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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창호 Aug 17. 2023

달리는 두 사내

<단편소설>마라토너 손기정과 남승룡의 그날의 달리기

달리는 두 사내.

                                                                                                                                  연창호

1. 

 기념관 앞에는 우람한 나무가 서 있다. 참나무이다. 핀 오크라는 대왕참나무인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월계수 나무라고 하면 다들 아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 이슬을 새벽마다 마시며 그 나무는 자랐다. 학교 교정에 심겨진 나무는 소년들과 함께 내기라도 하듯이 쑥쑥 자라났다. 나무가  계절을 갈아타며 잘도 자라듯이 소년들 역시 해가 갈수록 턱의 작은 솜털들이 점차 새까맣게 굵어졌다. 소년들의 콧수염이 밭에서 자란 잡초처럼 까매지듯이 나무 역시 공중으로 팔과 가지를 해마다 높이 쏘아 올렸다. 그 묘목은 독일서 화분에 담겨져 건너온 월계수였다. 교정에 심겨진 작은 월계수는 입학한 소년들과 함께 오년을 보내고 또 새로운 얼굴을 오년마다 보냈다. 학생들은 떠나갔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소년들이 지식과 교양을 시루떡처럼 쌓여가듯이 나무는 영원한 시간을 나무 테에 새기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구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나무는 이제 우람한 나무가 되어 공원의 기념관 앞에 우람하게 서 있다. 

 이제 소년들은 성인이 되고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갔다. 이제 그 나무에 찾아오는 이 거의 없다. 속절없이 세월이 지나면서 그 옛날의 어린 나무와 마라토너를 사람들은 잊어 먹었다. 학교는 강남으로 옮겨지고 이곳 만리동의 옛 학교는 조용한 공원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심코 공원에 들어와서 나무를 지나다가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곤 글을 읽는다. 그리곤 일행을 불러 사진을 찍어 인스타인지 페북인가에 올려 놓곤 했다.     

 8월의 뜨거운 여름날에 경기는 열렸다.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이 말이다. 시베리아 횡단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왔다.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하얼빈을 거치고 모스코바를 지났다. 기차에 오른 지 2주간 내내 화물 기차를 탔다. 중간 중간 역에서 정차할 때마다 기차는 출발신호를 잊어 먹었는지30분을 쉬었다. 그 때마다 난 달리기를 연습했다. 그리고 더운 여름날 결국 목적지인 베를린에 도착했다. 

 10년 동안 달리기를 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자바라는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이다. 그의 다리는 강하고 호흡 또한 고래처럼 길다. 그는 5년간 세계 대회에서 각종 우승을 휩쓸었다. 지난 올림픽 마라톤도 그가 우승했다. 천하무적 마라토너가 그이다. 상대할 자가 없다. 그의 보폭은 일정하고 초반부터 종반까지 늘 페이스를 주도한다. 상대를 옆에 두고 달리며 고무줄처럼 빨리 뛰다 천천히 뛰다 시소처럼 혼란케 하니 그만 상대들이 나가떨어진다. 나보다 시꺼먼 그는 남미계의 혼혈인 듯하다. 신문에서는 이번 대회도 그가 우승하리라 요란하게 떠들어 댔다. 이 자를 이겨야 내가 정상에 선다. 나의 상대는 진정 누구인가. 

 레디 하고 난 후 한발의 총성이 허공에 울린다. 전 세계의 이목이 이 현장에 날아든다. 56명의 건각들이 베를린 도시를 내달린다. 이제 때가 왔다.      


2. 달리기는 내 인생

 나는 뛰면서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왜 달리는가. 내가 존경하는 선생은 김교신 선생이다. 김 선생은 달리기를 할 때 오직 한마음만 품으며 뛰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하나의 마음이 무엇인가.

“기정 군 달리기의 비결을 아는가”

“모릅니다” 

“오직 달리기 하나만 생각하게”

“그게 무어에요?”

“한마음으로 달릴 때 도가 생기지”

 잘 모르겠다. 나는 왜 달리는가.

 나는 누구인가. 희망이 없던 내게 달리기는 나를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신의주의 부모님은 가난했다. 변변한 땅도 없고 그저 날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세상은 암울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화가 날 때마다 들판에 나가 소나기를 맞는 것이었다. 소나기를 맞으면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산천을 내달렸다. 미친 곰이요 미친 호랑이가 나였다. 세상에 대한 분노인지  슬픔인지가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를 억누르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난인가. 나의 못남에 대한 열등감인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인가. 나는 나를 이길 수 없었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이 몰려 왔다가 때론 풀 길 없는 화가 치솟기도 하였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사는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알 수 없었고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며 할 줄 아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이란 눈곱빼기도 없었다. 다만 달리기만이 나를 확인해 주었다. 나라가 망한지 삼년 만에 내가 태어났다는 부모님의 얘기만이 어슴프레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 나를 확인해 주고 나를 알아봐 주는 세계는 달리기였다. 달리기만은 자신이 있었다. 오직 달릴 뿐. 내일은 없다. 오직 이 순간을 달릴 뿐이다. 베를린의 이 시간과 이 공간만이 내게 주어진 순간이다. 순간에서 영원을 달릴 것이다. 빛으로 달릴 것이다. 

