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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Nov 21. 2019

은하수를 잡으러 오른 한라산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은 온통 사람의 길이니

이 등반은 파란 포스트잇에서 시작되었다.



산의 최종 종착지는 막연히 한라산으로 생각했고, 그곳을 가고자 포스트잇에 써 붙여두었다. 지난 5월, 자전거를 타고 제주 환상 종주를 마치고 <제주반바퀴 시즌1>을 마무리하는 그림에, 나는 ‘다음 제주여행 테마는 오름과 한라산으로!’라고 적었다. 언젠가 가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역시 사람은 생각한 대로 오늘을 산다.




새벽 6시 10분, 제주터미널에서 급행 181번을 타고 30분가량 지나니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한다.

동이 트기 전 고요한 등산로 입구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는데 오늘은 강풍주의보라 진달래대피소까지만 등산이 가능하고, 이를 어기고 정상 진입을 시도하면 고액의 과태료를 문단다. 어제 확인한 산악 예보에는 오후가 되면 날이 조금 풀린다니 서너 시간이 지나면 입산 통제가 풀리지는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올랐다. 진달래 대피소까지 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만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백록담을 보고 오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큰데, 그런 아쉬움을 안고 육지로 돌아갈 동행들이 곳곳에 함께 한다.




태산


산을 오를 때 양사언의 시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한라산에 오르기 전날 밤, 태산을 오르는 다큐를 보았다. 지금까지 태산을 큰 산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 산동성에 존재하는 산이란다. 중국, 오악산 중에 으뜸으로 일컫는 이 산의 별칭은 오악독존이다. 오악산 중 가장 높은 것은 화산이니 태산은 가장 높지도 않고 가장 수려하지도 않다. 다만 동쪽 방향으로 나 있는 태산이기에, 동은 태양이 떠오르고 봄에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곳이기에,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이곳에 오르려면 남천문을 향해 길게 뻗은 계단을 4시간가량을 올라야 하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백과 두보도 태산을 올랐다고 한다.



이백


이백은 가장 우울한 시기에 태산을 올라 자신을 무시하는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시를 남긴다. 이런 패기로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 그 이후에는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남천문에서 한 번 길게 휘파람을 부니
만리에서 청풍이 불어오누나
텅 빈 듯 작은 우주여
세상을 버리니 이 얼마나 유유한가,

이백, <유태산>




두보


두보는 스물다섯에 과거시험에 낙제하여 한참을 방황한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방황의 종지부를 찍고 이곳에 올라 시를 짓는다.

타이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와 노에 걸쳐 푸름이 끝이 없구나
조물주는 신령하고 수려한 봉우리를 모았고
산의 남북은 어둠과 새벽을 갈랐구나
씻겨진 가슴에는 높은 구름 피어오르고
터질 듯한 눈자위로 돌아가는 새들 들어온다
언젠가 산 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산봉우리들을 한번 굽어보리라,

두보, <망악>



나 또한 한라 백록담에 올라 세상을 향해 가슴을 펴는 패기를 장착하고 오겠다고 다짐을 하고 전날 잠을 이루었다. 지난달에는 5키로 마라톤을 했고, 그동안 쭈욱 자전거를 타왔다. 그런데 산을 오르며 인생을 가장 많이 배운다.  자전거를 탈 때는 도로 신경을 써야 하고 마라톤을 할 때는 숨을 헐떡이느라 바쁜데, 등산을 할 때는 사색하기 좋다. 등산의 속도가 셋 중 가장 느리기 때문일까.


그런데, 나는 갑자기 왜 산을 오르는가, 어느 날 단풍이 예뻤고, 어느 날 산이 늠름해 보였고, 그냥 어느 날 내 안으로 들어왔다. 경치도 좋고 물소리도 좋지만, 가장 좋은 점은 한 발 한 발 밟아나가면 어느덧 정상이라는 점이다. 양사언의 시처럼.

산을 오르며 만나는 새로 알게 되는 식물들과의 만남도 설렌다.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또 새로운 새와 마주칠 것도 기대된다. 광합성을 하겠다고 쭉쭉 뻗어있는 나무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도 좋아한다. 베낭을 메면, 내가 먹을 만큼 등 뒤에 짊어지고 간다는 상징성도 나쁘지 않다.





