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청소 그 후
오랜만에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택배를 보내실 거라 혹시 우리가 주말에 집을 비울지 물어보시려 전화를 하신 거다.
어머님은 종종 택배를 보내주신다.
시댁이 바다 쪽이라 신선한 해산물도 많이 보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야채도 보내주신다. 결혼 이래로 김치를 거의 사 먹어본 일이 없다.
늘 맛있는 김장김치를 우리 집뿐만 아니라 친정까지 보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님의 음식 솜씨가 너무 좋으셔서, 나는 진심으로 어머님의 음식이 맛있고 기대가 된다.
토요일 오후, 택배가 도착했다.
역시나 스티로폼 박스 한가득 생선, 조개 등이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냉장고를 정리해 둔 덕에, 냉동고와 냉장고가 산뜻하고 여유롭게 정리되어 있었고,
덕분에 너무나 수월하게 새로운 음식들을 차곡차곡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재첩국과 조기 세 마리, 조개를 한가득 넣고 양파, 당근, 파, 마늘과 함께 자글자글 볶아
푸지게 먹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냉동고가 꽉꽉 차 있었다면?
나는 음식을 받고 이렇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어머님의 택배가 도착하면,
감사한 마음보다 ‘이걸 어떻게 정리해서 넣지?’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 적도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런 마음 없이, 온전히 그 감사한 마음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던 거다.
조금 과장 보태어 말하면
'준비된 자’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까?
이렇게 작은 것도 내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듯,
다른 일들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선물 같은 기회는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