 어린 시절 고무신은 귀했다. 검정 고무신이었다. 평상시는 맨발이고 특별한 날만 고무신을 신었다. 학교에서도 맨발이고 고무신을 신어야 할 때를 제외하곤 고무신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가급적 고무가 닳을까봐 들고 뛰었다. 험한 길에서도 맨발이 제일 편했다. 발바닥과 흙바닥이 하나가 되어 착착 내 발길에 뒤로 사라지면 다시 뛰어야 할 새로운 길이 보였다. 보통학교 내내 집에서 학교까지 뛰어다녔다. 겨울날 눈발을 가슴에 맞으며 학교로 내달렸다. 귀빵망이가 너무 시럽다고 하자 어머니가 토끼털로 된 귀마개를 만들어 주었다. 참으로 따스했다. 그 귀마개에 하얀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학교에 도착하면 단단한 고드름이 열렸다. 고드름을 빨아 먹었다. 겨울마다 아버지는 뒷산에서 덮치기를 놓아 토끼들을 잘도 잡아왔다. 그 잡힌 토끼를 어머니는 겨우내 삶아 주었다. 질리진 않았다. 고기라면 없어서 못 먹었다. 하얀 토끼털로는 목도리를 만들어 주고 검은 토끼털로는 귀마개를 만들어 주었다. 겨울을 제외하곤 맨발로 늘 뛰어다녔다. 

 집은 가난했고 부모님을 탓할 줄도 몰랐다. 그저 달리기가 좋았다. 승패가 분명하니까.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으니까 말이다. 복잡하게 잔머리 굴리기 보다는 그냥 단순한 게 좋았다. 가난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육상이었다. 돈이 들지 않는 운동이었다. 맨몸만 있으면 되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엇다. 난 맨발로 달리는 게 좋았다. 어려서부터 발로 밟는 진흙의 흙덩이가 좋다. 나의 달리기의 비결은 사실 맨발로 다져진 발바닥이었다. 다만 장마철의 진창에서는 뛸 수 없었다. 그게 싫었다. 나는 순종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누구든지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박아 버렸다. 이게 나였다.     

 

3. 페이스 메이커를 만나다

 15킬로 왔다. 옆에서 백인 선수의 숨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앞서 자바라가 달리고 있다. 비스마르크 언덕을 지나 하벤 호수가 보인다. 자바라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그 뒤에 누군지 모르나 두 명이 뒤따르고 있다. 내 옆의 백인 선수는 하퍼이다. 하퍼는 키가 나보다 크고 잘생겼다. 나는 그를 보고 처음엔 무성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 너무 미남이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는 열성이 아니라 우성종이라고 생물 시간에 배웠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 중엔 잘 생긴 사람이 많다. 김교신 선생 역시 키가 크고 미남이다. 만능 스포츠맨이다. 농구, 정구, 육상을 잘 하신다. 씨름도 잘하고 팔씨름 또한 당할 자 없다. 열성이 아닌 우성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고 배웠다.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려면 머리가 잘 돌아가야 한다고도 배웠다. 그래서 김 선생은 늘 독서를 강조하였다. 5년간 담임을 하면서 매일 일기 쓰는 것과 독서를 체크하였다. 나의 나 된 것은 사실 김교신 선생 덕이다. 5년간 나를 가장 잘 알고 격려해 준 김 선생이다. 하퍼는 영국 선수인 듯하다. 다른 선수와 달리 여유가 있다. 경험이 많은 듯하다. 하퍼는 나를 제치고 멀리 달려 나가질 않는다. 내가 자바라를 따라 잡으려 뛰쳐나가려고 하니 하퍼가 말린다. 그와 나란히 달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아 감이 좋다. 하퍼를 페이스메이커로 삼아 달려보자는 마음이 든다. 잘 됐다. 오버하지 말자. 승룡이는 보이질 않는다. 저 뒤에서 따라오는 가 보다. 그는 늦게 발동이 걸린다. 나와는 달리기 패턴이 다르다.      

 5월의 봄날에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뽑는 최종선발전이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총독부 학무국에 있는 정상희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 

“손 군 나 좀 보세”

정 선생은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잠을 못잔 듯 눈 밑이 시커멨다. 

“아니 왜 얼굴이 그러세요?”

“말도 마 이틀 밤을 샜어. 일본 올림픽 팀 관계자들과 입씨름 중이야”

“대체 무슨 일인데요”

“일본 놈들이 말야, 꿍꿍이를 벌여. 마라톤 출전 선수 세 명 중 조선인은 무조건 한명 이어야 한다는 거야. 자네는 지난 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 신기록 보유자니 그들도 어쩔 수 없지. 자넨 분명 선발 될 거야. 문제는 승룡이야. 걔를 떨어뜨리려 해. 이번에 승룡이가 1등을 못하면 떨어뜨릴 거야.”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실력과 성적순으로 뽑는 거잖아요.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3명 뽑는 게 맞지 않나요?”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왜 정 선생이 나를 찾아 왔을까 하고 이틀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하고 결단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선발전이 열리는 날에 나는 처음부터 세게 치고 나갔다. 내가 앞으로 치고 나가자 일본인 선수 2명도 뒤를 따라 잡으려고 오버 페이스에 들어갔다. 상대를 오버 페이스로 유도하는 게 마라톤의 승패를 좌우한다. 중반 정도가 되자 일본 선수들은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승룡은 전반에는 죽을 쑤다가 후반에 발동이 걸려 폭주 기관차가 되어 무섭게 돌진해 1등을 차지했다. 작전의 승리였다. 이를 통해 나와 승룡은 마라톤에서 경쟁 상대를 분석해 상대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장단점을 아는 게 우승의 비결이다. 지피지기하면 백전불태라는 것을 김 선생은 지리 수업 시간에 가르쳐 주었다. 