굴거리나무와 조릿대

굴거리나무
조릿대


진달래 대피소까지 오르는 동안 가장 많이 본 식물,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두 식물은 조릿대와 굴거리나무다. 초반에는 나무들과 나무보다 키가 작은 굴거리나무가 등산로 좌우로 가득하다. 그러다 조금 더 오르면 이번에는 좌우로 조릿대가 가득하다. 조릿대는 우리 집에 있는 관음죽을 닮았고, 굴거리나무는 생김새가 특이한데, 겨울이라 잎을 늘어뜨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잎이 아니라 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어둔 듯한 모습이다.
사실, 1900미터 까지 오르면서 펼쳐지는 색다른 생태환경을 기대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어떤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가보지 못한 길에 설렘이 가득하다.


왜 이렇게 조릿대가 많은가, 싶을 정도로 걱정하고 있는데 곳곳에 연구 팻말이 보인다. 한라산 고지대까지 확산되고 있는 제주조릿대 관리방안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말 방목, 벌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릿대가 확산되지 않고 한라산의 보고가 사라지지 않도록 연구 중이라고 한다. 거문오름에서도 삼나무 하나를 베면 제주의 생태계가 다양하게 자생한다고 들었다. 이 연구가 시작될 때는 30여 종의 식물이 분포했는데, 현재는 60-70여 종이 확인되고 있다니 시간이 지나 다시 한라산에 오르면 다양한 식물들과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로 가득 찬다. 다음 등산 때는 정상에 올라 관음사로 하산하면서 다양한 풍광을 눈에 담아야겠다.





사라오름


사라오름


작은 백록담으로 불리우는 사라오름, 이곳에는 비가 오면 산정호수가 생긴다. 오늘은 정상통제가 된 날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사라오름도 함께 올랐다. 나도 백록담을 목표로 했다면, 하산하는 길에 들렸을 테지만, 그랬기에 사라오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사라오름을 백록담의 아류가 아니라, 사라오름 자체의 아름다움을 깊숙이 새길 수 있었다. 다른 이보다 내게 사라오름은 조금 더 밀도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눈이 와서였을 지도 모른다. 상고대의 멋짐이 사라오름을 더 판타지로 만들어주었다.

오늘 정상 통제가 되리라는 건 어제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산악 예보에는 강풍과 함께 1cm의 적설량이 예고되었고 나는 무척이나 기대됐다. 정상을 올라가지 못해도 한라산의 첫눈이었고 설경을 볼 수 있는 기회니까! 사라오름은 눈으로 가득 찼고 만족스러웠다.

 
산정호수를 둘러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그곳에서는 백록담을 전망할 수 있는데, 이날은 역시나 강풍주의보로 구름이 운집해 있어 백록담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대신 내가 올라갔을 때 아주 잠깐 동안 구름이 빠르게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워낙 하늘이 먹구름, 흰구름으로 가득하다 보니 잠깐의 청명한 하늘임에도 감사했다. 사라오름 입구에서 아이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주머니께, 쾌히 사라오름을 추천드렸다. 아이들은 40분이면 된다는 사라오름으로 쾌재를 부르며 올라갔다.

구름에 가린 백록담
귀한 해





큰 부리 까마귀


하산하는 길에 사라오름 근처를 지나다가, 까마귀가 보고 싶어 까마귀 흉내를 냈다. 까악- 까-악. 그런 나를 보고, 산을 오르던 한 아저씨가 까마귀 엄마 같다며 웃음을 지으신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패딩을 입은 그 아저씨는 인자한 인상으로 까마귀는 속까지 검은 좋은 동물이라고 칭찬하신다. 까치가 배신자라며 말이다. 나도 요 며칠 제주도 까마귀와 함께하는데, 그 자태가 늠름하기 이를 데가 없다. 게다가 설경에 온몸이 검은 까마귀의 조합은 더욱더 까마귀를 멋지게 만든다. 설경을 담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메고 오르던 아저씨. 내일 다시 한라산에 오신단다. 나는 아쉽게도 오늘 비행기로 떠난다며 인사를 하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언젠가 또 만나기를 바라면서, 멋진 카메라를 가진 아저씨께 한 컷 부탁을 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진달래 대피소


봄에 오면 진달래로 만발하는 풍경, 그래서 진달래 대피소인가 보다. 제1 대피소, 제2 대피소가 아니라 진달래 대피소라서 얼마나 정겨운지 모른다. 그 말에 5월에 다시 진달래를 보러 한라산에 오고 싶어 졌다. 우리 집에 입산통제로 진달래 대피소까지 밖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오늘로 한 명 더 추가되었다. 언니 손 붙잡고 함께 백록담에 가야겠다는 새로운 여행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그리고 그 날이 진달래가 만발한 봄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진달래 대피소 상고대


