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by 이인숙 insouk lee

** 한때 소설가가 돼볼까 하는 생각으로 오래 전에 써놨던 짧은 소설입니다.



“옛날에 우리 형이 저 언덕 위에서 니나노집을 했어.”

김은 소주잔을 내려놓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툭 내던지듯 말했다. 몇 시간째 이어진 술자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취기가 느껴지지만 술주정을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니나노집이라니, 고등어회를 한 젓가락 집어 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시키지도 않은 고등어회를 바닷가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면서 주인이 서비스한 것이다. 니나노집이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한복을 차려 입은 여자들이 젓가락 장단을 치면서 술꾼들의 시중을 들던 술집, 그때 여자들이 장단에 맞춰 니나노를 불렀기 때문에 니나노집이라고 했다던가. 어린 시절, 시장통에 있던 술집에서 저녁이면 한복 입은 여자들이 술꾼들과 젓가락 장단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희미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대여섯 살 때의 기억이라 정말 내가 그런 풍경을 봤는지, 아니면 나중에 들은 얘기에 상상력을 보탠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런 집이 없어진 지가 꽤 됐을 텐데, 김의 형님이 니나노집을 했다면 그 형의 나이는 얼마나 되는 건지 가늠이 안 됐다. 김의 나이는 나와 비슷한 삼십대 중반이다.

“그땐 저 언덕 위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거든. 말하자면 달동네였지. 지금은 다 없어지고 이젠 나무도 제법 우거져서 그럴 듯한 바닷가 풍경이 됐지. 우습잖아?”

평소의 순박하기만 하던 태도와 달리 김은 약간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한편으론 동의를 구하듯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면서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아닌 게 아니라 횟집에 들어서기 전에도 약간은 뜻밖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던 것이다. 처음 와보는 곳이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바닷가 풍경이 의외로 눈길을 끌었다. 동해 바다는 어디를 가도, 아무리 이름 없는 바닷가라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가슴에 비수라도 품은 듯 시퍼렇게 물결치는 바다가 파스텔로 그린 듯 엷은 빛으로 밝게 빛나는 하늘과 마주 보고 있었다. 오후의 기울어 가는 햇살에도 불구하고 청명한 날씨 탓일까, 하늘과 바다 사이의 공기조차도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먼지 한 톨 없을 것 같은 투명한 대기 속에서 빛이 가볍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게 보였다. 빛이 통통 튀어 나갈 것 같은 명랑한 대기와 맞닿아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청청한 바다는 이상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름난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바다를 끼고 말끔한 해안도로가 뻗어있었고, 해안 도로 가까이 얕게 드러난 거무스름한 갯바위에는 갈매기들이 날개를 접고 쉬고 있었다. 도로의 가드레일 바로 밑은 투명한 옥색으로 바닥에 깔린 바위가 다 들여다보였고, 가드레일 위로 기둥을 세워 오징어 몇 마리와 이름 모를 생선들을 말리는 풍경도 바닷가 마을의 풍정을 더했다. 도로를 따라 이어진 횟집들이 등을 기대고 있는 언덕 위에 우거진 숲의 철 이른 단풍은 농담이 뚜렷한 하늘과 바다의 푸른빛과 어울려 꽤 볼 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형님이 이 동네에서 술집을……”

“여기가 나 어릴 때 살던 고향이니까.”

처음 듣는 소리였다. 김과 알고 지낸 지 몇 년 됐고 일을 같이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고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도 개인적인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단 둘이 술을 마시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의뢰받은 잡지의 화보 사진을 위해 사흘 동안 강원도 산간 지방을 돌아 다녔다. 일이 끝나고 바닷가에 가서 회나 먹을까 하고 주문진에 사는 화가 박에게 전화했더니 마침 김이 와 있다고 해서 얼떨결에 같이 하게 된 자리였다. 박은 나와 김을 연결해 주고는 자기는 다른 일이 있다고 빠져 버렸다.

