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채 4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채 Mar 24. 2022

빼앗긴 당신의 목표

다채 4호는 '목표의 부재'라는 주제로 네 분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본 기사는 종숙님의 인터뷰에 대한 에디터의 답변입니다. 인터뷰이, 그리고 인터뷰이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에디터 |Seney


종숙님 인터뷰가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아침까지도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미뤘는데, 문득 지금 전화를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전화를 거는 동안 수신음이 들리다가 뚝 하고 끊기는 상상을 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항상 회사에 있는 엄마는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먼저 전화를 잘 걸지 않게 되었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급하게 찾을 때가 아니면.


생각보다 엄마가 전화를 빨리 받았다. 오랜만의 통화라 어색해서 이런저런 의례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내게 다채를 계속할 거냐고 물었는데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항상 나를 향한 부모님의 관심에 '모른다'로 일관한다. 자그마한 관심도 나를 무겁게 짓누를 때가 많다. 다채에 대한 계획을 설명할 수도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냥 모른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너가 하고 싶은 거, 행복한 거 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직전의 나의 무성의한 답변이 부끄러워졌다. 뭐든 응원받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잘 먹고 살 거니까 걱정 말라고,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라고 하면서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엄마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엄마도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이 있을까. 나도 엄마를 응원해주고 싶은데.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는데 들어주지도 않는 것 같다. 그걸 물어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엄마는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사람일 거야.'라는 이기적인 합리화를 하면서 살아왔다.


다채 4호를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표에 대해 들었으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이번이 아니면 나는 아마 평생 물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빼앗긴 목표가 있나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대체 뭔가요?




차 안에서 어렵게 말문을 띄웠다. 엄마의 입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이 튀어나왔다.


"엄마 인생에서 포기한 거는 별로 없어. 기억이 안 나. 포기한 건 잊어버렸나 봐. 엄마는 절대 긍정주의자잖아."

"너네 아빠가 되게 지저분하잖아. 아빠를 깔끔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거는 포기했지."


아, 역시 다채 콘텐츠로 쓸 수는 없겠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늘 그렇듯 명랑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더 이상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른 질문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다채 4년 차 프로 인터뷰어니까...)


"그럼 뭔가를 하고 싶은데 억압당한 적은 없어요?"

"회사 일을 더 하고 싶어도 삐약삐약 거리는 너네들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고 집으로 간 적은 있지. 그리고 너네들한테 더 잘해주고 해야 되는데 일 때문에 못 챙겨준 게 많지."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는 말. 이걸 또 듣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엄마는 이런 생각도 들어. 엄마는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일보다 가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 엄마 일 때문에 가정을 너무 많이 희생시킨 게 아닌가."


엄마는 내게 서운한 게 많았냐고 물었다. 차마 없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20대 중반이 넘었는 데도 여전히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마음 한 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포기한 거 아닐까. 누구나 늘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데 엄마는 그걸 포기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좋은 엄마'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이기적인 엄마'라고 말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해주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더 잘해줄걸'하며 과거를 아쉬워한다. 하물며 헤어진 연인한테도 아쉬움이 남는데 내가 낳은 어린 자식을 향한 아쉬움은 어떻게 보면 참 당연하다. 그런데 그 원인이 모두 '엄마의 일'이 되어버리는 게 속상하다. 나도 꼭 일과 가족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만을 취해야 할 것만 같다.  


Copyright ⓒ Seney


종숙님과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종숙님을 만나고 느낀 점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어른의 모습은 눈 부실 정도로 빛이 난다.


두 번째. 자유를 되찾고 숨을 쉬기 위해 어린 자식들을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나 '여기서 죽어도 좋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두고 누구도 함부로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 번째.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꼭 다른 목표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이를 위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그 목표들을 모두 '존중'해주면 된다.


'워킹맘이니까 좋은 엄마는 포기해.'

'맞이니까 책임감을 가져야지. 자유로운 삶은 포기해.'


사실은 포기했다기보다 응원받지 못하고 빼앗긴 목표들이 아닐까. 응원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가능성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엄마도, 종숙님도, 더 욕망하고, 성취하고, 모험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위안을 얻고 싶다. 그런 모습을 묵묵히 응원하는 딸이 되고 싶다.




"직장 생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앞으로 남은 생은 뭐 하면서 살고 싶어요?"

"아무 생각이 없어."

"구체적인 게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고 싶다 라는 게 있잖아요."

"즐겁게 행복하게 살자."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게 낫지 않아요?"

"퇴직하고 생각해도 안 늦어. 내가 나중에 6개월 동안 1년 동안 계획해가지고 뭐 근사한 그림을 그릴지 알 게 뭐야."


그래, 알 게 뭐야. 뭐가 됐든 엄마가 그린 그림을 응원해줄 수밖에.



커피를 통해
나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뭉클 한지
볼 때마다
아프고 따뜻히
회상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예요.
고마워요.

섬에 해뜨고 해지고..
아름다움 고즈넉히 스미게..
그런 에너지가 필요할 때
조용히 와서 며칠 쉬었다 가요.^^

- 인터뷰를 보고 종숙님이 보내주신 메시지




지금까지 다채 4호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가 떠오를 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고 언젠가 또 찾아올게요. :)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자유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