 “근데요 선생님,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죠? 일본 코치들은 우리 조선 선수들에겐 정보를 안 줘요”

“네가 찾아 봐야지. 포기하면 안 돼. 일본 선수가 다 나쁜 선수는 아냐. 스포츠맨십은 서로 통한다, 잘 해 봐”

 승룡과 나는 육상부로 유명한 학교를 같이 다녔다. 졸업 후에도 늘 김교신 선생과는 편지를 교환했다. 종종 김교신 선생은 상대 선수에 대한 최신 정보와 장단점을 편지를 써 매번 보내주었다. 김 선생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하시는 특이한 분이었다. 외국 잡지들을 구독하고 계셨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학교 운동부 학생들을 끌고 나가 각종 대회에 출전시켜 우승을 휩쓸었다. 김 선생은 일본에 유학해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집회에 나가 성서를 배운 후 귀국하여 성서조선을 발간하고 있었다. 


4. 벼랑 끝에서 발을 내딛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인 동시에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혼자서 달리기를 하지만 혼자만 잘 해서는 안 된다. 선수 간에 서로 도와주고 서로 도움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분이 김 선생이었다. 나와 승룡이는 라이벌이다. 서로 지는 것을 싫어했다. 1등을 두고 늘 시소 게임을 했다. 시합에서는 양보 없이 이기고자 했다. 게임에서는 승자만이 희열을 느낀다. 상대를 혼란시켜 그의 마음을 흐뜨려뜨려야 한다. 반면에 나는 항심을 유지해야 한다. 내 페이스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이래야 승률이 높다. 매번 우승할 수는 없다. 전략적인 달리기를 해야 한다. 달리기 코스에는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고 각종 장애가 널려 있다. 이를 뚫고 달려야 한다. 상대로 하여금 작전을 미스하게 만들고 나는 내 작전대로 경기를 해야 한다. 세상사 사는 이치가 마라톤에 다 들어 있다. 그날 나와 승룡이는 만세를 불렀다. 3년 이상 서로 경쟁했지만 앞으로는 서로 도와야 했다.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인이 일본인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선수도 중요하지만 코치도 중요하다. 선수는 자신을 격려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코치가 절실하다.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해보아야 우물 안 개구리로 최고의 선수가 될 수는 없다. 체계적인 훈련과 식단, 상대 선수에 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본 쓰다 코치는 계속해서 조선인 선수를 차별했다. 그는 선수의 실력보다 민족을 가지고 차별한다. 일본인 우월주의자이다. 조선인 1명, 일본인 2명으로 출전 선수를 짜고자 한다. 나와 승룡 중 승룡을 제외시키려 작정하고 있다. 쓰다 코치는 잔꾀를 내어 선수 4명을 베를린에 데리고 가고자 한다. 그런데 마라톤 당일 날에 출전선수는 각 나라별로 3명이어서 한 명은 떨어져야 한다. 그 한 명은 누구일까. 조선인 한명을 기어코 떨어뜨리고자 꼼수를 부린다. 이대로 당할 것인가. 

 사건의 발단은 어느 날 승룡이가 나를 찾아 왔던 데 있다. 마라톤 선배 권태하가 쓰다 코치의 속셈을 승룡에게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조선인 두 명을 올림픽에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코치진의 속셈이었다. 승룡은 나와 밤새 의논했다. 편협하고 비열한 쓰다가 코치로 있는 한 나와 기정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막다른 곳에선 배짱 센 놈이 이기는 법이다. 

“일본 육상협회는 선수가 중요한가, 코치가 중요한가? 조선인을 차별하는 쓰다 코치는 내선일체를 위반하고 있다. 코치를 교체해 달라. 쓰다 코치에게 훈련을 받을 수 없다. 교체해 줄 때까지 무기한 단식하고 훈련은 불참한다. 교체해 주지 않으면 시합에 안 나간다.”

 나는 협회에 겁도 없이 말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일본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일어났다. 선수 생활이 끝장나더라도 할 수 없었다. 백척간두의 벼랑 끝에서 발을 내딛어 허공에 몸을 던졌다. 조마조마하게 그 날 밤을 보냈다.

 세계 신기록을 몇 번 갈아 치운 나이다. 비록 비공인 세계 기록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1등한 승룡이다. 우리는 배수진을 치고 코치 교체를 요구했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정말 선수 생활을 접고 싶었다. 결국 협회는 선수 4명의 투표를 실시했다. 3대 1이었다. 일본 선수 1명도 조선인의 편을 들어 주었다. 스포츠맨쉽은 민족을 초월해 역사한다. 코치를 교체하기로 결정되었다. 쓰다는 베를린을 밟지 못했다.      