점심이라기엔 좀 늦었고 저녁 겸 술자리를 벌이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냐, 술이 사람을 가리냐 시간을 가리냐 하면서 시작한 술자리였다. 값싸고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안다면서 이 집으로 데려온 사람은 김이었다. 김이나 나나 사진기 둘러메고 전국 어디라도 돌아다니는 게 일이다. 그러니까 이 동네를 김이 잘 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일 때문에 언젠가 와본 적이 있나 보다 했지 설마 그의 고향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선창가 달동네에서 아가씨들 데리고 니나노집을 하던 형님과 나이 어린 동생, 그 동생은 자라서 사진작가가 되었다.

“형님은 아직도 여기 사시는 거야?”

“세상 떠난 지 오래 됐어. 내가 중학교 때 세상 떴으니까. 술장사하면서 좀 험하게 살기는 했지만 나한텐 아버지 같은 형이었지.”

생전 안 하던 집안 얘기를 갑자기 꺼내는 것은 오랜 만에 고향에 와서 마시는 술에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기 때문일까. 술이 몇 잔 들어가기는 했지만 취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김은 조금씩 형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니나노집은 일찍 없어졌지만 선창가 술집에 여자가 없을 수 없었다. 김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그의 형은 여전히 술집을 하고 있었고, 김의 학비는 그 술집에서 나왔다. 형이 데리고 있던 여자와 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동네 건달, 여자를 지켜주려다가 칼을 맞은 형, 아, 이건 삼류 영화에 나와도 씨가 안 먹힐 얘기다.

“그런 데서 일하는 여자들이 대개 그렇잖아. 술만 파는 게 아니라 몸도 팔지. 그런데 그 여자는 술 팔고 몸 파는 주제에 술집만 벗어나면 완전 딴 사람이 되는 거야. 어린 내 눈에도 그게 참 묘하게 보였으니까.”

“뭐 굳이 밖에 나가서까지 술집 여자라고 광고할 필요는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작은 시골 동네에서 서로 다 뻔히 알고 있었고, 아무리 아닌 척 해도 아무개가 술집 여자라는 걸 모를 사람은 없었거든. 술집 동네로 가면 여자들이 대낮에 껌을 쩍쩍 씹으면서 길가에 나앉아 자기들끼리 화투치는 걸 자주 볼 수 있었지. 부스스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올려붙이고 누렇게 뜬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 보기 흉했어. 게으르기 짝이 없는 그 여자들의 몰골은 나 술집 여자요, 하고 이마에 써 붙이고 있는 거 같았거든. 그 여자도 술 팔 때는 다른 여자들이랑 다를 게 없었어. 짙은 화장에 남자들 비위도 잘 맞추고 장단을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그런데 술 안 파는 대낮에는 정말 딴 사람처럼 보였다니까. 뭐 특별히 조신하게 구는 건 아니지만, 단정하고 수수한 차림에 화투짝을 잡지도 않았고, 보통 여염집 여자처럼 보였지. 아니, 여염집 여자들하고도 달랐어. 도무지 표정이 없었으니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술 팔 때의 그 사람하고는 영 딴 판으로 보였어. 대낮에 그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어젯밤 그렇게 교태를 부리던 그 여자가 맞나, 묘한 기분이 들었지.”

어린 시절, 시장통에서 보던 술집 여자들은 대낮에는 뭘 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밝은 햇살 아래 시작한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다니, 오랜 만에 고향 땅을 밟은 김은 뭔가 옛날 얘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남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나봐. 그 여자를 집적대는 놈들이 제법 있었거든. 특히 동네 건달 놈 하나가 죽어라고 여자를 따라다녔지. 문제는 여자가 그 건달 놈을 끔찍이 싫어했다는 거야. 그렇다고 그 여자가 형의 여자도 아니었는데… 술집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괜히 말리다가 칼을 맞았으니,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하나 어리석었다고 해야 하나.”

듣기에 따라서는 꽤 험한 얘기를 김은 힘들이지 않고 말했다. 문득 그의 사진이 떠올랐다. 김의 사진은 그렇게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는 사람의 기분을 아스라하게 만드는 서정이 있었고 무언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동업자들 사이에서 그의 사진은 좀 알려져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직 알아주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면 유감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진 어디에 니나노집과 칼 맞아 죽은 형, 그 무덤덤한 술집 여자가 숨어 있었을까. 녹슨 함석지붕을 이고 있는 낡은 시골집 바깥벽에 매달려 있는 말라빠진 옥수수 알갱이들 사이에, 아니면 머리 수건을 동여매고 햇빛에 말라가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살피며 쪼그려 앉은 할머니의 굽은 등허리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사람살이의 이면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어제 오늘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순박하고 촌스럽게만 보이는 김의 이면도 만만치 않았다.

