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 우리미술관- 막다른골목 사진전을 보고
인천은 누가 뭐래도 피난민과 이주민의 도시이다. 어느 도시에나 서민들이 사는 지역이 있다. 서민들중에 가장 아랫부분애 위치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높은 고개에 사는 사람들이다. 속칭 달동네라 부른다.
달동네는 가파른 고개턱에 자리해서 마을 사람들은 가쁜 숨을 헉헉대며 고개를 올랐다. 고갯길만큼이나 인생길 역시 헉헉댔다. 나라의 위기마다 연약한 약자가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 도시마다 헐떡고개는 즐비하였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하면 대부분 변두리나 달동네에 살아야 했다. 골목에는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었다. 마당이 드문 곳이라 고추를 말리고, 빨래를 널고,또 아이들이 뛰노는 곳이 골목길이었다. 그런데 도시가 성장하면서 달동네는 재개발의 대상이 되고 아파트단지로 바뀌어 가면서 골목길은 사라져 갔다. 대한민국의 도시는 세계 유일의 아파트도시이다.
인천 동구에는 큰 고개가 네 개가 있다. 화수동에 화도고개가 있고, 송현동에 똥고개(수도국산)가 있고, 송림동에 헐떡(활터)고개와 부채산(부처산)고개가 있다. 이들 고개는 인천에 몰려든 이주민들과 피난민들이 산비탈에 솥단지를 걸고 판자나 흙벽돌로 집을 지어 동네를 이룬 곳이었다. 동인천역 남쪽 방향의 중구에 ‘앞것’이 자리잡았다면, 철길 넘어 북쪽의 동구에는 6.25 피난민들과 일자리를 찾아온 공장 노동자들인, ‘뒷것’들이 자리잡았다. 특히 가파른 언덕위의 집을 향해 오르다 보면 숨을 헐떡거리게 만들어 이 고개를 헐떡고개라 불렀다.
며칠 전 유동현 작가(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의 <막;다른 골목> 사진전을 둘러 보았다. 사진을 액자에 담지 않고 포맥스로 출력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헐떡 고개 마을과 어울렸다. 위의 사진전은 송림동 6동을 관통하는 헐떡고개를 찍은 사진들이다. 왜 제목에 ‘막;다른’이란 말을 붙였을까. 그것은 ‘막다른’이란 말에서 풍기듯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 골목을 말한다. 또한 작가의 애정어린 눈으로 마을마다 다양한, 다른 골목들을 만난 것을 말한다. ‘;’은 사라져간 골목에 대한 슬픔과 눈물을 상징하는 것일까. ‘막다른’은 끝이라는 말로도 들리지만 ‘막’이 막(幕)으로도 읽혀 골목길마다 새로운 장막을 만나는 공간이지 않았을까 한다.
피난민을 선친으로 둔 작가는 동구 송현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 후 다시 인천에 내려와 그 후 인천을 떠난 적이 없다. 인천을 알리고 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작가는 인천시립박물관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쳤다. 임기 4년은 역대 박물관장 중 최장수에 해당한다.
작가는 인천의 골목을 진정 사랑한다. 사랑하면 발품을 팔기 마련이라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집과 대문에서 기가 막힌 사진 한 컷을 건져 올린 후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인다. 이것이 그에겐 여가 생활인 듯, 틈만 나면 인천의 골목길과 부둣가를 누비고 다니다 결과를 묶어 낸다.
사진의 특징은 기록과 예술의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찍고 싶은 장면을 골라야 하는 것은 작가의 안목에 달려 있다. 결국 자기 수준만큼 찍는 셈이다. 그리고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거야말로 사진의 화룡정점 아닌가. 문풍지 도배를 보고 ‘햇빛은 환영, 바람은 사절’이라 하고, 마루 아래 연탄을 재워 놓은 것을 보고‘두고 온 온기’라 하는 곳에서 보듯 작가는 네이밍의 달인이다.
작가는 인천 골목에 대해 여려권의 사진집과 책을 낸 바 있으니 골목길에 대해선 베테랑인 셈이다. 그의 사진집엔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이 적혀 있는데 이 또한 달인의 경지를 보여 준다. 백미이다. 사진을 한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묘사하는데 위트가 반짝반짝한다. 길게 쓸 것을 짧게 쓰는 글이 가장 어렵다.
작가는 20년 이상 인천의 골목길을 직접 답사하며 서민의 삶을 기록하고 사진 찍었다. 옛 마을과 골목은 옛 역사로 사라졌으나 골목 사진은 기록화가 되어 새 역사로 남을 것이다. 전시가 20여 일 남았다. 작가에게 작품에 관심 가져 주는 것만큼 큰 격려가 없다. 인천 동구의 화도고개 언덕을 걸어 보고 싶다. 그곳 역시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