5. 최종 선발전이 열리다

 그럼에도 일본은 지독했다. 베를린에서의 일이다. 올림픽에 출전할 최종 명단을 제출하기 5일전의 일이다. 일본 코치가 우리 둘을 불렀다. 

“협회의 방침이다. 너희 둘 중 한 명은 빠져 줘야겠다.”

 나는 말했다. 

“제가 양보하지요”

 코치는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나를 뺄 의도는 아니었기에 당황했다.

“아니 뭐라고? 그게 말이 되냐?”

“아니에요, 제가 양보할게요”

 승룡이도 내게 양보하겠단다. 나는 아니다 하고 승룡이의 주장을 반대했다. 우리는 둘 다 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그렇다. 우리가 서로 양보를 한다고 하자 사토 코치는 난감하였다. 그 결과 올림픽 개막 3일전에 최종 선발전을 치르게 되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욕심을 너무 부리면 망한다. 할 수 없이 실력으로 보여 주어야 했다. 우리는 조선인의 정신력까지도 일본 선수보다 강함을 보여 주어야 했다. 일본 선수 스즈키는 이미 훈련 중에 우리의 작전에 말려 오버 페이스를 하다 그만 몸살에 걸렸다. 그는 15일간 병상에 누웠다. 남은 선수는 시야꾸였다. 

 시합 날이 왔다. 내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시야꾸와 승룡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랐다. 그런데 갑자기 시야꾸가 샛길로 사라졌다가 결승점이 보이는 골목에서 갑자기 뛰쳐나갔다. 약 500미터를 단축하는 지름길인 샛길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건 반칙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승룡은 놀라운 막판 스퍼트로 시야꾸보다 먼저 결승점에 들어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골인한 시야꾸에게 펀치 한방을 날렸다. 

“너 같은 놈도 운동선수냐? 새꺄”

일본 코치 사토가 득달같이 달려왔지만 증인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나도 봤소. 시야꾸가 반칙을 했소. 시야꾸, 솔직히 말하게. 운동선수는 정직해야지. 안 그래. 그게 스포츠맨쉽 아닌가”

 시야꾸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만 반칙을 했어. 미안해.”

 우리들을 이길 수 없다고 본 그가 한순간에 반칙을 했던 것이다. 욕심에 눈이 멀면 이런 일도 생긴다. 어렵더라도 정도를 걸아야 한다. 세상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최종 선발전에서 우린 1, 2등을 했다. 결국 우린 그토록 바라던 마라톤 올림픽 출전을 하게 되었다. 일본 선수를 이기고 말이다.     

 

6. 2인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승룡이다. 한국에서는 1등을 알아주고 2등은 알아주지 않는다. 내 육상 인생은 2인자로 그쳤다. 나는 조용히 스러져야 하고 그는 흥해야 한다. 나와 기정은 동갑내기이다. 1912년생이다. 내가 기정이보다 한 살 위라고 하나 사실 동년배이다. 나는 남쪽의 순천 출신이고 기정은 북쪽 신의주 출신이다. 나는 신중한 성격이고 약간 까칠하다. 남과 북의 먼 거리처럼 기정과 나는 성향이 달랐다. 육상 스타일도 반대였다. 기정은 평안도 사나이로 호방하고 활달했다. 나처럼 장거리로 출발해 마라톤에 입문했지만 달리기 내내 속도가 일정하고 고르게 경기 운영을 했다. 페이스 조절을 잘 했던 것이다. 나는 후반에 강했다. 처음에는 몸이 무겁다. 이유는 모른다. 체질인지 천성인지 모르겠다. 나는 중하위권 뒤에 머물다가 막판에 발동이 걸려야 내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발동이 너무 늦게 걸리면 그 시합에서 죽을 쑤었다. 그러나 일단 발동이 걸리면 거칠게 없었다. 막판 스퍼트는 나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사촌 형이 경남 지역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자 나도 마라톤 선수를 꿈꾸게 되었다. 달리기라면 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학교까지를 매일 뛰어 등교하고 학교가 파하면 냅다하고 집으로 내달렸다. 온갖 스트레스를 푸는 길은 달음박질 밖에 없었다. 나 또한 집안 형편은 기정처럼 가난했다. 먹을 양식은 늘 부족했다. 순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상급 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었다. 그래도 구간 마라톤에는 틈틈이 나가 좋은 성적을 냈다. 일본에서는 구간 마라톤이 인기가 있어 조선에서도 이를 보급하고 있었다. 난 농사일이 싫어 열아홉 살에 상경했다. 협성실업학교를 다니다가 양정고보로 편입했다. 그곳엔 육상부가 있었는데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을 스카우트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기정을 만났다. 기정이나 나나 형편이 도낀 개낀이었다. 우리에겐 육상만이 살 길이었다. 기정과 나는 서로 1등을 다투었다. 육상부 코치가 있었으나 기정과 나는 박물과 지리 과목을 가르치는 김교신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김교신 선생은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육상이나 구기 종목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교내 팔씨름에서도 학생과 선생 모두 김교신 선생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나는 하숙하는 혜화동에서 경성 역 뒤의 학교가 있는 만리동까지 뛰어 다녔다. 전철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기가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고기 한번 실컷 먹고 뛰어 보는 게 기정과 나의 소원이었다. 통학 때 뛰어 가니 30분에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김교신 선생이 자전거를 타고 정릉에서 종로를 관통할 때 나와 기정이는 선생님 뒤를 따라 뛰었다. 5년간 뛰고 뛰는 시절이었다. 그 때가 가장 행복하였다. 달리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나는 4년 전 전국 육상 대회의 장거리 5천 미터, 1만 미터에서 우승했다. 양정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 메이지대로 유학을 간 나는 작년 일본 마라톤 대회 날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달리기 도중에 마라톤 코스에 진입한 자동차에 그만 치여 넘어졌다. 어디선가 자동차가 뛰어 들어 공교롭게도 나를 덮쳤던 것이다.  

