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은 우현 고유섭의 계절이다. 각종 행사가 인천 구석구석에서 열린다. 우현 고유섭은 날이 갈수록 문화계 뿐만 아니라 한국학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이다. 우현의 글을 읽으면 한국인의 미의식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우현은 미술사 집필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철학과 미학 등 동서양 예술철학을 깊이 연구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미술사 분야의 글에는 그의 예술철학 관점이 깊게 배어 있다. 인간과 세계, 역사와 예술을 보는 시각을 깔고 글을 썼다. 그러므로 그의 예술관을 이해하면 그의 글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미술품이란 아름다운 것, 즉 ‘비유티(beauty)’한 것이라고 여기는 데 익숙하다. 그런 작품들엔 고전적이라고 할 만큼 세련되고 멋진 기교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과 관습이 지금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우현에게 아름다움이란 ‘beauty’가 아니라 ‘인식적 앎’의 세계이다. 전통적인 미학과는 다르다. 그 인식적 앎은 지식을 기억하는 암기로서의 앎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는 ‘앎’이다. 바로 진리가 드러나는 현현(顯現)의 순간이 바로 예술이라는 입장이다. 예술에서 말하는 진리는 과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 세계는 진선미가 어울린 세계이다. 작가는 자신의 새로운 인식이란 앎의 알갱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예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앎의 지평’을 열어 젖힐 수 있다는 관점은 현대 예술과 상통한다.
미술사를 보면 기존의 익숙했던 인식을 부수어 버리고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한 인물들이 미술사의 획을 그어 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피들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피들러의 예술관을 이해하면 현대 예술을 이해 할 수 있다. 우현 고유섭의 예술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현에게 큰 영향을 준 콘라드 피들러(Konrad Fiedler:1841~1895)의 예술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피들러에 의하면 인간은 세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 하지만, 이 방식만으로는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의하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논리의 영역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것이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은 개념적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바로 예술 작품의 형식을 통해서이다. 그 형식이란 점, 선, 면, 색채, 구도, 시점 등 다양하다. 무엇을 그리느냐 보다는 어떻게 그리느냐를 화두로 삼는다.
예술가는 직관적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탐구하는 대상을 직접 보고, 형태를 인식하고, 그 전체적인 구조나 의미를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그러나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과정이 예술 창작과 감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본질을 미리 정해 놓고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또는 사태)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이다. 이는 오늘날의 현상학적 방법론과 통한다. 이전에는 본질이나 진리를 정해 놓고 작업했다면, 현상에서 본질을 찾고자 하는 것이 현상학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단순히 미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피들러에겐 예술의 시대성과 역사성이 희박하다. 이것을 보완하여 우현 고유섭은 예술을 ‘종합적 생활감정의 이해’라고 말했는데 예술이란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 역사적 총체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자연과 세계를 보는 미의식은 민중의 생활 작품속에 스며들어 있다. 우현은 그것을 자연의 미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