사라오름만큼이나 진달래 대피소 앞 상고대도 탁월하게 멋졌다. 그곳에서 아쉬운 등산객들은 상고대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거기에서 산행을 온 한 부자에게 아빠와 내 사진을 부탁했고, 우리도 사진을 찍어드렸다. 진달래 대피소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도, 그 부자와 마주쳤다. 중학생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인데, 화장실에 간 아빠를 위해 맡아둔 자리를 그 아이에게 양보했다. 좋은 마음을 쓰니 아빠가 돌아오는 순간에 또 내 옆자리가 나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고, 그 아이의 아빠는 땅바닥 신세였다. 아이는 의자에 앉혀놓고, 본인은 땅바닥에서 챙겨 온 보온병 물을 담아 컵라면을 익혀 아이에게 준다. 또다시 김밥을 쥐어준다. 그러다가 목 막힌다며 다시 컵라면을 쥐어준다. 그 아이는 아까 사진을 찍어줄 때도 크게 웃지 않았다. 소극적이게 아빠가 주는 걸 받아먹는 아이와 더 따뜻한 걸 챙겨주려고 하고, 과일도 입에 넣어주는 아빠를 보며 ‘내 새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잠겼다. 그런데 생각이 스치는 찰나 내 손에도 아빠가 쥐어준 김밥이 들려있었다. 도대체 내 새끼라는 게 뭐길래, 다들 그러는 걸까. 왜 먼저 입에 넣어주고.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면서 하는 걸까. 그런 마음이 들기도 전에 당연한 걸까.




내 새끼란 무엇인가


내게는 내 새끼가 하나 있다. 고양이 구름이. 작고 소중한 어린 고양이 시절부터 함께해온 구름이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내 밥을 먹기 전에 꼭 구름이 캔을 데워준다. 새소리를 들려주고, 바깥바람을 쐬게 해주는 그 행동이 일어나는 동안 내가 희생한다는 그런 개념이 들어올 새가 없다. 자연스럽게 회로가 흘러간다. 그런 걸까. 내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내 새끼는 이게 전부다.


아빠는 날다람쥐처럼 산을 올라다니는 사람이지만, 나랑 오를 때는 내 걸음에 맞춰준다. 등산스틱에 내가 맞을까 봐 뒤로는 절대 휘두르지 않는다. 나는 등산가방 없이 맨몸으로 오르는데 아빠는 짊어진다. 도대체 내 새끼가 뭐길래. 구름이가 혹시 내 커다란 발에 맞을까 봐 조심조심하고, 같이 걸을 때는 구름이 속도에 맞춰 걷는 그런 걸까. 내가 해석할 수 있는 내 새끼는 이게 전부다.

<내 새끼란 무엇인가>, 나

진달래 대피소 사람 가득한 곳에서
내 새끼 앉혀두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라면을 끓여 한 모금,
손에는 김밥 하나 쥐어주게 하는
내 새끼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 생각하는 내 손에도
아빠가 쥐어준
차가운 김밥이 들려있다

하얗고 작은 고양이를 향하는
그 마음과 비슷하려나





하산 후, 성판악 휴게소에서 박노해 시인의 시를 보았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9년 1월 격동하는 21세기를 준비하며
한라산 성판악 휴게소에서
박노해



내가 그들과 공명할 수 있는 주파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일까.

희망찬 사람은 그 사람 자체로 LED처럼 자가 발광하는 불빛이고, 좋은 사람은 이미 좋은 세상이며,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산을 다니다 보면 등산로가 나 있다. 나무데크로 나있는 길 말고, 발길로 만들어진 흙길. 길은,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라 불러진다. 그러니 늘 그 길을 먼저 밟아내는 사람이 있다. 한라산을 다녀온 다음 날 회복차 뒷동산에 오르는데, 인적이 드문 데다 낙엽이 쌓여 길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낙엽을 밟고 지나가며 또다시 길을 내었다.


그렇게 살아가자.


하나의 시를 더 소개한다.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이 시에서 나는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란 구절이 좋다.


내가 닿지 못한 백록담을 까마귀는 날아오를 수 있다. 온 하늘이 온통 새의 길이듯, 삶은 온통 사람의 길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기대했던 백록담의 경치를 눈에 담지 못했어도 설경을 만났고, 굴거리나무와 조릿대를 만났고, 까마귀 소리를 흉내 내다 사진을 찍는 초록 패딩 아저씨를 만났고, 사라오름만을 주연으로 낙점한 등산을 했고, 성판악에서 백록담을 거쳐 관음사로 넘어갔다면 마주치지 못했을 박노해 시인의 시를 성판악 휴게소에서 만났다.


나는 어디서든 발견할  있는 눈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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