“악”

 차에 치여 나가 떨어졌다. 그 순간 머리가 아프고 어디선가 피가 흘렀지만 일어나 뛰어야 했다. 뛰는 게 내 운명이었으니까. 숨이 붙어 있는 한 뛰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차에 치여도 아픈 줄 몰랐다. 그 순간의 결정이 내 운명을 갈랐다. 본능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알린 그리스의 병사 피디파데스처럼 나는 죽기 살기로 달렸다. 달리는 게 운명이었다. 그 당시 기정은 비공인이지만 매번 시합에서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었고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 피를 흘리며 죽도록 뛰었다. 내 운명을 생각하고 뛰었다. 기정에게도 지고 싶지 않고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지고 싶지 않아 죽자고 뛰었다. 1등으로 골인했다. 신문에서는 나를 악바리라고 했다. 그 후 육개월간 재활에 매달렸다. 나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었다. 운동선수는 부상으로 재활을 하다 십중팔구는 운동을 포기했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발목 인대는 끊어지고 무릎 연골의 십자인대는 전후방이 모두 파열되어 버렸다. 회복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고소해 하는 눈길에 지쳐가는 나날이었다. 아무런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를 악물고 재활을 할 수 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선생님, 재활 운동이 너무 힘들어요. 저 이제 운동 그만 둘래요”

 나는 슬픔의 편지를 김 선생님에게 보냈다. 내 아픈 사정을 하소연할 곳이 라곤 그 분 밖에는 없었다. 그건 편지라기보다는 절망적인 유언과 다름이 없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아픈 내 속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었다. 무정한 도쿄에서 나 홀로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보내는 내 절망의 소리였다.  

“승룡아, 재활 운동에는 수영이 제일이야. 효과가 좋아.”

 나는 꼭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다. 김 선생님은 수영장 회원권을 사서 우편으로 보내 주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매일 수영을 하였다. 수영장 물속에서 로프를 잡고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물속에서 걸어 보았다. 한 발 두 발 아이처럼 간신히 걸었다. 점차 통증이 가라앉았다. 3개월 동안 수영을 하니 김 선생님 말대로 역시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난 기적을 믿었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7. 고맙다 굿바이 페이스메이커 

 곧 반환점이 보인다. 나는 하퍼와 여전히 달린다. 하퍼와 함께 순식간에 반환점을 돌았다. 자바라는 보이질 않는다. 어디까지 앞서 가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 그는 정말 바람처럼 저 멀리 앞서서 달리나 보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야 한다. 

 27km 지나면서 하퍼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나는 조금 속도를 내 본다. 하퍼가 따라 붙는다. 나는 다시 속도를 내 본다. 다시 하퍼가 따라 온다. 나는 밀고 당기기를 계속 한다. 따라 붙으면 달아나고 또 따라 붙으면 달아난다. 세상사 한 번에 이루어지는 역사는 없다. 1km를 더 가니 하퍼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고 발자국 소리 잠잠하다. 친구여 이제 너의 소임은 다했다. 정말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였다. 고맙다. 하퍼. 나는 팔을 저어 고마움의 사인을 그에게 보낸다. 아 저기 자바라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찬스를 보고 서서히 따라 잡으면 된다. 자바라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 순간에서 영원으로 치달을 것이다. 어서 오라. 그 순간이여.     

 30km 지점이다. 이제 고통의 시간이 온다. 삶에도 고통이 온다. 아버지에게 고통의 때는 언제였는가. 농사꾼 아들로 태어난 게 운명인가. 농민에게 나라는 무엇이고 임금은 무엇인가. 다들 제 살길을 찾아 갈 데로 가버리고 남아있는 자에겐 고난의 삶이 남아 있다. 온 몸이 부서져라 논과 밭에서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에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식들 공부 하나 시키지 못해 넋두리한들 나아질 게 무어냐. 세상 괴로움을 술로 푼대도 그것이 어찌 풀릴 소냐.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마라토너에게 30km에서 35km 사이가 가장 고통이다. 그만 중도에 주저앉고 싶다. 온갖 생각이 넘나든다. 다리는 무겁고 심장은 터질 듯하다. 숨결은 가빠지고 허리가 구부러진다. 이제 자바라를 거의 따라 잡았다. 

