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그런 경이를 잊고 지냈다. 새벽 수영을 떠날 때 보던 별을, 반짝거리는 관상용 별로 두기에는 아까웠다. 제주에 있는 전파망원경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여유가 나지 않았고 제주에서 돌아오던 밤하늘이 강렬해서, 대신 집 가까이에 있는 천문대를 찾았다. 때마침 도서관을 다녀오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달이 그리도 청명한 하늘에 빛을 반사해내고 있었고 금성도 보였다. 지금 가면 정말 환히 다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서.
금성도 찍혔다(오른쪽 하방에 콕찍은 점)
내가 천문대에 다녀온 날은 11월 30일이고, 전날인 11월 29일은 목성-금성-달-토성이 늘어서는 날이었다. 저 사진을 찍은 7시 즈음에는 하늘이 청명했는데, 천문대에 올라간 8시 30분에는 하늘의 반 정도가 구름으로가렸다. 즉흥적으로 달려오느라 내일 비예보가 있다는 걸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초반 15분가량은 관측 가능했고, 관측이 끝나갈 무렵에는 구름이 별빛을서서히 차단했다. 알마크, 플레이 아더스 성단을 구경했다. 구름 때문에 안드로메다 은하는 보지 못했다. 달 관측은 매달 초부터 보름까지 가능하다. 구름을 걷어내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되새기기에는 아주 좋은 촉매였다. 다행히 다시 별과 그 너머를 좋아하게 된 지금, 마침 겨울은 별자리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절이다.
내가 코스모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칼 세이건, 아니 지금은 닐 타이슨이 보여주는 우주 주소 Cosmic Address 다. 그 영상을 보면, 내가 가진 세계의 폭이 몇 백억 년으로 팽창한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우리의 주소는 이렇다.지구에서 시작해, 태양계-우리은하-국부은하군-처녀자리 은하단-관측가능한우주 로 뻗어나간다.
EARTH SOLAR SYSTEM MILKYWAY GALAXY LOCAL GROUP VIRGO SUPERCLUSTER OBSERVABLE UNIVERSE
편지를 보낼 때, 몇 동 몇 호로 시작해서 제일 끝 스케일은 SOUTH KOREA다. 해외로 보낼 경우에만 그렇고, 국내에서는 그저 도 단위다. 그러다가 내 주소를, Earth, Solar System, MilkyWay Galaxy, Local group, Virgo supercluser, Observable universe.라고 쓰면 쓰는 순간 세상이 환해지고 넓어진다. 막혀진 칸막이가 팡하고 무너진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에 정호승 시인의 책에서,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라는 말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