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투자자 3.
남자가 있는 강원도로 전근 신청을 냈다. 그렇게 옮겨가도 2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이동 시간은 30분이 단축되었지만 마음의 거리는 3시간 이상으로 단축되었다.
우리는 집주인에게 5천만 원을 맡기고 주택 2층 전체를 빌렸다. 따로 존재하던 두 가구가 한 가구로 합쳐졌을 뿐 우리의 포지션은 변함없었고 그렇게 또다시 우리 둘은 임차인이 되었다.
꿈꾸던 결혼 생활에 집은 포함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봐도 집을 꿈꾸는 순간 결혼은 불가능했다. 집의 종류 또한 문제 삼지 않았고 실제로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할 수 있음이 행복할 뿐이었다.
발령 공고문을 보니 기가 막혔다. 당장 다음 주부터 새 근무지로 출근이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알지 못하는 동네로 출근하는데 집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은 금요일 저녁 남자와 접선하기로 한 시각부터 일요일 오전까지가 전부였다. 일요일 오후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 강원도로 새벽 일찍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 이사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름이 지워지고 없다.
남자와 집을 구하기로 한 금요일은 서울에서 마지막 근무일이었고 조촐한 송별식이 약속되어 있었다. 그 시간 아빠는 정맥관 삽입 시술을 받다가 심정지가 왔다. 시술대에서 CPR이 시행되었고 의사는 가족들 모두 병원으로 모이라고 했다. 무슨 정신으로 자취방에 들렀는지 어떻게 비행기표를 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흐릿하게만 보이는 세상을 자세히 보려고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남자는 낯선 도시에서 홀로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
대출 가능 금액은 5천만 원이었고 금액에 맞춰 단독주택 2층을 봐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네 시세를 몰랐던 남자는 몹시 실망한 기색이었다. 오래된 저층 아파트지만 속초에서 전세 2천만 원에 살고 있었으니 그보다는 조금 괜찮은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물건은 없었다.
"5천만 원에 구할 수 있는 집이 자기 회사 근처로는 없다. 그쪽은 원룸이 5천 정도 하네. 돈에 맞추려니 변두리에 단독주택 딱 하나 있다. 괜찮아?"
"자기가 보기엔 어때? 낡은 오래된 집이야? 춥고 좁아?"
"그건 아니야. 집은 따뜻하고 남향 인가 봐. 해도 잘 들고 대략 20평은 넘어 보여. 방은 2개고 리모델링 한지 얼마 안 됐나 봐. 집도 깨끗해. 도배만 하면 될 것 같아. 다만 직장하고 차로 20분은 가야 할 것 같아."
"사진 찍어서 보내줘 봐. 한번 봐보자."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 집을 볼 수 없었고 전적으로 남자에게 맡긴 상황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할 상황도 못됐지만 사진을 보고 진심으로 만족했다. 서울살이 하면서 지냈던 집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으며 햇살이 잘 들어 따스해 보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퉁퉁 부은 발로 지옥철에서 한 시간씩 서있다가 마을버스로 환승을 해서 한참을 부대껴야 겨우 집에 도착했던 것과 비교하면 거리도 문제 되지 않았다.
"너무 마음에 드는데? 이 집으로 하자."
남자는 미안한 기색이었지만 난 정말 괜찮았다.
살면서 좋았다. 벽을 가득 채운 통 창으로 내다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언제나 햇살이 쏟아지는 안 방은 환하고 따뜻했다. 현관문 앞으로 아담한 테라스에는 둘이 앉아 바비큐를 하기에 적당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이불 빨래를 널기에 적당한 공간도 있었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주차장이었다. 건물 앞에 너른 마당이 있었는데 주인아저씨 용달차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외딴 주택이 갖고 있는 주변 넓은 공간은 물건을 쌓아두기에도 편리했다.
하지만 나의 만족도는 입지 여건과는 어긋났다. 출근길 콜택시를 불렀는데 운행 중인 차가 부족해서 이곳은 배차가 어렵다고 했다. 회사로 가는 버스 편도 없었다. 지각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침이 반복되었다. 괜찮은 것과는 별개로 난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