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쓰는 일기 - 서른 일기
1990년 6월생. 백말띠.
2019년 4월 현재 만 스물여덟에 한국 나이로 서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그러니까 20대의 끝자락부터는 만나는 친구들마다 나이 이야기를 하면 질색을 하며 슬퍼했다.
"우리가 언제 벌써 서른이 됐지?"
일단 나이 이야기가 시작되면 한마음 한 뜻으로 '쏜살같이 지나간 세월'을 야속해했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좋아~ 기대돼"
라는 나의 의견은 친구들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를 내 제한된 시간 중 그새 1년이 또 흘러갔다는 데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친구들에게 "나는 서른이 좋아~ 기대돼" 라고 말한 후에는 어김없이 "왜?" 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20대에는 끊임없이 뭔가에 쫒기는 느낌이었어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학교 다니면서 알바도 해야 하고, 방학 때도 쉬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해야할 것 같고,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해야하고, 취업하면 2~3년은 버티라고 하고, 퇴사하면 바로 이직하고...
때가 되면 해야만 하는 것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제는... 그런 강박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달까?
물론 나도 불안하고, 내 미래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 속도에 맞춰서 가도 되겠다 싶어.
'꼭 언제까지 뭘 해야한다'고 정해진 게 없잖아. 그래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장기적으로 삶을 보고 천천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꼭 30대에, 언제까지 뭔가를 해내야 해'가 아니라 40대, 50대, 60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 남은 시간들을 길게 보고 가면 되겠다는 기분이 들어."
이렇게 말하면 친구들은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한 눈치지만, 친구니까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해주곤 했다.
20대에는 나름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대학 다니는 동안에는 학교 안보다 학교 밖 활동에 더 열렬히 매진했다.
4학년에는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교수님의 조언을 뒤로한채 훌쩍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돌아와서는 취업준비가 아니라 친구가 시작한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1년을 몰두하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이 열심히 학교생활하고 취업준비하고 직장생활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내 멋대로 보낸 시간이 조금 더 많은 편이었다.
20대에 소박하게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해봤다.
그런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돌아보니 선택의 순간에 항상 '이때는 꼭 이걸 해야 해'라는 제약에 얽매였던 것 같다.
서른이 기대되는 이유는 또 있다.
20대 후반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흔히 삼재라고 하는 시기에,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90년생)은 모두 힘들었던 것 같다.
삼재는 미신이긴 하지만... 정말 하나같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힘들어했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요령 피우고 적당히 엄살 부리고 적당히 남한테 피해도 입히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그 사람들 나름의 삶의 노하우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사회초년생이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끼리끼리 만나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들 과도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스트레스 받아도 혼자 꾹 참고 버티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모든 일에 죽어라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었다. 결국 친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또래에 걸리기 쉽지 않은 병에 걸리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도 힘들었다
원하던 업종의 회사에 안 맞는 직무로 입사한 뒤, 바보같이 미련하게 무리한 일들까지 죽어라고 해냈다. 좋아하고 잘 맞는 일이라도 업무량이 많으면 힘들텐데, 잠깐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안 맞는 직무로 과도한 일을 하다보니 몸과 마음에 병이 났다. 어떤 이들은 힘들면 '죽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였다. 정말 힘들 땐 매일 같이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속으로 되뇌며 출퇴근 했다. 살고 싶었다. 홀로 남은 연휴 자정의 사무실에서 '엄마 미안해' 하면서 통곡하기도 했다. 나중엔 공황장애, 우울증이 왔고, 몸도 난리를 쳤다. 안과와 정형외과 빼고 안 갔던 병원이 없었다. 돌발성 난청에 청력 손실이 오질 않나, 몸이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평소에 문제 없이 잘 쓰던 바디워시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한동안 오직 물로만 씻기도 했다. 출근 길 지하철에서 소리없이 끄윽끄윽 눈물흘리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미래가, 앞이 캄캄했다. 암담했다.
그냥 무리한 건 거부하고, 안 맞는건 안 했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때는 그래도 된다는 걸 몰랐다. 바보같이.
누군가에게는 '이 정도는 힘든 축에도 못 든다'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종교가 없음에도 '제발 살려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던 괴로운 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를 겪은 뒤 한층 더 성장한 것 같다.
한창 그 안에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퇴사 후에는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고, 더는 그 지난 일들이 날 괴롭히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천천히 두고두고 그 시기를 곱씹으면서 반성도 하고 이런 저런 깨달음을 얻으며 다시 에너지를 조금씩 채워갔다.
숫자를 셀 때 우리는 1부터 10까지를 한 세트로 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20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실 스무살은 고등학생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마냥 해맑은 상태로 보냈었고...
스물 한살, 두살, 세살... 아홉살 그리고 열.
1부터 10까지를 한 세트로 본다면, 어떻게 보면 서른이 진정으로 20대를 마무리짓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20대의 완성 & 30대의 시작
서른인 지금, 나에겐 20대에는 없던 경험치가 쌓여있다.
치열하게 그 시기를 보냈던 만큼 내 안에 그만큼의 경험치가 쌓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더 오랜 기간을 살아온 인생 선배들에 비하면 아기 수준일지라도
그때보다는 시야도 더 넓어지고, 이해의 폭과 생각의 깊이 또한 더 늘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더 강한 심장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앞뒤 안 가리고 물 불 없이 마구잡이로 조급하게 달려들었다면,
이제는 조금더 자신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천천히 더 멀리 더 넓게 보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20대의 지난 날들보다는 말이다.
동시에 서른은 충분히 어리고 젊은 나이고,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다.
나의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면서, 객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젊고 씩씩한 나이, 서른.
그래서 좋다.
20대에 없던 경험과, 나중에 없을 젊음의 동력을 동시에 갖춘 나이니까.
나의 서른이 진짜로 좋은 나이가 될 지는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다.
20대를 진정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30대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서른 일기 - 서른에 쓰는 일기]를 남기려고 한다.
서른인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나의 생각들,
그리고 서른인 지금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드는 생각들,
서른인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들을 적어보려한다.
20대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치열하게 온 마음을 다해 30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 서른인 당신에게, 서른은 어떤 나이인가요?
또는 서른을 지나온 당신에게 서른은 어떤 나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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