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2
딸의 성화에 못 이겨
2년 전부터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사실 두 번째다.
첫 반려견은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했었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래서 지금 중학생 된 딸에겐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우리 부부는 다시 반려견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특히 아내는 첫 반려견을 떠나보낸 뒤,
그 애틋함을 고이 간직하고 싶어 했고
또 언젠가 맞이할 이별을 감당하기 두려워했다.
게다가 우리 둘 다 나이도 있고
시간도 여유롭지 않아
돌봄에 대한 부담이 솔직히 컸다.
그럼에도 결국,
딸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산책, 놀아주기, 발 닦아주기, 배변 치우기...
온갖 조건도 붙이고 약속도 받았지만,
예상대로 대부분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무엇보다 바랐던 건,
형제가 없다 보니 혼자 지내는 딸에게
친구이자 동생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정서적인 위안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3개월 된 강아지를 분양받아 데려왔다.
다행히도 첫날부터 딸을 잘 따르더니,
지금은 누나의 과한 애정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이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인다.
어느새, 덩치가 하얀 곰처럼 커졌지만,
눈빛도 마음씨도 유난히 착하다.
먹는 양도 많고
그만큼의 배변도 하루 네댓 번은 기본이다.
밥을 스테인리스 큰 그릇에 담아 주는데,
그 밥그릇을 치우는 일을 내가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이 녀석이 내가 줄 때 더 잘 먹는다.)
그런데 이상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치운 그릇은 아무리 닦아도
아내가 닦은 것처럼 반짝이지 않았다.
아내가 닦을 때면
항상 새것처럼 빛이 난다.
반면, 내가 닦은 그릇은
그냥 딱 '쓰던 그릇'이다.
겉으로는 깨끗한데 어딘가 다르다.
왜 그럴까.
나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는 깨끗하게 해내는 것이 중요했고,
나는 빨리 끝내는 것이 먼저였다.
돌아보면,
대부분의 일처리가 늘 그랬던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아내는 시간이 걸려도 정성을 들였고,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하고 쉬고 싶어 했다.
이러한 나의 일처리는
종종 아내의 손이 한번 더 가게 만들기도 했다.
마음의 결이 다르니,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릇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겉으론 깨끗해 보여도
아내의 눈엔 분명히 보일 것이다.
그저 닦은 그릇과
마음을 담아 닦은 그릇은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나는 오늘,
그 차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일은
조금은 다르게 닦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