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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Nov 12. 2019

끌림, 폴킴

이-끌림, 확-끌림, 그냥 끌림

무언가에 단단히 빠지기 위해서는

이-끌림이 필요하고,
확-끌림이 필요하고
그냥 끌림이 필요하다.

고 생각한다.






이끌림,


사람들은 행동의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하지만, 늘상 그렇듯 우리는 먼저 끌려놓고 나중에 이유를 붙인다. 감성이 먼저고 이성은 나중이다. 끌림이 먼저고 설명은 다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폴킴>이라는 브랜드를 이야기하고 싶다. 마음이 그러라고 시킨 글이니, 이 역시 끌림이 작용한 글이다.
이끌림, 확끌림, 그냥 끌림은 폴킴에게 붙여주고 싶은 예쁜 말인 것이다.

내가 첫 책을 만들고 있을 무렵, 나는 자유인이었고 친구는 자유롭지 못한 당직 인생이었다. 친구는 내게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가서 본인이 사고 싶은 스마트펜의 필기감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강남 교보문고에 가서 필기감이 어떤지, 크기는 어떻고 손에 쥐는 그립감은 어떤지, 반응속도는 어떤지 꼼꼼히 살피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가 들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곳에는 우리를 혹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들이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끌렸다.


스마트펜을 놓고 거대한 블루투스 앞에 섰다.


‘좋다.’
간단히 감동하면서, 다 끝나가는 노래의 가사 한 줄이라고 들으려고 애썼다.


나는 가사를 정확히 듣지 못한다. 노래를 들으면 멜로디와 세션 음악은 들리는데, 가사는 안 들린다. 아마 머릿속에 노래를 inst.로 바꾸는 편곡 기능이 있나 보다. 게다가 그 음악을 들으며 내가 느낀 대로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는 신기한 재능까지 있다. 그래도 무슨 노래인지 알고 싶으니 들으려고 애썼다.
 
하필이면 그때는 핸드폰이 또 방전이라 최첨단 기술인 ‘샤잠’(노래를 들려주면 바로 무슨 노래인지 알려주는 노래 검색 앱)도 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가사를 한 줄이라도 외워야 한다. 얼핏 한 두 마디를 따낸 뒤,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며 뇌에 콕 박히기를 바랐다.

기억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감동이라 했는데, 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되새겨봐도 기억은 나질 않았다. 이제 핸드폰도 충전됐겠다, 머릿속에서 그 단어만 튀어나오면 되는데 말이다. 기억 속에서 그나마 건져 올린 건, ‘순간순간이’라는 가사뿐이었다. 음악 앱을 켜고 ‘순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모든 노래를 다 들어봤다. 그렇게 이 노래를 찾았다.


‘모든 날 모든 순간’
그게 내가 폴킴에게 이끌렸던 첫 순간이다.






두 번째, 확 끌림.


<공부쟁이의 궤도 밖의 삶>이라는 책을 낼 무렵, 이끌렸던 순간으로부터 1개월은 지났을 때다. 나는 어떤 마음에선지 폴킴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러다 그가 출연한 예능 한 편을 본다. 그는 <김제동의 톡 투유>의 패널로 출연해서, 사연에 맞는 노래를 부르고 본인의 경험담도 털어놓곤 했다. 그리고 내가 본 몇 장의 사진 속에서 폴킴은 내가 줄곧 생각하던 ‘궤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큰 마음을 먹고 한 일탈이었지만, 그 일탈도 이미 많은 사람이 속해있는 궤도였어요.
궤도라는 게 굉장히 여러 가지가 존재하고, 내가 꼭 그 궤도 안에 속해야 한다는 압박감, 구속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크게 좋았다. 이제 막 ‘궤도’라는 이야기로 책을 세상에 내놓으려는 순간이었고, 내가 고민하던 비슷한 고민을 했을 거라는 동질감도 들었다. 그가 외국에서 유학을 하며 공부를 하던 사람이라는 점도.  사람은 어떤 사람의 한 마디 위로보다도 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삶의 행동이 닮아있을 때,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원격적으로 동한다.



책을 내고 또 2주가 지났을 무렵, 나는 용기를 내어 책방에 입고 신청을 보냈다. 사장님은 마침 궤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며 반가워해주셨다. 그 책방은 입고된 책 전부를 직접 읽고 나서 후기와 함께 책을 소개하는데 나는 그 중 이 글귀가 유독 좋았다.


내가 있는 곳 어디든 안이라고



사실 궤도라는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짜 맞춰진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처럼 들리거든요. 하지만... 때로는 ‘밖’이 엄청 좋은 법입니다. 밖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어디든 당신이 있는 곳이 ‘안’인 것을.


