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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창호 Aug 17. 2023

토기예찬

토기예찬

토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토기를 유물로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기는 사실 한반도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만여년동안 계속 사용되어져 왔다. 장독대의 장독과 옹기들 역시 토기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화분용 토분과 쌀을 보관하는 쌀독과 해장국을 담은 뚝배기 역시 토기이다. 숨을 쉰다는 옹기는 토기 바깥면에 유약을 살짝 입혔을 뿐이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로 그 원형은 토기이다. 흙을 빚어 만든 토기의 변화와 발전이 도자기의 역사이다. 우리 역사에서 청자와 백자라는 자기(磁器)가 나오기 이전의 그릇은 모두 도기(陶器)이다. 미술사학자들은 도기라는 용어를 쓰고 고고학자들은 토기라는 용어를 좋아한다. 토기라는 말은 20세기에 들어와 사용한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질그릇이란 뜻의 도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때까지 도기가 만들어졌고 고려 시대에야 자기가 출현하였다. 그러므로 자기의 역사는 길어봐야 천년에 불과하다. 그럼 토기와 도기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사실 도기가 토기보다 높은 고온에서 만들어져 견고하고 단단할 뿐 두 가지 모두 진흙으로 구운 질그릇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도기는 유약을 입힌 것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토기의 연장선상이다. 토기와 도기 모두 질그릇이라는 순 우리말이 있으니 질그릇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필자는 요즈음 토기 특별전을 준비중인데 검단신도시 발굴터에서 많은 토기들이 출토되어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매일 토기들을 살피고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토기는 인류문명의 출발과 함께 한다.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하고 농사를 지어 곡식을 저장했음을 보여 주는 게 토기이다. 토기의 재료는 흔하디 흔한 흙이다. 흙 중에서 토기를 만들만한 진흙을 골라 불순물을 제거한 후 성형하여 불에서 구우면 토기가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맨땅에서 굽다가 점차 구덩이를 파서 지하굴을 만들어 굽던 때를 지나 경사진 구릉에 터널모양의 굴가마를 만들어 고온에서 구워낼 수 있게 되었다. 토기에는 삶의 흔적이 있고 가마에는 당시의 과학기술이 녹아 있다. 가마에서 구워야 산소 유입을 통제할 수 있어 견고하면서도 멋진 색과 문양을 갖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토기는 흙과 불, 물과 바람의 대자연을 슬기롭게 조화시킨 장인의 땀의 결정체이다. 토기는 손으로 빚은 것이라 장인의 솜씨에 따라 모양이 각각 다르다. 제대로 된 모양도 있지만 실수로 약간 변형된 토기들이 오히려 웃음을 준다. 일상 생활용의 토기가 많지만 경사스런 날이나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토기들 즉 의례용으로 쓰여진 토기들을 박물관에서 많이 만난다. 옛날 마을이 있던 곳에서 나오는 토기들은 저장용과 취사용 토기들이 많고, 고분에서 나오는 토기들은 멋진 모습의 껴묻거리(부장품) 토기들이 많다. 

  토기는 밥과 국, 찬과 물을 담는 만백성의 생명체다. 자기는 극히 일부 상류층이 장식용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이처럼 토기야말로 우리 역사의 핵심이건만 국내에는 토기박물관이 없는 실정이다.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최근 옹기박물관이 몇군데 생겨 그나마 다행스럽다. 

  필자의 어린 시절,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를 회상하면 늘 목기(木器)를 사용했던 것이 생각난다. 각종 제사 음식을 담는 황칠 그릇이 목기였다. 목기는 굽이 길다란게 특징이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목기의 원형이 굽다리접시(고배高杯)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배는 신라의 대표 토기이다. 고배라는 토기가 조선시대에 와서 목기로 대체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토기의 역사는 오늘도 현재진형형이다. 

  토기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여러개가 모여 있을 때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인다. 토기 전시를 준비하면서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토기들을 한데 모아 촬영했는데 멋진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토기가 어울려 있을 때 새로운 멋을 보여 주듯이 사람 또한 이웃과 어울려 사는 것이 아름답다. 세계화 시대에는 인종과 종교를 넘어서서 관용과 포용의 열린 자세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난 오늘도 만년에서 수천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토기들의 숨소리를 듣고자 수장고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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