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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Nov 10. 2019

오르막 오르는 일

내 페이스대로 오르자

생선도 맹물에 두어 번 흠뻑 담갔다 빼면
짠기가 가시는데
내 몸에 밴
효율, 속도, 순위 경쟁은
얼마나 적시고 담궈야 빠질라나


다음 주에 한라산에 간다. 고행이 되지 않으려고 매일 조금씩 걷고 있다. 요 며칠은 산행을 했다. 하루에 20킬로가량을 걷는다. 나 스스로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요즘의 나는 오르막을 나 잘 오른다는 것. 정상이 어디이며, 나는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가늠하는 습관도 옅어졌다. 갑자기 왜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조금씩 슬쩍슬쩍 한계를 늘리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근육 단련이  것은 확실하다.



그냥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헥헥거리며 앞만 보고 빨리 오르다가 잠깐 서서 숨 고르고 다시 헥헥거리며 오르기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슬슬 처언처언히 살랑살랑 오른다. 나는 내가 요즘 이렇게 오르막을 오르게 되었는 데에 매우 뿌듯하며 감격스럽다.


한 발자국의 힘을 알게 된 건 마라톤을 준비하면서다. 10월에는 5키로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2키로 부터 시작해 서서히 거리를 늘리려는 생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첫 주는 내내 2키로만 달렸는데, 첫 평균속도는 키로당 10분 정도. 나는 죽어라 숨이 차도록 뛰다가 멈춰서 숨을 고르며 걷다가, 또 죽어라 뛰었다. 그래도 키로당 10분이었다. 한 3일인가 4일을 그렇게 하니, 점점 기록은 줄어들어 키로당  평균 7분 40초 정도로 달리게 됐다. 그런데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6분대로 뛰다가 10분대로 걷지 말고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7분 40초를 유지하며 달려볼까?


그날이 어쩌면 내게 작은 파도가 찾아온 날이었으리라.

일정한 속도로 달리면서 '7분 40초의 발걸음은 이런 페이스구나.'를 알게 됐다. 한 번도 쉬지 않고 7분 40초대로 달렸고, 인터벌로 달릴 때처럼 숨이 떡 헐떡 대지 않았다.




아,
이게 자기 페이스라는 거구나.....




그제서야 나는 내 페이스를 알게 됐다. 운동경기 중계를 보면, 늘 나오는 멘트가 그거다. (주변 선수에 휘말리지 말고)'자기 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 말을 온 마음으로 이해한 날이었다. 나는 그럼, 지금까지 숱하게 그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연관시킨 걸까.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달려야지, 그 이상을 하면 안 된다?

분명, 자기가 연습한 대로 달린다는 말은 겉모습으로 흡수했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있는 힘껏 오버페이스를 하다가 멈추다가 또 내달리는'방식을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알아채지 못했나 보다.


무튼, 나는 달리기 연습을 하다 깨달았다.

나는 1키로를 7분 30초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


주를 그렇게 더 연습한 뒤에 첫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내 페이스대로 해서 5키로면, 35분 150초, 37분 30초였기에, 

40분 안으로 들어오는 걸 목표로 삼았다.

당일 나는 37분에 골인했다.


그 후 한라산 등반을 준비하는 요즘, 러닝에서 배운 방법을 써먹는다. 어차피 숨차게 전속력으로 빨리 올라도 결국엔 쉬게 마련이니, 내 페이스대로 오르자고 말이다. 조바심 내지 않는 한 발 한 발을 내딛다 보니 나는 산성 위에 서 있었다.



러닝과 등산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몇 개월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자전거를 즐겨 탔다. 그리고 오늘, 등산으로 조금 단련이 된 허벅지를 가지고 올해 마지막 라이딩을 다녀왔다.

라이딩의 최대 고비는 오르막이다. 러닝과 등산에서 터득한 방법대로 적용해보기로 했다.


내 페이스대로 오르자,

오르막도 살랑살랑 올라보자.






