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3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존재가 있다. 2년 6개월째 함께하고 있는 우리 집 반려견이다.
아직도 마음은 장난꾸러기 강아지인데, 몸은 어느새 작은 흰곰이 되어 있다. 반가움의 돌진은 거의 태클 수준이다. 문을 열자마자 중심을 읽고 휘청거릴 때도 있지만, 하루 중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존재이니 밀어낼 수는 없다.
처음 만났을 때, 밥그릇과 물그릇은 손바닥만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릇은 점점 커져, 이제는 큰 양푼만 한 크기가 되었다. 문제는 커진 그릇만큼이나 몸도 따라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번 병원에서 재 본 몸무게는 42kg.
게다가 녀석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저녁 한 끼는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드시 아빠가 떠먹여 줘야 먹는다. 퇴근이 늦는 날이면, 너무 배가 고파 짜증을 부리면서도 끝까지 아빠만 기다린다. 결국 퇴근이 늦을수록, 그날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맞춰진다.
문제는 내 에너지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내와 늦은 저녁식사 후 소파에 앉아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싶은데, 녀석의 눈빛은 단 하나를 말하고 있다.
“산책가요. 지금이요.”
아내는 그런 우리를 보며 슬쩍 말한다.
“저렇게 기다렸는데 안 가줄 거예요?”
잠깐 못 들은 척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산책줄을 쥔다.
어느 날은, 밤 11시경에도 동네를 함께 걷는다. 집을 나설 때마다 몸이 무겁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날도 있다. 그래도 몇 바퀴를 돌고 나면, 고요함 속에서 하루의 끝이 조금 정리되는 기분이기도 하다. 하얀 털옷을 입은 듯 뒤뚱뒤뚱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도 귀엽다.
물론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녀석은 온 동네 바닥에 남은 냄새를 다 기억하려는 듯, 무언가 발견할 때마다 방향을 틀어 온몸으로 돌진한다. 그럴 때마다 내 허리는 삐끗한다. 가끔 딸이 함께하는 날이면, 녀석은 더 들떠서 통제가 쉽지 않다.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절대 움직이려 하지 않는 큼직한 네 발 씻기기, 다시 말리기, 얼음 동동 띄운 물 챙기기, 간식, 털을 빗겨 정리하기, 배변 처리까지. 그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오늘도 이러다 하루 다 가는구나"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임무가 남아 있다. 거실에서 졸고 있는 녀석을 조심히 일으켜 대소변 한번 더 처리 후 딸아이 방으로 데려다주는 일이다. 매트 위에 몸을 던지고 둥글게 말면서, 곧 깊은 잠에 빠질 준비를 한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문을 살짝 닫는 순간, 비로소 오늘 하루가 끝난다. 온종일 이어지던 소란도, 요구도 잠시 멈춘다.
거실에 고요가 찾아온다.
아직 다림질 중이던 아내가 말한다.
“이제 좀 쉬세요.”
그제야 소파에 몸을 맡긴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모든 수고와 보살핌은 언제나 아내의 몫이 크다는 것을.
나는 퇴근 후 몇 시간만 버티면 되지만, 아내는 하루 종일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녀석의 어떤 행동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물론 아내도 피곤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땐 말수가 줄고, 넌지시 나를 쳐다본다.
“좀 도와줘요...”
한편, 책임지고 돌봐주겠다던 딸은 약속과 달리 먼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녀석에게 있어 가장 사랑하고 따르는 존재는 우리 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녀석은 눈빛과 꼬리로 반가움을 표현하지만, 누나의 애정 표현은 늘 과하다. 포옹과 쓰다듬, 얼굴에 뽀뽀를 퍼붓고, “보고 싶었어”를 연발한다. 그러고 나서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한 5분간 한다. 그뿐이다. 그 외 모든 일은 여전히 우리 부부의 몫이지만, 딸이 외롭지 않으니 괜찮다.
그릇이 커진 만큼, 몸도 커졌다.
그릇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커진 것은 덩치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책임이었다.
녀석과의 하루는 반복된다. 내일도 비슷할 것이다. 아침 배변시간은 5시 50분. 얼핏 보니 다섯 시간 남았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인데, 괜히 시간을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