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걸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넌 참 착해"
어릴 때부터 제법 들어왔던 소리다. 처진 눈꼬리에 웃는 인상이라 그리 보였나 보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었다. 나는 착하지 않은데 혹시 나의 못된 실체(?)가 언젠가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그럼 계속 이 착함을 유지해야 하지 않나? 부담이 느껴졌다.
많이 들어봤을 거다.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마치 가짜(가면)처럼 느끼는 심리적 현상.
남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곧 그것이 들통이 날까 불안해하는 거라고 한다. 나에게도 그 비슷한 불안감이 있었던 거다.
절대적으로 착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절대적으로 착한 사람일까? '그래 걔는 한 번도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내가 착하다는 말을 들은 이유도 아마 그거일 거다. 화를 잘 안 내서? 혹은 의견이 세지 않아서? 아마도 그런 이유로 말한 거겠지.
그렇지만 스스로의 기준은 좀 더 엄격했다. 나는 사실 질투도 많고 화도 많고 그런 사람인데 그러면 착한 사람이 맞는 건가? 싶었다는 말이다. 육아를 하면서 내 밑바닥이 점점 드러남에 따라 이런 자괴감은 더 켜지기도 했다. 위선적인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내가 위선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배우 원빈의 예전 인터뷰를 봤다. 그는 본인이 연기 이외에 인터뷰 등 다른 활동을 잘하지 않는 이유가, 단편적인 본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잘못 평가할까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는데, 정제된 모습을 통해 오히려 본인을 더 좋게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거다. 원래 있는 모습보다 더 좋게 포장되기를 꺼리는 그의 마음, 내 마음과 좀 비슷하다고 느꼈다.
착하지 않은 걸 들키는 것도 싫지만, 착한 척하는 것도 싫다. 하지만 살다 보니 느꼈다. 그 두 가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 마음들을 좀 내려놓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먼저, 착하지 않은 모습이 들키면 좀 어떤가?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자기만의 단점은 있으니까.
중요한 건 나의 착하지 않은 행동이 내 '양심'에 반하느냐는 거다.
내가 조금 이기적일 수는 있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착한 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나만 이득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그냥 예의로, 배려로, 때론 습관처럼 나오는 '착한 척'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최후의 보루가 있다.
그건 바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거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자기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면, 내가 저 상황에서도 저랬을까 혹은 내가 저랬을 때 저 사람이 화를 냈다면 내가 섭섭했을까를 기준으로 삼았다. 나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면 내가 섭섭한 게 맞다. 나도 그랬을 거라면 좀 더 이해해야 한다. 머리로 화난 것과 심정적으로 화난 것을 의도적으로 분리하고자 한다.
"걱정하지 말아, 너 나름 착하게 살고 있어!
그리고 너의 그 인간적인 모습 들키면 좀 어때? 스스로 당당하면 그걸로 되는 거야”
가면 뒤의 내 얼굴 조금 편안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