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geun Sep 29. 2023

애완닭 키우는 집 이야기

코로나가 막 시작할 즈음,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청천벽락같은 얘기를 듣고, 일 이 주면 다시 학교가 열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내길 몇 달이 흘렀다.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온라인 학업을 하며 집에서만 지내던 꽤나 심심했던 우리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사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책임이 함께 따르는 일이기도 하고 수명이 짧은 동물들과 함께 지내다 먼저 보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남겨진 슬픔을 지는 일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한국에 계신 엄마랑 통화하다 문득 엄마가 닭을 키워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하셨다. 나는 사실 동물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손도 잘 못 대는 사람인데,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닭?을 내 집에서 키운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엄마는 닭이 키우기가 상당히 쉽다며 닭을 키우는 일은 다른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도 재밌어할 것이고 병아리가 커서 계란을 낳으면 건강한 달걀을 먹을 수 있으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동네에 지나가다가 집 앞에 계란 판다는 사인을 본 적도 있고 저런 계란을 사다 먹으면 신선하고 맛도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고 해서 일단은 닭은 못 키우겠고, 맛있는 계란은 먹어보고 싶고, 집에서 키운 닭이 낳은 신선한 계란은 한번 사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닭 키우는 집에서 계란을 판다는 광고를 올렸길래 막내를 데리고 알려준 주소를 찍 계란을 사러 가게 되었다. 그 집에 도착하자 큰 잔디밭에 수십 마리의 여러 색깔의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집주인은 아이스 박스에 넣어둔 계란을 알아서 가져가고 돈은 옆에 넣어두라고 메모를 남겨두고선 집에 계시지 않았다. 나는 계란을 챙겨서 닭들이 내 근처에 오기 전에 얼른 차에 타고 싶었는데 같이 간 막내가 동물원 사파리에 온 것처럼 신나 하고 닭들을 만져보고 싶어 했다. 내가 계란 잘 가져갔고 돈은 넣어두었다고 문자를 보내자 집주인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야드에 있는 우리 이쁜 아가씨들 봤지? 너무 아름다운 생명체 아니니?'라고 답장을 보내오셨다. '너희 집 닭들 너무 이쁘더라' 하고 나도 답장을 보내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때만 해도 닭을 생각하면 닭발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상황이라 차마 동의해 드리진 못했다. 연이어 자기 집 계란이 얼마나 신선하고 맛있는지, 다음번에 계란을 사러 또 올건지 물어보셨지만 왕복 40분을 운전해 또 올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 집에서 사 온 계란맛이 궁금해 집에 오자마자 얼른 계란 프라이를 해 먹었는데, 맛있고 신선하고 왠지 더 고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가까우면 자주 사다가 먹으면 좋겠지만 아쉽긴 했다.


얼마 후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진지하게 닭을 키워보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일단 병아리는 귀여우니까 사서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알게 된 농장에는 병아리 부화 일정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새로운 닭의 종류를 이미지를 검색해 가며 어떤 닭을 사야 할지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닭의 종이 정말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병아리가 다 노란색이 아니라는 것도, 닭도 종에 따라 성격도 다르고, 깃털과 계란의 색깔도 다르다는 것도 말이다.
코로나가 아직은 백신도 안 나오던 때라 우리는 농장에 예약전화를 하고 마스크를 낀 채 아이들과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농장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다. 농장에 도착해서 우리는 닭을 키우는 게 처음이고,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으니 친근하면서 예쁘고 알도 잘 낳는 종으로 골라달라고 해서 갓부화한 6마리의 병아리를 샀다. 농장에서 상자에 6마리의 병아리를 넣어서 아이에게 건네어 주었을 때의 상기된 아이들의 표정은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생명들이 우리 손에 맡겨진 것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책임,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귀여운 존재들이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에 대한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아마도 내 얼굴에도 같은 긴장감이 돌았겠지. 첫째는 상자를 안고 둘째와 셋째는 상자 주변을 호위한 채 조심조심 차에 올랐고, 나도 긴장한 채로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아이들과 병아리 상자를 살폈다.

 "병아리 살아있어?"

 "엄마, 상자가 너무 가벼워, 살아있는 거 같긴 한데"

첫째는 상자를 열어 보면 병아리들이 놀랠까 봐 병아리가 잘 있는지 살피지도 못한 채 병아리 체온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 해 하며 자기의 온기가 병아리들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 주길 바라는 듯 상기된 얼굴로 상자를 안고 있었다.  6마리의 병아리들은 상자 안에서 30분 동안의 첫 자동차여행을  마치고 우리와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2021년 2월, 우리는 그렇게 병아리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생활, 기억하고 싶은 작은 성의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