 자바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2km를 내달렸다. 나는 나의 페이스를 이 지점까지 아껴 두었다. 언제 스피드를 폭발시킬지 그 순간을 노렸다. 나는 나의 한계를 안다. 비스마르크 언덕 아래가 반환점이다. 내려 갈 때에는 내리막이나 돌아 올 때는 죽음의 오르막 언덕길이다. 마라토너의 황천길은 후반전 고통의 극점에서 만나는 오르막길이다. 십중팔구 여기서 낙오된다. 이 고통의 극한 후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관성대로 뛸 뿐이다.      


8. 달리기에 호흡법이 있는가

 자바라는 대선수이다. 그는 나를 떨구기 위해 온갖 신공을 펼쳐 보인다. 내가 가까이 가니 그는 달아난다. 다시 따라 붙자 달아난다. 내가 앞지른다. 다시 그가 앞지른다. 여기서 오버 페이스 하면 죽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숨은 차올라 헉헉 거리고 발길은 제멋대로이다. 누가 오래 버티는 가에 달려 있다. 두 시간 삼십분에 초점을 모으고 심장을 태워 버릴 양 그 순간을 벼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한 찰나라도 오버하면 대폭발이 일어난 주저앉게 된다. 아무 생각도 없고 호흡 한 가닥에 의지해 본능적으로 몸을 앞으로 내밀 뿐이다. 3년 전 유적 답사를 하는 김 선생님을 따라 북한산을 넘었다. 돌아오는 길에 김 선생님은 구기동의 어느 농장에 들러 한복을 입은 어느 분께 인사를 시켰다. 

“얘들아 인사드려라. 여기 유 영모 교장 선생님이시다. 너희가 잘 아는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셔”

“반갑습니다. 매주 유적 답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잘 오셨어요. 지나가는 길에 종종 들러 주세요.”

 유 교장님은 우리 학생들을 반겨 주었다. 알고 보니 유 교장님은 김교신 선생보다 10년 정도 연상이셨다. 퇴직 후 농사를 지으시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 분은 키가 작고 몸매는 왜소했으나 눈에서는 광채가 났다. 앉아서 말을 할 때 무릎을 꿇고 말을 하였다. 특이했다. 우리는 그 후 북한산 근처를 답사할 때면 유 교장님 댁에 들러 쉬곤 했다. 그 분 댁의 과수원에서 휴식을 하며 사과를 먹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그 분께 물어 보았다.

“교장 선생님, 지난번 종로에서 북한산을 넘어 이 곳 구기동으로 달려 올 때 어찌 저희 학생들보다 빠를 수 있는지요?”

“아, 그것 말인가. 나는 하루 한끼만을 먹는다네. 저녁만 먹지. 소식으로 말야. 서울과 경기도는 늘 걸어 다녀. 산을 탈 때는 나만의 호흡법이 있다네. 힘들지 않지. 우리 선도(仙道)의 단전 호흡법이 있다네.”

“호흡법이라구요. 그게 뭔데요?”

“아, 그걸 말로는 못해. 뛰면서 자기가 체득해야지. 자네들 중 육상 선수가 있다고 하는데 육상은 과학적으로 해야 해. 자신에게 맞는 호흡법을 찾아야 해. 내가 옛날 고래의 단전 호흡법을 개량했지. 산을 올라 뛰면서 하는 단전법인데 한 호흡으로 십미터를 날아 갈 수 있다네. 지구력을 늘리는 호흡이지. 아무리 뛰어도 땀 한방울 안 흘린다네.”

“교장님, 제가 장거리 선수인데 마지막 순간에 호흡이 딸려 죽을 것 같아요. 심폐 기능은 타고 나는 것인가요?”

“심장과 폐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육상 선수들은 사실 비슷하지. 훈련으로 터득할 수 있어. 북한산을 오르고 내리며 이렇게 숨을 참고 뱉어내야 한다네. 자 해 봐”

 유 교장님은 손수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날 이후 주말마다 가파른 산에 각반을 차고 오르며 그 호흡법을 익혔다. 또한 탄수화물을 줄이고 식물성 지방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법을 배웠다. 석 달이 되자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의 경공술처럼 내 몸이 비호가 되어 날랐다. 이전과는 달리 숨을 깊이 단전에 저장해 필요한 만큼 천천히 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횡격막을 자연스럽게 저 아래까지 내리고 올릴 수 있게 되었다.   

   