소주잔이 자주 비었다. 타인의 내밀한 얘기를 들었으면 나도 뭔가 털어놔야 할 것 같은데, 난 특별히 털어 놓을 만한 얘기거리가 없었다. 평범한 내 삶이 참 밋밋하게 보였다. 처음 술집 여자의 얘기를 들었을 때 문득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남에게 얘기할 만한 무엇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양광이 좋다고 해도 가을 해는 역시 짧았다. 이른 시간에 시작한 술자리는 싱싱한 회와 함께 김의 형님과 여자 얘기까지 안주 삼다보니 소주 몇 병이 금방 비워졌다. 어느 새 해가 지고 먼 바다로부터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야금야금 육지를 갉아먹고 있었다.

니나노집 얘기로 시작한 김의 얘기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돈 잘 버는 사진작가들 얘기를 안주 삼아 열심히 술잔을 기울였다. 잘 나가는 작가들의 이름이 우리들 입에 오르내릴 때 부러움과 시샘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린 언제 그들처럼 세상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될까. 결혼식 사진이고 돌잔치 사진이고 가리지 않고 뛰면서 밥벌이나 근근이 하는 형편에….

한참 술기운이 올랐는데 김이 느닷없이 갈 데가 있다면서 일어섰다. 뭐야 이거, 나 혼자 술 마시라고. 투덜댔지만 김은 막무가내로 택시를 불러 잡아타고 사라졌다. 이 동네가 고향이라니 갈 데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같이 술 마시다가 혼자 사라지면 어쩌란 말이냐, 나쁜 자식. 어이가 없었지만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뿐이었다.

김이 새버린 난 하릴없이 밖으로 나왔다. 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술로 달아오른 뺨을 식혔다. 바람에 섞여 있는 비릿한 갯내음이 나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하늘도 바다도 보이지 않았고, 멀리 가까이 간간이 보이는 고깃배의 불빛이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이 시간에 술 마시다 말고 어디를 가야 하나, 서울 같으면 아무 놈이라도 불러내겠지만 이 강원도 바닷가에선 더 불러낼 친구도 없었다. 혼자 바닷가를 어정거리는 내 꼴이 참 말이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마신 술이 영 찜찜했다.

하릴없이 바닷가를 따라 걷다보니 새로 지은 듯 보이는 깔끔한 모텔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직 잠자러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취한 듯 만 듯 마신 술도 깰 겸,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간간이 모텔이나 편의점이 눈에 띄어 잠자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등이 땀에 젖을 만큼 걷다보니 술도 다 깨버렸다. 잠자리에 들려면 술의 힘이 필요할 것 같아 편의점에 들어갔다. 소주 몇 병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모텔로 들어섰다.

창구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중년의 여자가 늦은 시간에 혼자 들어서는 남자를 보고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불러드릴까요?”

일 때문에 지방에 다닐 때마다 겪는 일이다. 그때마다 모텔에 들어와 여자를 찾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해지곤 한다. 특별히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돈 주고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벌 써 몇 년이 지났다. 그 여자의 첫 인상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예쁘지도 밉지도 않은 얼굴, 평범한 차림새, 특별히 눈에 띌 만한 것이 없었다. 원래 종교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동창 녀석의 간곡한 권유로 그 녀석이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친구의 간곡한 권유도 들어줄 겸 교회라는 데가 대체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도 작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다.

친구의 교회는 교인이 불과 삼십여 명에 불과한 작은 개척교회였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내 친구는 일할 사람이 많은 큰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가 자기를 더 필요로 한다면서 굳이 그 교회를 선택했다. 교인 수가 적어서인지 교회는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난 어떤 단체든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칫 개인 생활이 상당 부분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사생활에 끼어들거나 끈적거리는 태도로 사람을 붙잡는 것은 때로 참기 어려울 때가 있다.

