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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날적이

나는 공무원이(었)다.

매몰되지 않기

by 글도장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는 지난주까지 공무원이었었다.

다만, 오랜 휴직 중이었고, 복귀 예정일에 맞춰 사직서를 제출했다.

30대 중반,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이전에는 전혀 다른 일을 했었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job이라고 생각하고 안정성을 택했다.

당시 아이는 어렸고, 나는 어린이집 원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맡겼다.

주말에도 쉬이 쉬지 못했고, 남편의 희생도 뒤따랐다.


다행히 합격했고,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Happily Ever After'일 줄 알았던 내 공무원 생활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워라밸의 꿈이 산산조각 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울했다.

시보를 뗀 직후, 곧장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3년을 꼬박 쉬고, 조금씩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았을 때 복직했다.


처음엔 괜찮았다. 객관적 상황이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라. 나는 그리 싫증을 잘 내는 사람도 아니고, 인내심이 부족한 스타일도 아니다.

다만, 좀 더 근본적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Sunken cost, 매몰비용이다.

이미 들어간 비용, 소위 "본전이 아까워"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나의 매몰비용은 나를 한 가지 생각에 매몰시켰다.

"넌 퇴직 전까지 여기 버텨야 해."

비단 나의 본전 뿐 아니라, 남들의 시선과 그리고 안정성 이런 것들에 나는 매몰되어 있었다.


어느 날, 늦은 퇴근길에 문득 "내가 좀 불행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 식구가 손가락을 빨 일도 없었고,

아무도 나에게 꼭 이 일을 하라고 시킨 적이 없었다.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괴로워하며 하고 있는 걸까?


그건, 나 자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이 나이에 이 일을 그만두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신.

대안이 없음으로 인해 머무는 것, 그것이 내가 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결심이 섰다. 방향에 대한 흔들림은 없었다.


신랑과 얘기를 나눴다.

꾸준히 나를 설득하려던 신랑은, 내가 불행하다고 말하자 바로 내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운이 좋게 나는 몇 년 더 휴직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마음이 변하면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유예기간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고, 오래도록 미뤄온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사표를 던졌다.

나의 미래는 아직도 막연하지만,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더듬으며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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