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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는 일상

작은 실천과 고민, 그리고 일상의 결심

by iCahn

요즘 서점에 가면, 인문학 코너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철학이나 사회과학 책들은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빠르게 읽히고,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책들이다. 출판사는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어 하고, 독자들은 바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는다.


이제는 읽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생각하는 속도보다 소비하는 속도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 천천히 곱씹어야 하는 문장과 긴 글을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대부분 오래 머물러 생각하기보다 빠르게 판단하려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루 종일 업무와 효율 속에서 머리를 쓰다 보면, 늦은 퇴근 후에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공백 상태가 된다. 머리를 비우는 쪽을 선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짧고 빠른 영상들을 넘기다 보면 피로가 잠시 풀리는 듯하지만, 결국 그 자리엔 늘 공허함이 남는다.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무언가 부족한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내면은 비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책을 다시 펼쳤다.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에, 긴 문장을 붙잡고 천천히 읽는 건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문장에 밑줄을 긋고, 앞뒤를 다시 확인하며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면,

청량제를 마신 듯 잊고 있던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독서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이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고, 오래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런 시간이 조금씩 쌓이자 공허함의 자리에 작은 사유가 서서히 채워져 가는 듯하다.


인문학은 당장 정답을 주는 학문은 아니겠지만,

대신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지금의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AI가 답을 대신 찾아주는 시대일수록, 정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스스로 묻는 힘을 잃으면, 삶의 방향도 남이 정해주는 속도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일은 작아 보이지만, 오히려 강한 저항이 될 수 있음을 배운다.


지금의 나이에서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는 어렵다.

단지 조금 더 오래 읽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일.

그 몇 분의 시간이 쌓이다 보면, 삶의 결이 분명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와 사유는 더디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저항이자, 가장 인간다운 실천이다.


더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일상으로.





마치며


이 글은 브런치 한 작가님의 글에서 받은 질문과 여운에서 시작되었다. 그 글이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에 머무르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님의 글 흐름을 따라 다시 생각해 보며 나의 서툰 글로 조금 이어 본 글이다. 다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으며,

작가님의 쾌유를 기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는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 또한,
이름 남기지 않는 누군가의 작은 실천과 고민,
그리고 일상의 결심이 쌓여 만들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장식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저항과 사유의 사회과학으로서의 인문학을 지지한다.

<오늘의 책'이 사라진 오늘_사라진 인문, 사회과학 서점의 의미> 중에서
by 브런치 박 스테파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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