9. 제발 발동 좀 걸려다오

 이제 자바라와 나란히 달린다. 나는 이제 내 페이스를 지킬 것이다. 나는 상대를 알고 상대는 나를 모른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자만하도록 해야 한다. 자바라의 틈이 보이질 않는다. 내 숨소리는 숨기고 상대의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럼 이긴다. 최후의 한방은 남겨 두어야 한다. 고통의 막바지에도 한 줌의 호흡만은 단전에 심어 놓았다. 그를 떨구기 위해 오버해 뛰어 나갈 수 없다. 그건 죽음이다. 33km를 왔다. 그가 뛰쳐나간다. 끈질긴 나를 떨구기 위한 그의 시도이다. 마지막 순간이다. 떨어져 나가느냐 따라 붙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나는 따라 붙는다. 아직도 내 심장은 팔팔하다. 그가 다시 달아난다. 이제 미끼를 거둘 때가 되었다. 나는 그대로 내달아 그를 제치고 쭉 나아간다. 한 방울 남은 힘을 호흡에 실어 순간에 폭발시켜 버린다. 그는 따라 오려다 그만 주저앉는다. 오버 페이스에 빠진 것이다. 그는 재기 불능이다. 땅바닥에 쓰러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저 멀리 선두 그룹은 보이질 않는다. 나는 오늘도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남들이 빨리 뛰쳐나갈 때 나도 모르게 뒤쳐지지 않으려 그만 빨리 뛰어 나가고 말았다. 어떡하든 선두 그룹에 서고 싶었다. 후미 그룹에 있다가 치고 나가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떡하든 반환점을 돌기까지는 10위권 이내에 서야 했다. 세계적인 건각들에게 초반 기선을 잡히면 게임 끝이었다. 시작부터 꼬인 것인지 아무리 뛰어도 중후반에 처져 있었다. 시작부터 오버페이스였다. 아 정말 절망스러웠다. 자바라도 기정이도 순식간에 빛처럼,  바람처럼 저 앞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출발부터 오버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점차 거의 꼴지에 가까웠다. 부수어야 할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다. 나는 발동이 걸려 오기를 기다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라 청소되지 않은 채 머리를 어지럽혔다. 한참 동안 페이스를 잃어 버렸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낯선 곳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 발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한 가지만 의식에서 떠올랐다. 그건 다 놓아 버리자, 그만 욕심을 버리자는 것이었다. 이왕 꼴지를 할 바에야 내 방식대로 달리자고 결심했다. 

 나는 늘 남들보다 느렸다. 학교도 늦게 들어갔고 선수로서의 출발도 늦게 하였다. 시골이라서 문명의 빛은 늦게 들어왔고 부모님은 농사를 짓느라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다. 이웃들은 달리기를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배가 빨리 꺼지게 뜀박질을 하느냐고 비웃었다. 하다못해 농사라도 도우면 먹을 양식이 나오지만 뜀박질을 하면 배만 고프지 얻는 게 무어냐고 비아냥댔다. 내가 상급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육상 선수가 되는 길이었다. 그 밖에는 길을 몰랐다. 기정이는 일본 유학을 갔지만 일 년도 못되어 귀국했다고 한다. 너무 돈이 없어 고생만 하다 그냥 귀국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일본으로 가려 했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배삯은 커녕 아무 것도 없었다. 일본 가서 아무 일이나 하고 싶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육상은 나의 꿈이었다. 학생 시절 최고의 육상 실력만이 이 세상을 사는 내 무기였다. 다른 것은 알지 못했다. 그 후 어렵게 일본으로 건너갔다. 육상으로 시작했으니 육상으로 내 인생을 마치고 싶었다. 그 이후는 몰랐다. 달릴 때마다 나는 생각이 많았다. 신중한 내 성격은 별 것이 아닌 것에도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나를 까칠하다고 오해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온유하다. 책상에 앉아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지만 달릴 때에는 무슨 일인지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달리기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나 이런 저런 생각에 늘 발동이 늦게 걸린다. 오늘도 낭패인가 보다. 코치는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날 때린 적이 많았다. 고칠 수 없는 버릇이다. 세살 버릇 어딜 가나 그 모양이다. 천성이 무섭다. 오늘도 난 길을 헤맨다. 

 25km를 지나면서 서서히 몸이 깨어나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이제 발동이 걸렸나 보다. 나무와 사람들이 휙휙 지나간다. 이제 7km가 남았다. 내 앞에는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달리고 있을까. 그들을 다 제칠 수 있을까. 이제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정말 무념무상이다. 오로지 달릴 뿐이다. 진작 이런 느낌이 팍 올라 와야 하는데 늦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부터는 내 페이스이다. 다들 비켜라. 다리는 가볍고 호흡 또한 괜찮다. 강변인지 호숫가인지 나무들은 즐비하고 군데 군데 응원하는 군중들이 몰려 있다. 테이블 위의 물 한 병을 나꿔 채 물을 마신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물병을 내던진다. 이제 시야가 확 트여지고 제쳐야 할 목표 선수가 한 명씩 눈에 들어온다. 이제 때가 되었다. 어느 지점이던 누구나 폭발하는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아무 생각이 없이 오직 달려야 한다는 일념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전력을 다해 질주한다.      


10. 마의 벽을 돌파하라

 자바라를 떨구고 내달렸다. 이제 나를 따라올 자는 없다. 나는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 체력을 아껴야 한다. 마지막 한 방울의 액기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약간 속도를 줄이고 뛸 수 밖에 없다. 자바라를 제친 것에 대한 희열이 나를 감싸 제정신이 아니다. 그저 관성대로 발을 뻗는다. 아무도 나를 따라올 수 없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뒤에서 하퍼의 숨소리가 들렸다. 하퍼는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나를 따라 왔던 것이다. 하퍼가 가까이 오자 나는 그와 나란히 할 것인지 떨구어 낼 것인지 선택할 기로에 선다. 잠시 혼동이 온다. 여기서 오버하면 죽는다. 자바라도 오버하다 죽었지 않는가. 한 번의 고비 다음에 두 번째 극도의 고통이 오게 마련이다. 쫓기는 자가 더 힘들다. 쫓는 자는 앞서 달리는 자를 목표로 달리면 되나 앞서 가는 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앞서 가는 자는 고독하다. 아무 목표물도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선수를 제쳤다. 왜 달리나 하는 생각들이 사라진다. 오직 한 명, 한  명 따라 잡는 것만 생각한다. 앞서는 자를 제칠 때마다 새로운 목표가 나타난다. 한 고비 넘으면 다른 한 고비가 나타난다. 고비의 연속이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다. 뒤돌아보지 말자. 앞만 보고 달리자. 아, 사십명을 제친 듯하다. 이제 남은 길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저기 기정이가 보인다. 장하다, 기정이. 맨 앞에 서 있구나. 따라 잡자. 나는 달리고 또 달린다. 바로 세 명을 제쳤다. 이제 내 앞에 달리는 자는 두 명. 