친구 따라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교인들은 온 얼굴에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신입들에게 친절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지나친 친절은 종종 부담스러웠다. 정말로 교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교회에 나가고 있었던 나는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아니 처음 보게 된 것도 교회 권사라는 분의 지나친 친절 덕분이었다. 예배가 끝나도 할 일이 많은 친구는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고, 난 대개 혼자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 날은 교회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친구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행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권사라는 분이 내가 가는 방향을 묻더니 나를 어떤 젊은 여자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 여자는 운동회라도 온 사람처럼 흰 운동화에 청색 계통의 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권사님은 여자에게 나를 시내까지 태워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걸어오는 것을 본 친구가 차는 어쨌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수리중이라고 대답하는 말을 권사님이 들었던 것이다. 버스 타고 가면 된다고 사양했지만 권사라는 분은 굳이 여자에게 부탁했다.

삼십여 명밖에 안 되는 교인들이라 대충 눈에 익었지만 그 여자를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여자는 삼십 대 초반 쯤 돼 보였다. 그녀는 들를 데가 있어 시내 쪽으로 가지 않는다면서 부탁을 완곡히 거절했다. 여자의 빨간 색 소형차에는 환갑이 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이미 타고 있었다. 차문이 닫히자 빨간 색 소형차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저 두 분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저 차를 타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권사님이 사라져가는 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저는 버스타고 가면 되니까, 여기서 멀지도 않은데요 뭐.”

권사님은 괜스레 내게 미안해했다.

그렇게 잠깐 스쳐 지나간 사람을 오래 기억한 것은 아니다.


다음 일요일에 친구는 그때 차 안에 앉아 있던 나이든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석 달 전에 복지관에서 만나서 교회로 모신 분이야. 요즘 교회에 열심히 나오시는데 너도 많이 도와드려라.”

뭘 도와드리라는 말인지 몰랐지만 난 그러겠다고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개 비슷하다. 선의가 넘치는 얼굴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상대방에게 뭔가 친절을 베풀려고 하는 몸짓이 몸에 밴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조금 달랐다. 양쪽 볼에 늘어진 살과 입매가 밑으로 처진 얼굴은 약간은 심술궂게 보여서 교회 분위기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무뚝뚝한 표정이 때로는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시간이 지나면 저 아주머니 표정도 다른 교인들과 비슷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집이 두툼한 몸매에 값있어 보이는 옷차림은 그 여자의 경제적인 여유를 나타냈다. 동네 시장보다는 백화점을 주로 애용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친구는 아주머니를 복지관에서 만났다고 했다. 중풍기가 있어 물리치료를 받으러 복지관에 다니다가 내 친구를 만나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사회 복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구청 소속의 복지관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로 물리치료를 해준다는 말을 친구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저 아주머니는 보기에도 꽤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복지관에 다닌다고?”

아주머니가 자리를 뜬 다음에 친구에게 물었다.

“글쎄, 내가 알기에도 잘 사는 분 같은데… 복지관에 다니시는 걸 보면 알뜰하고 검소하신 분인가 봐.”

아주머니는 시내에서 제법 큰 숙박시설을 운영한다고 한다. 숙박시설이라면 호텔은 아니고 모텔을 말하는 것 같았다.

교회가 끝나자 그 날도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는 빨간 소형차를 타고 같이 떠났다.

그 후에도 두 사람이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사람을 태워 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교회가 끝나고 어떤 아주머니가 짐이 많아서 동승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젊은 여자는 무언가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차를 대단히 아끼는가 보다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탄다고 차가 망가질 것도 아닌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사람이 닮은 데가 없는 걸 보니 모녀간 같지는 않고 고부간인가?”

묘하게 관심을 끄는 두 사람이 왠지 마음에 걸려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웬 오지랖인가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가족은 아니고, 아마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인가 봐.”