게다가, 이미 충실한 자기 삶의 궤를 걷고 있으니 앞으로도 꾸준하라고, 더 재미있는 삶을 즐기라고, 그리고 새로운 궤도를 개척하라는 말도 덧붙여주셨다.



5월 중순, 소소시장에 참가했을 때, 나는 내 책을 사주시는 분에게 <이탈한 자가 문득>이라는 시를 자필로 적어 선물했다.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사람으로 폴킴이 좋아진, 확 끌린 순간이었다.

고민하는 존재, 행동하는 마음을 가진 일상을 노래하는 폴킴.



폴킴은 유학생활을 관두고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가수가 되진 못했고, 그래도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 그 시절 만들어둔 노래들이 있다.

누가 내 맘 좀 알아줘. 기댈
하루만 해도 수십 번 나에게 물어.
정말 자신 있냐고.
여기서 멈춰버리면 후회할 것 같아.
모두가 나를 위로해. 그만 하면 됐다고.
누가 내 맘 좀 알아줘. 이런 내 맘좀 알아줘.
모든 게 다 두려워
누가 내 맘좀 알아줘.
제발 좀 내 맘 좀 알아줘

조금 더 조금 더 가면 늘 꿈꾸던 세상 닿을 것만 같아.
다시 눈 뜨면 여긴 추운 겨울
버틸 수 있을까 두렵지만 가야할 길.

-폴킴, <길>.


그건 내가 고시생활을 하며, 하루를 공부로 채운 뒤 12시에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밤마다 지어 부르던 노래, 그 가사와도 통했다.


후에, 폴킴의 터널을 들으며,

내가 그렸던 공부 터널과 그가 생각한 터널의 가사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매일이 전혀 다르지 않아
늘 같은 자리에 빼곡히 쌓인 불빛
더 나아갈 길이 전혀 보이질 않아

끝도 없이 걷는 기분
포기하고 싶은 마음
닿을 수 있을지 의문
나에게 물어봐 질문
그게 현실이란 이유
듣기 싫어 그런 이윤
다른 길 없을지 의문
아무 의미 없는 질문

-폴킴, <터널>

그때는 내가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 터널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몇 미터쯤인지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계속 어둠 속에서 전진만 할 뿐.

빛이 들어오는 지점이 되어야, 피니시 라인이 보일 때 쯤이 되어야, 끝을 감각적으로 알게 되는 공부 터널 말이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공부와는 결이 달랐던 공부를 하던 공부 터널.


항상 외롭고 항상 서러워
항상 힘들고 항상 속상해
변해버린 이 내 모습이 익숙지는 않네요.
항상 외롭고 항상 서러워
항상 힘들고 또 항상 속상해
내일은 괜찮아질 거야

-폴킴, <오늘 밤>


이 노래를 들을 때는, 몇 년 전의 이불 속의 나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나는 폴킴의 이런 시절이 있기에 그가 오늘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온전히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서 노래를 지었고, 그 마음이 흘러 사람들에게 젖어든다. 나도 내 책을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썼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가수가 된 폴킴의 요즘 앨범은 또 다르다. 사람은 각자 그 시절에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요즘은 폴킴의 New day를 좋아한다. 아무쪼록 반갑고, 앞으로 폴킴이 생애주기마다 하는 고민에서 어떤 곡들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세 번째 그냥 끌림,


이끌리고 확끌리고 나서는 그냥 폴킴의 모든 게 끌린다. 새 노래가 나왔는지 매번 확인하지 않고 잘 모르지만, 형부의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안녕’이라는 목소리에, 이 가수 누구지? 너무 좋다, 해서 찾아보면 폴킴. 또 폴킴.


폴킴의 진정성 있는 노래하는 모습이 좋다.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잡고서, 진심을 다하고 싶은 구절에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힘을 다해 부르는 모습.

한 음 한 음 힘주어 부르면서 생기는 보조개.

그래서 폴킴은 발라드 가수지만 영상을 봐야 한다. 진정성이 보여서.



그의 노래를 듣지만, 책을 읽듯이 나를 투영해본다.


무언가에 단단히 빠지려면 적어도 이 세 단계는 거쳐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다.

일상을 노래하는 폴킴처럼, 나도 내 일상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다음은 폴킴이 <터널>이라는 곡을 쓰면서의 생각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터널 안에 갇힌 듯한 순간이 있죠. 그 답답함을 묵묵히 이겨 내자. 혹은 탈출해 먼 우주로 떠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차피 기다릴 거 속 시원하게 힘들다 인정하고 그동안 춤이나 추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최근 읽은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인용한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 춤이나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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