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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서만 반듯해지는 나

나는 왜 글을 쓰는가? #5

by iCahn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가 나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어지러움을 내려놓고

제법 단정한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정돈된 문장이

정돈된 하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은 여전히 흐트러져 있으나,

그럼에도 글 속의 나는 반듯한 얼굴로 앉아 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아

나는 종종 글 쓰는 나를 진짜라고 믿고 싶어진다.


글은 내 안에서 나온다.

감정과 생각, 그날의 온도가 섞여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때때로

내가 나를 속이지 못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 안에 없는 것을 쓰려할 때

문장은 공허해지거나 멈춰 선다.


나는 자주 망설인다.

이 표현은 너무 솔직해서 지우고,

이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워 미룬다.

조금 더 말이 되는 문장만을 남긴 뒤

안도해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해진다.


글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을 쓰고, 어디서 멈출지,

어디까지 솔직해질지의 선택.

그렇게 선택된 장면만이 문장이 된다.


입에는 다툼의 말이 가득한 날에도

평화를 말하는 글을 쓸 수 있고,

무심한 하루 끝에서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문장을 남길 수 있다.

이것이 글의 힘인지,

글에 가려진 위선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진실이라기보다

진실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이며

쉽게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써 내려가는 끝없는 기록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잘 쓴 문장이

잘 살아낸 시간을 증명하지는 않더라도,

나는 글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


아마도 지금의 나에게 글쓰기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차곡차곡 남겨두는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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