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텐슈 Nov 22. 2019

은하수를 잡으러 오른 한라산. 2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자연을 둘러볼 체력


성판악으로 백록담을 오르는 코스는 왕복 20키로에 길게 잡아 약 9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12시까지 진달래 대피소를 통과해야 하는 입산통제 규정도 있고, 백록담에서는 13:30에 하산해야 한다. 그래야 조난 위험 없이 해 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다. 내 체력이 어디까지 되는지 모르니, 일찍 나서서 새벽 7시에 오르기로 했다.

그리고 은하수를 잡을 만큼 높다는 한라산을 위해 동네 뒷산(해발 600)에서 훈련했다. 왜냐면,


살랑살랑 오르면서 자연을 둘러보고 싶어서



아무리 어려운 산이라도, 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막상 눈 앞에 길이 놓이면 오를 수는 있다. 그런데 같은 길을 힘들게 올라 고통의 한라산으로 남길 것인가, 살랑살랑 오를 체력을 준비해 한라산의 고도에 따른 식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오를 것인가는 다르다.


몇 년 전 태백산으로 새해 일출을 보러 갔다. 새벽 산행이라 잠을 못 이루고 올랐다. 오르긴 오른다. 그곳에서 본 정상의 주목나무도, 일출도 다 기억난다. 그런데 오르는 과정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소백산에도 철쭉을 보러 갔었는데, 정상에서 사진 찍은 것은 기억이 나는데, 올라가는 과정에서는 힘들어서 주저앉은 장면만 떠오른다. 산을 즐기지 못했다. 힘듦이 더 컸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살랑살랑 오르며 자연을 둘러보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여력이 있어야 주변을 보든 할 테니.


사실, 한라산이 1920미터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몰랐고, 한라산을 간다고 할 때, 호기롭게 나설 때도 왕복20키로나 되는지 몰랐다. 태백산도 밤새고도 올라가는데 한라산도 갈 테지, 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수치를 듣고 나니 좀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20km 산행을 나선다.


내가 오를 성판악 코스는 3가지 구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1구간은 완만한 경사길(약 5km), 2구간은 보통의 등산길(약 2km), 3구간은 조금 어려운 코스(2.3km)라 한다. 마침 동네 뒷산 등산로까지 오르려면 걸어서 6키로 정도고, 등산을 하고 돌아오면 왕복 20키로가 채워지더라. 그래서 이 구간을 훈련 구간으로 삼았다.


첫날은 등산로 입구까지 다녀왔다. 원래는 조금 더 가려했는데, 경치가 좋아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해가 졌다. 둘째 날에는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가서 둘레길을 좀 걸었다. 셋째 날에는 등산화를 새로 장착하고 임도로 왕복하고, 넷째 날에는 계단 투성인 등산로로 등산을 시작했다. 그 뒤로는 고강도 산행 대신, 가벼운 산책으로 지냈다. 주말에는 근육을 풀기 위해 라이딩을 나섰다. 그랬더니 한라산에 오르는 동안 크게 힘들지 않았다.


7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사라오름을 왕복하고 진달래 대피소에 10시 반에 도착했고, 11시에 하산을 시작해서 13:30에 성판악 휴게소로 다시 돌아왔다. 그랬는데도 체력이 남았으니 준비는 제대로 한 모양이다. 정상 갈 컨디션이었는데 말이다.





단절된 비행


사실상 섬인 우리나라에서 해외를 가려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육로로 이동하는 것보다 해로, 그리고 특히나 비행기로 이동할 때는 공간이 잠시 단절된다. 그래서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제주에 가면 해외에 도착한 기분이다. 게다가 요즘은 날씨 온도차가 심해서, 영상 1,2도의 도시에서 영상 25도의 제주로 점프하니 더욱더 이국적이었다. 챙겨 온 패딩과 바람막이가 무색할 정도로. 하지만 그곳에도 이국적인 백록담에는 영하 5도라 하니, 날씨로 시공간이 분리된다.

이국적인 25도





문경수의 제주 탐험


오름이라는 명칭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 편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관점으로 제주를 바라보고 싶어서, 과학의 눈으로 제주를 보고 싶어서, 책을 골랐다.  <문경수의 제주 탐험>.  책에는 아빠가 내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곶자왈이 설명되어 있어서 단숨에 흥미가 붙었다. 게다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한라산과 용암동굴도 함께.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눈으로 보는 이라고 했단다.


이 책을 쓴 문경수 저자도 시선이 바뀌니 익숙했던 일상이 달리 보이고, 망원경이 우주를 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것처럼 선상 탐험이 제주의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썼다.


