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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Jan 06. 2020

별 잡으러 천문대까지

오리온자리를 좋아합니다

은하수를 잡으러 떠났던 한라산 등반에서 돌아오던 자정, 나는 은하수 대신 겨울철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자리를 잡았다.  예쁘게 수놓아진 별을 찰나만 간직할  있어 아쉽기도 하다.


학교 옥상에는  망원경 2대가 있었는데, 그때는  진가를 알지 못했다. 이제 와서 아쉬워졌다. 옥상에 있는데도 오르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고 보여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 모든지 몸으로 익힌  오래 기억하는데, 그래서 고등학생  가장 기억나는 과제는  일주 사진 찍기다. 추운 겨울이었다. 밤이 되고 새벽까지 아빠와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카메라를 세워놓고 별의 궤적이 담기기를 기다렸다. 기대를 한가득 안고 들여다본 내가 찍은 일주 사진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아주 조금 미세한 별의 이동만 빛으로 가두었을 뿐이다. 몇만 광년  별이 방출한 에너지가  사진기에도 살짝 다녀갔고, 나는  사실에 깊이 감동했다. 특별해졌다.


졸업 후, 그런 경이를 잊고 지냈다. 새벽 수영을 떠날 때 보던 별을, 반짝거리는 관상용 별로 두기에는 아까웠다. 제주에 있는 전파망원경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여유가 나지 않았고 제주에서 돌아오던 밤하늘이 강렬해서, 대신 집 가까이에 있는 천문대를 찾았다. 때마침 도서관을 다녀오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달이 그리도 청명한 하늘에 빛을 반사해내고 있었고 금성도 보였다. 지금 가면 정말 환히 다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서.

금성도 찍혔다(오른쪽 하방에 콕찍은 점)

내가 천문대에 다녀온 날은 11월 30일이고, 전날인 11월 29일은 목성-금성-달-토성이 늘어서는 날이었다. 저 사진을 찍은 7시 즈음에는 하늘이 청명했는데, 천문대에 올라간 8시 30분에는 하늘의 반 정도가 구름으로 가렸다. 즉흥적으로 달려오느라 내일 비예보가 있다는 걸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초반 15분가량은 관측 가능했고, 관측이 끝나갈 무렵에는 구름이 별빛을 서서히 차단했다. 알마크, 플레이 아더스 성단을 구경했다. 구름 때문에 안드로메다 은하는 보지 못했다. 달 관측은 매달 초부터 보름까지 가능하다. 구름을 걷어내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되새기기에는 아주 좋은 촉매였다. 다행히 다시 별과 그 너머를 좋아하게 된 지금, 마침 겨울은 별자리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절이다.


내가 코스모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칼 세이건, 아니 지금은 닐 타이슨이 보여주는 우주 주소 Cosmic Address 다. 그 영상을 보면, 내가 가진 세계의 폭이 몇 백억 년으로 팽창한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우리의 주소는 이렇다. 지구에서 시작해, 태양계-우리은하-국부은하군-처녀자리 은하단-관측가능한우주 로 뻗어나간다.


EARTH
SOLAR SYSTEM
MILKYWAY GALAXY
LOCAL GROUP
VIRGO SUPERCLUSTER
OBSERVABLE UNIVERSE

편지를 보낼 때, 몇 동 몇 호로 시작해서 제일 끝 스케일은 SOUTH KOREA다. 해외로 보낼 경우에만 그렇고, 국내에서는 그저 도 단위다. 그러다가 내 주소를,  Earth, Solar System, MilkyWay Galaxy, Local group, Virgo supercluser, Observable universe.라고 쓰면 쓰는 순간 세상이 환해지고 넓어진다. 막혀진 칸막이가 팡하고 무너진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에 정호승 시인의 책에서,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라는 말을 발견했다.


빅뱅 이후 38만 년이 지나 빛이 생겼다. 내가 보는  북극성은 400  빛나던 흔적이고, 우리를 따스히 비춰주고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게 하는  태양 빛은 8 전의 태양이다. 달은 스스로 밝힐  모르지만 달빛은 달에서 1 전에 떠났다. 우리는  어느 명화보다 멋진 자연이 빚어낸 실시간의 빛을 밤하늘에서   있다. 언제나  별들은 빛을 낸다. 준비물은 우리의  끄기. 우리가 우리 불을 꺼야만   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220만년  빛을 우리에게 보낸다.   세월을 날아온 빛을 오늘은 구름이 가렸다.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을  불타며 우리 지구를 집어삼킬 예정이라 한다.


알고도 알아채지 못하고  때가 많다. 고등학생    좋아할 ,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면, ! 지금이  좋아할 때구나! 때가 지금 왔구나! 반갑다. 하고 안아준다.  글을 보시는 분이, 근처 천문대로 오늘  달려가기를. 빛을 바라보기를. 빛을 궁금해하기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접하기를.



별 볼일 없는 일 대신,

 볼일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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