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지난해부터 나의 질문이었다. 건강 악화, 실직, 은퇴, 이별과 같은 인생을 흔들만한 큰 사건 없이도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이왕이면 그런 경험 없이도 변화, 쇄신 해내가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깃든 질문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내가 겪어내면서 알아간다면, 현명치 못한 방법이라 여겨졌다. 그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찾은 답은 일단 책이다. 그리고 하나는 주변 사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고 상상해보고 이입해보는 루트와 직접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배우는 것. 어릴 적, 누군가 혼나는 것을 보고 저런 행동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책이나 실제 인간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어깨너머로 관찰하면서 수정해나가는 방법이 어떨까. 폭풍을 온몸으로 맞고 나서 궤적을 수정하는 것에 비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책과 사람을 통해 위기를 인식하는 더듬이를 예민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다.
지난해 읽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또한, 이와 비슷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외부적 위기 없이 개인은 변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개인의 위기에서 시작하여 국가의 위기 대응으로 확장한다. 12가지 틀로 국가들의 위기 대응을 분석한다. 우리는 이런 다른 사례를 통해 겪지 않고도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언제, 사람들은 가치를 알게 될까?
이것도 지금까지 내가 찾은 결론을 말하면, 나는 제약이생겼을때와 열렬한사용자일때 뒤늦게 그 가치를 알아차렸다.먼저, 제약이 생긴 경우는 누리던가치를보는눈이 생긴 것이고, 열렬한 사용자의 경우는 모르던가치를보는눈이 생긴 것이다.
먼저 제약이 생긴 경우는, 몸의 부상이다. 건강하게 살아가다가 어떠한 이유로 부상을 당하면, 기존에 누리던 대중교통도 타기 버거워진다.팔을 다치면,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을 수 없고 카카오 택시 콜을 하기 위해 한 손으로 조작하기 어렵다. 한 손으로 문을 여닫는 것 또한. 게다가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가기도 벅차다. 그건, 다리를 다쳐도 그렇다. 오르던 계단을 쉽게 오르고 내리지 못하고 그래서 비로소 이용하지 않던 낮은 경사로가 소중해진다. 그밖에 팔이 불편하면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기도 어렵고, 등을 긁는 욕구도 충족이 안된다.기존에 누리던 일상이 하나하나 소중했다는 걸 깨닫는다. 아직 겪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눈이 침침해지는 걸 곁에서 보면서, 지금 읽는 활자본의 책을 맘껏 제약 없이, 돋보기 없이읽어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도 더욱 감사하다.
둘째로 열렬한 사용자일 때다. 책을 친구로 삼기 전까지 교과서에서 배우던, 인쇄술의 엄청난 힘을 그렇게까지 실감하지 않았다. 인쇄술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 같은 거대한 흐름은 시험문제 잘 맞힐 정도로만 알아뒀다. 프린터로 인쇄하는 지금에 비해 그 인쇄술이 그렇게나 더 대단한가, 생각하며 삐딱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과거의 인쇄술이든 현재의 디지털 인쇄든 그 수혜를 입고 있는 입장에서 감사하다. 인쇄술이 아니었다면, 내게도 이렇게 책을 맘껏 읽을 자유가 주어졌겠는가. 손으로 베껴가며 읽을 열정이 아무리 크다해도 손으로 쥘 수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정해준 금식기간 동안, 요리의 향에 큰 관심이 생겼다. 먹지 못한다는 제약이 코로 음미하는 법을 알려줬다. 먹고 싶은 음식을 씹지 못하고 바라만 보지만, 향만 맡아도 먹은 것과 같은 행복을 준다. 후추향, 카레향, 바질 페스토 향, 소불고기의 간장 향. 그러고 나니 그 어려운 시절에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항해를 나서 향신료를 구해오고, 향신료 때문에 싸움이 났던 걸 이해할 수 있다. 역사책에서 한 줄로 만났던 서술들이 입체적으로, 묵직하게 와 닿는다. 열렬한 사용자가 되면, 좋다고 찬양하는 익숙한 문구가 진심으로 와 닿는다. 대부분이 시대를 거듭해도 통용되는 진리나 선호인데, 예를 들면, 책을 하루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역사책에서의 한줄짜리 서술들. 향신료 그리고 인쇄술. 종이. 망원경 등의 값짐을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