수월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늘 멀리 보아야 한다. 그런데 오르막을 오를 때는 땅바닥을 보고 오르는 게 멀리 보는 일이다. 저 멀리 언덕이 끝나는 지점을 바라보면서 오르막을 오르면, 금세 지친다. 내 속도는 하염없이 느리고 저 종점은 하염없이 멀어 보인다. 그런데 자기 페달만 보고, 핸들의 바로 윗 바닥만 보고 오르면 어느샌가 정상이다.


내가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하루에 180키로를 달린 그 날에는 몰랐고 오늘은 아는 게 있다. 오르막을 오를 때 땅바닥만 보면 되는 게 아니라 여기서도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의 페이스는 속도의 수치로 나타내기보다 본인이 힘든 정도를 판단하는 게 편하다. 나는 이 페달링으로 지구 끝까지 가겠는가,를 기준으로 잡는다. 이 경사도가 끝없이 이어져있다고 할 때, 계속해서 이 페달링으로 끊김 없이 오를만한 정도. 그러다가 버겁거나 경사도가 얕아지면 기어를 바꾸면 된다.


예전의 나는 꾸역꾸역 오기로 오르막을 올랐다. 안장에 앉지도 않고 서서 무릎으로 내리찍으며 올랐다. 그러면 그 속도대로 오르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 바퀴는 나가지 않는다. 중간에 서야 한다. 역시 숨은 헥헥 댔고 허벅지와 무릎은 난리 난리도 아니었다. 내리막을 내려가는 속도를 반동삼아 또 달리고, 평지가 나오면 또 가속하고 직선 도로에서는 더 가속하고,  헥헥거리다가, 뒤따라 일정한 페이스로 오는 아빠를 보내고 쉬엄쉬엄 쉬다가 또 뒤따라서 맹추격하곤 했다.

오늘은 평지에서도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같은 속도, 같은 피로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아빠가 자전거 종주를 시작할 때 알려준 말이 이제서야 와 닿는다.



천천히 올라가도 다 올라가.



그 말을 이제야 알아먹겠다. 그리고 이렇게 비축한 힘으로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런데 왜 아빠는 늘 저렇게 지나가는 소리로 짧게 알려주나. 나를 붙잡고 강력하게, 오르막은 이렇게 오르는 거라고 장황하게 이야기해주지. 나는 그 말을 몸으로 이해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서울까지 갈까?

멀리멀리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제는 속도, 효율 경쟁 물이 많이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라이딩이 잘 되자 나는 또 멀리멀리 외지로 나가고 싶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5시 전에 귀가해야 함에도 말이다. 왜 이렇게 멀리 가고 싶은지, 키로 수 갱신을 하고 싶은지. 아빠는 오늘도 나를 말렸고 나는 기운 빠진 채로 자전거를 돌렸다. 그러다가 강가로 갔는데, 그 강가에 앉아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가 깨달았다.


왜 나는 아직도 멀리멀리에만 집착하는가,

자전거도로만 따라서 멀리멀리 달리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곁에 있는 강가에 이렇게 멋진 경치가 있는데.


나는 강가에 앉아서

페이스대로 달리고, 등산하고, 오르막을 오르던 나를 칭찬하며 뿌듯해하는 걸 멈추고, 나를 혼내고 다독였다. 그리고 서울까지 내달리지 않도록 해 준 아빠의 결정에 더 이상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아직도 멀었구나.

페이스 유지하는 거 말고도,

멀리만 가려고 기록 경쟁하려는 마음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구나.


오늘 거기서 멈춘 일은 내게 좋은 수업이 되었다.

그 강가에 앉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컨디션 좋은 날에는 멀리멀리 자전거도로를 따라

달리기만 했을 거다.


멀리멀리 가려는 마음보다

할 수 있는 만큼 달리다

지척에 있는 자연을 들여다보려 애써야겠다.


살랑살랑 타자.

아직도 나는 나를 희석할 맹물이

3000천 톤쯤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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