겐 없다. 왜나면 지상의 모든 권력은 교황에 위임되었으니까. 너는 다시 올 생각을 마라. 지상의 인간들은 네가 준 자유를 우리에게 갖다 바쳤다. 공손하게 우리의 발 밑에 말이야. 묶고 풀 수 있는 권리를 우리가 다 가지고 있지.”

  추기경은 그자에게서 눈을 떼고 허공을 보고 읊조렸다.

“널 시험한 세가지 질문은 인간 역사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인간은 먹을 빵을 원하고, 고통앞에 기적을 원하고, 부귀와 권세를 원하지, 안 그래? 그건 인간의 필연적인 욕구야. 그런데 넌 이것을 거부했으니 이 지상엔 필요가 없는 존재지. 네가 말한 자유는 관념일 뿐이거든.”

  그 사람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추기경의 말을 듣는지 안듣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추기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자 이제 첫 번째 시험부터 말해 볼까?”

  추기경은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벽을 가리켰다.

“굶주린 자에겐 먹을 것을 주는 게 자유이지 관념의 자유가 무슨 소용인가? 그건 우상일 뿐이야. 생명을 살리는 게 우선이거든. 삶만큼 소중한 게 없어, 안 그래? 살아 있어야 자유를 원하는 거야. 민중은 관념의 자유보다는 먹을 빵을 원해. 자식이 굶어 죽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아비가 아녀. 도둑질을 해서라도 먹을 것을 구해야 해, 안 그래? 자기가 죄를 짓더라도 자식은 살려야해 안그래? 굶어 죽을 형편인데 헛된 자유가 무어 필요해?”

추기경의 눈은 점점 타오르면서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었다.

 “우린 네 이름으로 먹을 것을 준다. 넌 천상의 빵을 약속했지만 굶주린 자에겐 지상의 빵이 우선 필요해. 민중들은 네가 준 자유를 우리의 발아래 갖다 바치면서 이렇게 외치지. 우리를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먹을 것을 주십시요.”

  그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추기경은 알았다는 듯이 왔다 갔다 서성이며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두 번째 시험에 대해 말해 볼까? 넌 사원의 꼭대기에 서 있었지.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지.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아래로 뛰어 내려라. 천사가 널 받아줄 것이다. 그럼 넌 확실히 신의 아들이라는 것이 입증이 된다. 허나 넌 거절을 했지. 아마 넌 뛰어내리는 행동이 신을 시험하는 일로 보고 또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실토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안 그래? 사실을 말해 볼까? 네가 만일 뛰어 내렸다면 네 몸은 산산조각이 났을 거야. 그걸 넌 알고 있었지. 그런 기적은 없거든. 넌 기적을 거부한 거야. 그건 신을 거부한 것과 같아. 그런 신을 넌 안 믿은 거야. 안 그래? 결국 넌 십자가에서도 내려 오지 않았지. 사람들은 말했지.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그러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겠다고. 그런데 넌 결국 내려 오지 않고 죽었지. 기적은 없다는 거 아니겠어? 넌 기적을 바라는 노예로 인간을 여기지 않고, 자유로운 믿음을 주었건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냐. 인간은 약해빠지고 비열한 존재일 뿐야. 안 그래? 인간은 노예가 되길 원해. 영혼이라도 팔아 돈과 권력과 여자를 탐하지.”

  밤기운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추기경은 횃불 가까이 다가갔다. 잠시 뜸을 들이며 불을 쬐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침묵하는 그 자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시험에 대해 말해 볼까? 넌 왜 세상 권세를 거절했어? 권세 역시 신이 주는 거라면서 말야. 우린 이미 8세기 전에 지상의 모든 부귀와 권력을 장악했지. 우리의 출발은 노예였지만 차츰 세력을 뻗어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 노예였을 때에는 가난한 자를 위한 공의와 정의를 요구했지. 하지만 이제 권력을 차지한 이상 지배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지. 신의 이름과 네 이름으로 세계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가고 있지. 대다수의 민중들은 우리가 주는 행복을 달콤해 한다네. 그 미망과 미혹에서 행복하게 죽어 간다네. 우린 죄마저도 너의 이름으로 다 용서해 주거든. 네 이름을 믿기만 하면 말야. 네 이름이 우상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지. 우린 천상의 영원한 보상을 미끼로 그들을 유혹하지.”

  새벽이 가까워지는지 어둠이 차츰 물러가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추기경은 횃불을 들고 그 자에게로 가까이 갔다. 

“넌 내일 손가락하나로 화형에 처 해질 거야. 내 말도 이제 끝났어.”

  노인은 그 자가 무슨 말을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자의 침묵은 노인에게 점점 무거운 짐이 등에 올려지는 듯 꼿꼿한 허리가 조금씩 구부러지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 자는 노인의 핏기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인은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어서 가라. 그리고 다시는 지상에 오지 마라. 두 번 다시 오지 말란 말이다. 절대로!” 

  노인은 죄수를 풀어 주었다. 죄수는 조용히 떠나갔다. 

                                   2023.2.24. 연창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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