아닌 게 아니라 가족이라기에는 두 사람 사이가 썩 정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늘 같이 다니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어딘가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교인들 중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늘 같이 오가는 걸 봐서 같은 동네에 사는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교인들끼리는 남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알 정도로 잘 알고 지내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좀 이상했다. 석 달이라면 그 정도는 서로 알 수 있는 시간인데…. 늙은 여자가 먼저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젊은 여자도 좀 뒤에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신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성경 공부는 재미있을 것 같아 몇 번 참석해 보았다. 그때마다 젊은 여자가 노트에 열심히 기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트 사이사이에 여러 색깔의 간지까지 붙여가면서 또박또박 얌전한 글씨로 강의 내용을 기록하는 모습이 여간 착실해 보이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꽤나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 그녀의 태도가 보기에 좋았다. 살짝 내려온 앞머리가 이마 한 쪽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에 적는 모습이 보기 좋아 하루는 몰래 사진 한 컷을 찍었다. 나중에 다른 사진들과 함께 인화해서 일요일에 젊은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이 착실한 학생 같기도 하고, 보기 좋아서 허락도 없이 한 장 찍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고개를 꾸벅이면서 내민 사진을 본 여자는 무척 당황했다.

“저, 사진 찍히는 거 안 좋아해요. 다시는 찍지 말아주세요.”

사진을 받아들고 안색이 확 변하더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거의 화를 낼 듯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당황했다. 허락 없이 사진을 찍은 건 잘못이지만, 그렇게까지 여자에게 충격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쩔쩔매면서 여자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찍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얘기했을 때 그는 심상하게 말했다.

“글쎄, 사진 찍히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더구나 허락도 안 받고 찍었으니 네 잘못이잖아.”

“잘못한 건 아는데, 굉장히 당황하는 것 같아서. 그냥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라 사진을 받아들고는 순간적으로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보이더라구. 사진을 왜 무서워하지?”

“영혼을 뺏어간다고 생각하나?”

친구는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웃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에게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그녀가 치고 있는 울타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거리감, 주위에 치고 있는 눈에 안 보이는 울타리가 그녀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가족적인 분위기의 교인들도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걸 보면 꽤 단단한 울타리 같았다.

예배가 끝나면 거의 모든 교인들이 예배실 옆의 작은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교회의 풍습이었다. 그 날도 친구와 함께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기다리면서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쪽에선 점심을 준비하고 한쪽에선 음식을 배분하고 있는데, 그 여자도 섞여서 같이 요리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같이 다니는 늙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야.”

“응? 누가?”

갑작스런 내 말에 친구는 벙벙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내 시선을 따라 그녀를 발견했다. 그놈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었다. 그 사람이 여자로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 건 아냐. 그냥 어딘가 이상해서. 평범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뭔가 있는 것 같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단 말야.”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없는 건 아냐. 교회 안에선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고 이런저런 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밖에서 하는 활동에는 절대로 같이 안 가려고 하는 게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 있지. 교인들끼리 가정방문을 하거나 야유회를 가기도 하는데, 그런 데 한 번도 낀 적이 없어. 교회에는 착실히 나오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말이야.”

“가족은 있나? 결혼은 한 거야?”

남의 개인사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 같아서 망서려지기는 했지만 내친 김에 물어보았다.

“결혼은 안 한 거 같고… 다른 가족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자들끼리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얘기는 잘 안 하는 거 같더라구.”

어쩐지 혼자 사는 여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새로 오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아주는,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의 그 교회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여자에게도 그런 위안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러나 정작 이상한 건 두 여자의 관계였다. 늙은 여자는 중풍기가 있어서 걸음이 좀 불편했다. 차에서 내릴 때도 힘들게 내리는 것 같은데 젊은 여자는 전혀 도와 줄 생각을 안 했다. 늙은 여자가 힘겹게 걸을 때 다른 교인들이 옆에서 부축해 주기도 하는데 젊은 여자는 항상 모른 체 했다. 젊은 여자가 늙은 여자에게 하는 말투는 냉랭하고 사무적이었다. 친절한 교인들이 늙은 여자를 배려해주고 챙겨주려고 하는 데 비해 젊은 여자는 일단 교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나면 늙은 여자를 모른 체하고 내팽개치듯이 무심하게 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인가, 예배가 끝나고 젊은 여자가 차 옆에 서서 늙은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빨간 소형차는 밝은 햇빛 아래서 선명한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늙은 여자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무심코 젊은 여자를 보다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햇살보다도 더 강한 빛이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햇빛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이마를 잔뜩 찡그린 그녀는 늙은 여자를 노려보듯이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그 눈빛에서 본 것은 진한 미움이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몇 번이나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지만 역시 그 눈빛은 경멸과 미움의 눈빛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의 눈빛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미워하면서 왜 같이 다닐까, 참으로 기묘한 커플이었다.


