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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Feb 09. 2020

질문으로 잇는 책밭 그리고 작은 도서관

책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추는 일

서울에 가게 되면 최인아 책방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질문이 있고 도서관에는 분류가 있다. 도서관의 분류방식은 철저히 공급자의 시선이다. 사서들의 입장에서 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수월하며, 그래서 책의 제목을 아는 회원들은 손쉽게 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답을 알지 못하고, 즉 책의 제목이라는 목적지 없이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어떤 공간일까? 방대한 자료가 가득한 도서관에 들어서면, 약도 없이 메가시티를 항해하는 자와 같지 않을까.

도서관은 책에게 숫자를 부여한다. 수감번호 787.01, 거긴 책들의 감옥이다. 열쇠가 없으면 딸 수 없다. 보통, 책을 읽는 시작은 질문이고, 그다음에 책을 찾아다닌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나 어떤 키워드에 심하게 골몰해있을 때 책을 찾는다. 그럴 때 도서관에 가보라. 책을 찾기 쉽지 않다. 키워드가 있다면, 그걸 제목으로 삼는 책을 검색하면 되지만 질문을 담는 검색까진 아직 할 수 없다. 조금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궁금한 분야가 생기면, 무언가 가슴에 뭉글뭉글한 기분이 들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온다. 며칠 전, 친구가 가진 질문을 들고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주려 했지만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 물론, 단 한 권으로 해결하려는 친구의 조급함도 함께한 문제였지만 말이다. 키워드로 검색을 해도 그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책들도 있을 테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예전에 읽던 책에서 인용된 책도 없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라면, 검색해서 얻은 책으로 일단 시작은 해본다. 그러다 이정표 같은 책을 만나면 그 뒤로부터는 읽던 책에서 인용된 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읽는다. 어쩔 수 없이, 처음의 시행착오는 필요하다. 곧바로 괜찮은 책으로 연착륙하고 싶지만 말이다.

질문으로 이어진 책방은 어떨까. [불안했던 20대 시절 용기와 인사이트를 준 책],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이 궁금한 사람에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 [번아웃을 느끼는 사람에게] 등등의 질문으로 책을 분류한다. 사람들에게 질문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아준다. 책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은 역시나 질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책방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역시도 질문 이리라. 내가 이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이다. 질문의 힘, 생각의 힘으로 숲을 이룬다는 그 슬로건과 마음가짐에 닿았다.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의 시선에서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소비자에서 공급자로의 전환 과정에서 새로움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 소비자는 무엇에 갈증을 느껴 공급자로의 전환을 시도할까? 마침 요즘은 그런 틈을 발견한 사람들의 무대다. 에어비앤비도 공유차량 서비스도 소유하는 소비자에서 공유하는 공급자로의 전환이다. 나는 독자였다가 어떻게 저자가 됐나. 그것 역시 틈과 갈증에서 나온 전환이었으리라. 이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존의 유형별 분류방식에서 원하던 책을 찾기 불편하다는 감정이 일지 않았을까. 직접 물어보지 않았으므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뭉게뭉게 질문이 피어오르고 있는 사람에게, 도서관 대신 서점을 한 번 가보라 추천해봄직 하다. 뜻하지 않던 인생 책을 만날지도 모르니.



작은 도서관의 재미, 작은 스케일에서 찾는 책.

읽어야 할  말고, 끌리는 책이  읽힌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문장으로 깔끔하게 표현되지 않는 질문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살 책을 정하지 않고 서점에 간다. 어떤 물고기가 나의 그물망에 걸릴지 모른 채로 간다. 물론 이런 경우엔, 도서관도 가능하다. 누군가 반납한 책수레에서 새로운 책을 발견한다던가, 따로 마련된 신간서가를 눈여겨본다던가. 그리고 요즘엔 지역에 ‘작은 도서관’이 꽤 생기고 있다. 우리가 거대한 시립, 구립 도서관에서 길을 잃는 건 자료의 방대함과 거대함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작은 도서관은 사람이 단숨에 살필 수 있을 만큼의 양만 놓여있다. 30층짜리 아파트가 아니라 소박한 2층 집 주택의 느낌으로 한 사람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는 시간 내에 집 안을 둘러볼 수 있다. 한 가지 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책 조금씩 놓여있다. 원하는 책이 있을 가능성은 적지만, 있는 책에서 괜찮은 게 있나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나도 최근 집 앞에 생긴 ‘작은 도서관’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도서관이라면, 세계문학전집 서가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갔더라도 전집이 일렬로 나열된 위압감 속에서는 결코 <햄릿>을 집진 않았겠지만, 작은 도서관에 두 세권 꽂혀있는 세계 고전 중에서는 <햄릿>에게 손이 갔다.


누군가, 지역 내 거대한 시립 도서관 하나가 있는 것보다 작은 도서관이 여러 개 구석구석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우리에겐 거대한 하나의 저장창고가 아니라, 책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문턱 낮은 작은 도서관이 더 필요하다.


책의 힘을 믿는 나는, 모두가 문턱 낮은 책방, 작은 도서관을 넘어서 결국엔 책의 생산자가 되어봤으면 한다. 이미 있는 책은 결코 누군가의 답이 되지 못한다. 그 답은 자신만이 자신의 책을 써 내려갈 때 찾아진다고 생각한다. 책 읽는 사람이 생산자로의 전환을 이루어 새로움이 샘솟기를. 책 속의 힌트를 잘 엮어내 본인만의 책을 만들어보길. 나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바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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