나도 지금까지 제주를 3번 여행했다. 한 번은 어린 시절 가족여행으로, 2번 째는 자전거를 타고 일주 여행을 했고, 3번째가 지금이다. 자전거 일주 여행을 하면서 해안을 달리면서, 제주의 자연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책으로 본 오름과 한라산에 올라보고 싶다는 후기를 남겼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장착하게 되었고, 특히 확인하고 싶었던 곳이 바로 곶자왈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숨굴로 물이 유입되어 지하수로 저장된다는 곶자왈. 그래서 연중 16-18도를 유지하며 겨울에도 온대식물이 자라고 여름에도 한대 식물이 자라는 엄청난 보고를 보고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단법인 곶자왈을 설립하고, 왜 어떤 지역에는 비가 오면 물난리가 고 어디는 나지 않는 건지 궁금해하며 질문을 던지고 연구를 계속한 송시태 박사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마시는 삼다수가 바로 이런 지하수로부터 생성된다는 연결고리까지 함께.




곶자왈


곶자왈은 곶+자왈이지만 요즘은 통틀어서 곶자왈이라 불린다. 곶은 숲이고,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로 덤불에 해당한다. 돌무더기 위에서 나무가 자란다. 그것만으로도 신비한 곳. 그러나 예전에는 불모지, 가치가 떨어지는 땅으로 알려지던 시기도 있었다. 제주에 도착해서 택시기사님께 곶자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원시림 같은 곳이라 하셨다. 나는 여러 곶자왈 중에, 테마파크 형식인 에코랜드에 방문했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동백
동백꽃 몽우리
돌무더기에서 자라는 나무의 뿌리
고사리 군락지
내가 걸은 곶자왈 길
노래: 이상한 사람-존 박

요즘 가장 보고 싶었던 동백꽃, 만개하지 않았지만 몽우리의 순간과 간간히 핀 소중한 한 송이를 봤다.


곶자왈에서는 제주도의 고사리들을 많이 보았는데, 궁금하던 1속1종의 한국 고유종 고사리삼을 보진 못했다. 그 밖에 서어나무, 사람주나무 신기한 이름의 나무를 만났다.


에코로드는 전 구간이 화산송이 길로 이루어져있고 중간에는 맨발로 화산송이체험할 수 있는 구간이 있다. 오감을 써서 자연과 교감하고 싶다. 그 중, 보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맛을 보는 일은 일상이지만 촉각을 제일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 뒤로, 이처럼 맨발체험이라던지 맨손으로 만져볼 수 있으면 하려고 한다. 나무도 만져보고, 동백꽃 잎 반질반질한 잎도 만져본다.  


발로 만져본 화산송이는 딱딱했고 딴딴했고 따가웠다. 오래버티지 못하고 등산화 속으로 도망쳤다. 신기한 건, 발에 하나도 붉은 기가 묻지 않았던 것.


갈대도 만져봤다. 우둘투둘하다. 지난 번 만져본 것과 또 다른 감촉이다. 갈대인지 억새인지 잘 모른다.




성산일출봉


둘째 날 아침, 기상을 확인했는데 비 예보가 여전하다. 역시나 한라산은 정상탐방 통제. 마지막 날 하루를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오늘은 성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어릴  가족여행으로 왔던 곳이다. 그때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말 타는 사진을 찍었고,  뒤로 힘겹게 올라가서 분화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조금 자란 나는 4키로 가량의 등산 가방을 메고 내일의 한라산 예행연습을 한다는 마음으로 오른다. 그런데 10 즈음 오르니 어느덧 정상이다. 내가 자란 만큼 성산일출봉 등산은 수월해졌고, 예전보다 분화구는 작아 보인다. 


성산일출봉 아래 해안가 지층

책을 읽으며 곶자왈 다음으로 탐냈던 곳은 수월봉이었다. 뚜벅이 산행자인 이번 여행에서 수월봉까지 가기는 동선이 나오지 않았다. 수월봉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여기서 채운다.


성산일출봉에는 입장료를 내는 일출봉 코스와 해안가를 산책할 수 있는 무료 코스가 나뉘어 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해안가에 성산 해녀의 집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에 이런 멋진, 가보지 않은 수월봉을 대리 충족해주는 이름 없는 지층이 있다. 마치 물레로 도예를 하듯 결이 살아있는 지층이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지층을 멋지게 담아봤다.


해안가에도 멋진 풍경이 가득하다. 아마 침식과 퇴적이 함께 발생하며 빚어낸 게 아닐까, 아직 거기까지 밖에 보지 못하는 눈이다.

지질에 대해 공부를 해서 다음 제주를 방문할 때는 이것들을 돌덩이가 아닌 섬세한 기록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아빠가 돌고래라고 이름 붙인 성산일출봉 옆면
성산일출봉에 자라는 해국
이름이 예쁜 해국




성산일출봉 분화구


새로운 눈으로 같은 공간을 본다. 10여 년 뒤 다시 이 곳에 올라서 어떤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는지 회상해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하수를 잡으러 오른 한라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