다음 날 늦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몹시 무거웠다. 전날 밤늦게까지 혼자 마신 술의 뒤끝이 영 안 좋은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더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 손으로 힘껏 누르면서 잠깐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정면에 보이는 거울이 달린 작은 화장대와 그 옆의 손바닥만한 냉장고, 두터운 커튼이 쳐진 창가에 놓인 작은 원탁과 그 위에 놓인 재떨이, 지방 촬영을 다닐 때마다 내 집이 되어주는 모텔방의 풍경이다. 침대에서 한참을 밍기적거리다가 해장을 해야 하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열두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전화에서는 화가 박의 목소리가 울렸다.

“일어났나? 해장 아직 안 했지? 나와서 해장 겸 점심이나 같이 하자.”

“뭐야, 사람 그렇게 바람맞히고.”

어제 박에게 바람맞고, 대타로 나온 김까지 술 마시다 말고 불쑥 혼자 나가버리는 바람에 늦은 가을날, 찬 비 맞은 중놈처럼 처량하게 혼자 터덜거리며 모텔을 찾았던 나는 댓바람에 투덜거렸지만 박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조건 나오라고 재촉했다.

정신을 차리고 대충 씻고 면도를 한 다음에 밖으로 나오니 한낮의 햇살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날씨는 날마다 왜 이렇게 지랄같이 좋을까. 어제와 다름없이 파랗고 파란 하늘과 바다를 멀리 실눈을 뜨고 바라보면서 공연히 투덜거렸다.

택시를 불러 타고 박이 설명한 대로 또 다른 횟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함께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낮부터 또 술이라, 어제 마신 술도 덜 깬 것 같은데…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 박은 우리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낯선 사람은 시를 쓰는 정아무개라고 했다. 어떤 시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화가 박이나 시인 정은 말하자면 지역의 문화인들이었다. 미처 서울까지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지방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언젠가는 한양에 입성하리라는 꿈을 꾸는 지방 문화인들, 서울 출신인 나는 그나마 지방 문화인도 못 된다. 두 사람은 지역에서 진행 중인 어떤 문화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화제라서 그냥 듣고 있자니까 그들은 서둘러 화제를 마무리 지었다.

“어제 김하고는 술 잘 했어?”

“잘 하기는? 같이 술 마시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나 혼자 주인 잃은 강아지 꼴 됐잖아.”

“그 친구 또 그 버릇 나왔군. 평소엔 얌전한 사람이 술만 마시면 가끔 병이 도진단 말야.”

“무슨 병인데?”

“아니, 사실 병이랄 것 까진 없고, 술 마시다가 갑자기 엄마 잃은 애처럼 여자를 찾아갈 때가 있어.”

“그럼 처음부터 여자 있는 술집으로 갈 것이지, 왜?”

“그런 여자가 아니고, 하긴 그 여자도 술집을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박의 말에 의하면 김의 여자는 술집을 하고 있고 나이가 김보다 열두어 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주 같이 사는 건 아니고, 김이 가끔 찾아가는 것 같은데, 어떤 사인지 잘 모르겠어.”

“엄마도 되고 누나도 되고 애인도 되고, 뭐 그런 거겠지.”

시인 정이 한 마디 보탰다. 두 사람 모두 김을 잘 아는 것 같았다.

“형이 하던 술집에 있던 여자라고 하지, 아마.”

