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토끼해이다. 토기는 귀가 밝을 뿐만이 아니라 눈 또한 밝다. 지혜와 명철의 동물이 토끼이다. 전통시대 일상생활에서 개와 더불어 가장 친근한 동물은 아마 토끼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토끼와 관련된 민담, 설화 등이 많이 전해져 온다. 민담 속의 토끼는 별주부전에서 보듯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꾀돌이의 이미지이고, 민속에서의 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 송암미술관에서는 몇 년간 민화에 대한 기획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한국인들이 달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달 속에서 방아 찧는 토끼의 모습 아닐까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토끼는 달나라의 계수나무 아래 절구에서 방아를 찧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할 것이지만 나는 민화와 관련해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우선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을 먼저 말해 보겠다. 토끼는 달에서 영생의 불사약(不死藥), 즉 선약(仙藥)을 만드느라 절구질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선약을 먹는가. 바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의인이 선약을 받는다. 그럼 누가 의인인가. 부끄러움(恥)을 아는 자가 의인이다. 나아가고 물러설 때를 아는 게 지혜이고 염치를 아는 자가 의인이다.
동양에서 그런 의인의 대표는 백이숙제와 같은 인물이다. 백이숙제 이후로 한국과 중국에서는 수많은 의인이 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폭군들이 의인의 몸은 죽일 수 있으나 그 정신은 죽일 수 없었다. 민중에 의해 부활, 재생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화에 남아 있다. 바로 효제충신예의염치(孝弟忠信禮義廉恥)의 문자도(8폭 병풍)이다. 그중에서 마지막 치(恥)자 문자도에는 백이숙제의 비각과 위패를 그려 놓고, 그 위에 달 속에서 토끼가 절구질하며 불사약을 만드는 모습을 그려 놓는다. 바로 백이숙제 같은 의인을 위해 불사장생(不死長生)의 선약을 토끼가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중이 의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이다.
민화에 의해 의인은 이처럼 시대마다 부활하고 있다. 안중근과 전태일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성과 역사성은 사라지고 추상성만 남게 되어 이젠 달 속의 옥토끼만 의미를 상실한 채 그려지고 있다.
계수나무는 생명의 나무로 나무에 상처가 나도 썩지 않고 잘 아문다고 한다. 결국 불사(不死)의 나무가 계수나무가 되어 달 속의 토끼는 계수나무와 함께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의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 가사는 여기서 유래한다.
뜨거운 해가 남성이고 양이라면 밤에 뜨는 달은 여성이고 음이다. 달은 차고 기우나 다시 차오르기에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달이 순환하듯 여성 또한 월경의 순환을 겪어 달의 이미지는 여성과 부합한다. 토끼 역시 임신 기간이 31일로 여성의 월경 주기(28일)와 비슷하니 여성의 이미지와 토끼는 잘 부합한다. 귀엽고 예쁜 동시에 영리하고 민첩한 토끼는 지혜와 기지로서 역경을 잘 헤치고 나아간다. 영리한 한국 여인의 표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민화 속의 토끼는 꽃을 배경으로 하여 암수 한 쌍을 그린다. 부부애와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것이다. 호랑이의 담배 심부름꾼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호랑이와 다정하게 숲 속을 거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평화의 상징이 토끼이다.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 토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