 40㎞지점이다. 비스마르크 언덕에 가까웠다. 서울서 열리는 시합 날에 김 선생은 자전거를 타면서 나를 응원했다. 도쿄에서 열리는 선수 선발전을 앞두고 나는 그 분께 편지를 보냈다. 그 때가 작년 11월이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서 뛰고 싶어요”

 김 선생님은 마라톤 시합 날에 차를 타고 나를 응원했다. 앞서 가는 차에서 선생님은 얼굴을 내내 내게 보여 주었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뛰어 우승을 했다. 그 때 비공인 세계 신기록을 처음 수립했다. 도쿄에서 말이다. 그 때는 선생님과 같이 뛰었고 지금은 나 혼자 달려간다. 이제 혼자서도 잘 뛸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발바닥엔 피가 흐른다. 신발이 불편하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다. 2킬로를 남겨두고 있다. 난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여기는 어디인가. 갑자기 내가 우승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생긴다. 내 앞에 아무도 없는 게 두렵다. 일본 코치는 늘 내게 말했다.

“너희 조선인은 일본을 위해 달리는 것이다. 너희의 조국은 일본이다. 자,  일본의 대화혼의 정선을 세계만방에 드날리자”

 나는 그때 반발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조선을 위해 달리겠노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올라온다. 나는 내 개인의 영광만을 위해 달린다. 그렇다. 나는 나만 생각했다. 그런데 가도에 선 사람들을 보니 일본 국기가 흔들린다. 아, 이게 웬 일인가. ‘우승을 하면 일본 국기인 일장기가 올라가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리라.’는 생각이 섬광이 되어 내 가슴을 찔러온다. 아 일장기를 휘두르는 연도에 선 일본인들의 모습이 선명히 들어온다. ‘제기랄, 이게 뭐람.’ 일본을 위해 내가 달린 것이지 않는가. 나는 내 개인의 영광을 위해 달렸는데 결과는 일본을 위해 달린 것이 아닌가. 그만 기권하고 싶다는 절망감이 몰려 왔다. 이 굴레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조금 전의 환희는 어디로 가고 내 발걸음은 쇠덩이가 되어 묵직해진다. 길옆으로 그만 나동그라지고 싶다. 쓰러지고 싶다. 도저히 더 이상 뛸 수 없다. 지금까지 일장기를 들고 날 응원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일장기를 들고 나를 응원하지 않는가.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일본 선수로구나 하는 설움이 복받치고 올라왔다. 저 뒤에 따라오는 영국 선수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내 몰골이 너무 초라하다. 내 개인의 영광을 위해 나는 일본에 충성하는구나 하는 부끄러움에 그만 주저앉고 싶다. 절망이다. 나는 고꾸라지리라. 저 멀리 골인 지점을 앞두고 죽어 나자빠지리라. 아, 이제 끝이다. 절대 절망이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다리에 힘은 빠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아 내 몸이 쓰러진다.      

 내 몸이 공중에 붕 떠서 길가 옆으로 굴러 떨어지려 하는 찰나에 어디선가 빠앙 빠앙 하는 소리가 들린다. 빠앙 하는 소리가 어디에서 나왔나. 나팔 소리인가? 자동차 경적인가? 넘어지려는 내 몸이 가까스로 바로 잡힌다. 이제 다 온 건가.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저만치 앞에서 선생님이 날 보고 있다. 아 달리자. 이제 다 왔나 보다. 그래 다 왔다. 아 스타디움에 들어선다. 우렁찬 나팔 소리가 뿌앙 뿌앙 울려 퍼진다. 10만 관중이 기립하여 박수와 함성을 지른다. 난 마지막 백미터를 전력질주한다. 숨겨 놓은 마지막 호흡을 다 실어 보낸다. 아무 생각이 없다. 382번이란 가슴의 번호표로 결승 테이프를 휘감는다. 깨지지 않을 마의 2시간 30분벽을 내가  갱신했다. 2시간 29분 19초 2. 공인 세계 신기록이다.      

 기정이는 가운데 단상에 작은 화분을 들고 서 있다. 우승자에게 준 월계수 화분이다. 그가 부럽다. 우승을 못해서가 아니다. 기정이는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가릴 게 아무 것도 없다. 그게 부럽다. 내 가슴엔 일장기를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끄럽다. 곧 일장기가 오르고 기미가요가 들려온다. 나와 기정은 장엄한 저녁 햇살 아래 부끄럽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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