박의 말이 이마를 때렸다. 그럼, 그 여자란 말인가. 김의 형님을 칼 맞아 죽게 했다던 여자. 이런, 제길… 형님이 그렇게 비명횡사한 후, 늙은 홀어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된 김의 가족을 돌봐준 사람이 그 여자였다고 한다. 여자가 무슨 수로 김의 가족을 돌봐주었다는 말인가. 결국 술 팔고 몸 팔아서 부양했다는 말이었다. 의리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두 사람은 그 여자가 죽은 형의 여자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난 두 사람이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는 김의 말을 믿고 싶었다. 김의 얘기를 들을 때는 어린 시절의 지나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김에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여자였다. 그런데 왜 김은 나에게, 그 여자 얘기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털어놨을까. 우리는 그렇게 내밀한 얘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종교에 대한 관심도 엷어지고 지방으로 출사나가는 일도 잦아지면서 그 작은 교회하고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길 잃은 어린 양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의 선의가 조금씩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바보가 아닌 친구는 잘못하면 우정까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단념하고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교회에서 멀어지면서 두 여자에 대한 일도 잊어버렸다.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가 이상하긴 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에 오래 관심을 가지기에는 내 생활이 그다지 한가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그런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나 할 만큼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내 친구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친구들과의 술자리까지 마다할 만큼 꽉 막힌 놈은 아니었다. 교회 일만큼 동창회 일도 열심히 하는 친구는 내가 모르는 동창들 소식을 이것저것 전해 주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친구는 문득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무슨 일인데?”

그의 망설이는 태도가 수상했다.

“내가 복지관에서 일하는 거 알지?”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하는 얼굴로 그를 보자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거기서 그 아주머니를 만났어.”

복지관, 아주머니,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 친구가 그 늙은 여자를 처음 만난 곳이 복지관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일이었다. 교회에 안 나가게 되면서 나는 몰랐지만, 그 두 여자도 몇 달 지나지 않아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젊은 여자가 먼저 안 나오더니 늙은 여자도 차차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친구는 복지관에서 늙은 여자를 만날 때마다 교회에 다시 나오도록 설득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늙은 여자가 어쩐지 교회하고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한 표정이 다른 교인들의 웃는 얼굴과는 너무 달랐던 것이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교인들이 다 착한 사람들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들은 일단 교회에 오면 미리 준비라도 해 두었던 것처럼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얼굴이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가식적인 미소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겠지만 미소 띤 얼굴이 심통 난 얼굴보다 보기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약간 심술기 있어 보이는 얼굴에 잘 웃지도 않아서 비슷비슷한 표정의 다른 교인들과 달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친구는 복지관에서도 그 여자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돈 있는 사람이니까 시설이 더 좋은 곳에 다니나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친구는 아주 오랜 만에 복지관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났다. 서로 안부를 묻는 가운데 친구는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던 젊은 여자의 안부도 묻게 되었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별 망설임도 없이 젊은 여자의 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늙은 여자가 소유한 모텔은 관광객이 이용하는 숙박시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관광지도 아닌 수도권의 한 도시 시내 한복판에 있는 모텔의 용도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뻔한 것이다.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가 소유한 모텔의 옥탑방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의 직장이 바로 그 모텔이었기 때문이다. 남자 손님이 혼자 모텔에 들었을 때, 손님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베풀어주는 일, 그것이 그녀의 직업이었다. 그 얘기를 친구는 더듬거리면서, 찡그린 얼굴로, 난처해하면서 조금씩 털어놓았다. 사진 일 때문에 지방에서 하루 이틀 묵게 될 때마다 자주 겪는 일, 아니, 친절한 모텔 주인들이 내게 권유하던 일, 모텔의 옥탑방에 사는 젊은 여자의 ‘용도’는 바로 그것이었다. ‘용도’라는 말은 늙은 여자가 내 친구에게 쓴 표현이었다. 포주와 창녀,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였던 것이다. 젊은 여자가 늙은 여자를 바라볼 때의 미움에 찬 표정이 떠올랐다. 무료 시설을 이용하던 돈 많은 늙은 여자가 젊은 여자에게 인심 좋은 포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여자가 감추고 싶었던 속사정, 그래서 울타리를 치고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그녀의 사정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여자에 의해 여지없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친구는 물론 교회의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절에 내가 보였던 그녀에 대한 약간의 관심 때문에 친구는 내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비밀이 아닌 타인의 비밀을… 나는 친구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젊은 여자가 늘 신고 다니던 하얀 운동화가 떠올랐다. 단정한 바지 차림에 언제나 새것처럼 보이던 하얀 운동화가 마음을 애잔하게 했다. (2010.1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탈리아 수도원 기행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