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투자자 2.
하던 공부를 빠르게 정리하고 취업을 했다. 합격자 명단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다시 봐도 합격이 맞는데 말이다. 첫 직장을 구할 때는 그렇게도 미끄러지더니 몸에 엿이 붙었나 넣는 곳마다 알아서 척척 잘도 붙었다. 그렇게 우린 물리적으로 조금이나마 가까운 곳에서 연애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친구처럼 나 또한 각박한 서울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혼자서 세대를 꾸리는 첫 집이었다. 보증금 3천5백만 원이 혹시나 달아나진 않을까 두려워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사무소로 뛰어가 전입신고를 했다. 확정일자도 받았다.
사글세(년 세)를 내고 살 때와 기분이 달랐다. 같은 임차인이지만 연세는 일 년이 지나면 집을 원 상태 그대로 돌려주기만 하면 됐고 내가 따로 돌려받을 건 없었다. 맡겨 놓은 게 없으니 혹시나 돈이 떼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비교적 깔끔한 금전 거래였고 심적 부담감 또한 없었다.
하지만 반 전세는 달랐다. 사회 생활하며 내 딴에는 바지런히 모은다고 모은 얼마 안 되는 전 재산과 부모님께 빌려온 목돈을 합해 고스란히 임대인의 통장으로 넣었으니 퇴거 시 혹여나 돈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 세입자가 되어 보니 두렵고 무서운 마음과는 또 상반되게 우습지만 무게감이 있어 보였고 사회 초년생이 어른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갈 때도 시내버스를 타고 복잡한 중심도시로 들어갈 때도 버스 옆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차가 너무 많아 브레이크등이 꺼질 틈이 없는 혼잡한 이 거리에 왜 내 차는 없을까.'
'뭐가 문제일까. 분명 나도 돈을 벌고 있는데 왜 내겐 없고 저들에겐 있을까.'
혼자 상념에 빠지곤 했다.
'이 넓은 땅 덩어리에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 월급 받아서 쉰 정도 되면 가능할까.'
'이 사회에서 나는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던 시간들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 손에 등기부등본 따위가 생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초년생들이 겪는 막막한 미래를 나 역시 겪어야만 했던 가슴 시리던 날들이었다.
이 무렵 남자는 속초에서 전세 2천만 원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임차인이었다.
여자도 임차인, 남자도 임차인.
임차인과 임차인이 만나 다시 임차인이 되는 건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발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