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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Feb 18. 2020

그에게 나는 얼마나 조용한 이웃이었을까

소음으로 만난 나의 이웃들 


평일엔 대개 아침 7시 반쯤 일어난다. 이불 속에서 조금 더 뭉그적거리는 날도 있다. 그러다가도 칸트 언니의 발소리가 들리면 화다닥 몸을 일으킨다. 또박또박 가늘고 높은 구두굽이 계단을 내려가는 선명한 소리. 그 소리가 들린다는 건 지금이 7시 45분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더 늦장을 부리다가는 출근이 좀 빠듯해지는 시각이다. 칸트 언니는 우리 윗집에 사는 이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는 지난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7시 45분에 집을 나섰다.

  이 건물에 3년 넘게 살면서도 나는 아직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성별도 나이도 모른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다. 매일 똑같은 시각에 집을 나선다는 것. 세부사항으로는 매일 굽 높은 구두를 신는다는 것, 한 번도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법이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를 멋대로 칸트 언니라고 부르며, 아침마다 여유로운 발소리에 작은 존경심을 표하며 내 출근을 준비한다. 

사실 내가 칸트 언니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건 그의 발소리가 커서가 아니다. 이 건물이 유난히 현관문 방음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은 심하지 않은데, 유독 계단에서 나는 소리만 집안까지 생생하게 들려온다. 건물 출입구의 도어락이 열리고 잠기는 소리, 계단 올라가며 나는 말소리와 발소리,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까지. 문틈에 문풍지도 붙여보고, 현관 안쪽에 차음막 삼아 두꺼운 커튼을 쳐보기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별수 없이 몇 년째 소음을 통해 얼굴 모를 이웃들의 안부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 건물에는 열 개 남짓한 방이 있고, 월세는 오십만 원에서 육십만 원 사이다. 그러니 이 건물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의 공약수는 보증금 천만 원에 매달 월세 오십오만 원 정도를 지불할 수 있다는 것밖엔 없다. 그 ‘천에 오십오’라는 조건만 빼면, 나와 이웃들 사이에는 뚜렷한 공통점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생활의 모습들도 제각기 다르다. 흐트러짐 없는 규칙적인 생활에 감탄하게 되는 칸트 언니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항상 현관문을 열어놓고 재활용품을 정리하는 집, 새벽에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는 집, 한밤중에 욕실 물청소를 하는 집. 그런 소리들이 어느 순간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달으면, 그 이웃이 이사를 갔구나 하고 생각한다.

  다세대주택을 옮겨 다니다 보니, 이제 소음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생활이 대충 보인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학교 앞에 살 때의 층간소음은 대부분 ‘고성방가’였다.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노는 이웃이 많았다. 닌텐도 위가 유행할 적에, 밤새 쿵쿵거리며 댄스 게임을 하는 이웃도 만났다. 그래서일까, 예전엔 층간소음이 생기는 건 그저 건물을 부실하게 지은 탓, 사람들이 예의와 배려가 없는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예전의 나는 항상 시끄러운 이웃을 비난할 때 ‘상식적이지가 않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렇게 상황을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누는 순간, 그런 비상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괴로움이 됐다. ‘도대체 왜, 그걸, 여기에, 이 시간에?’라는 육하원칙적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얼굴을 모르는 이웃들에 대한 혐오도 치밀어 올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웃들의 무례함에 진절머리를 내며 씩씩거리게 되고 만다. 잠을 깨운 건 소음이었지만, 다시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건 소음을 만드는 이웃에 대한 분노였다. 


그런데 이 건물로 이사 온 뒤, 늦은 시간 집으로 들어가는 이웃들의 발소리가 들리면서부터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그러자 소음에 민감했던 감정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아예 없으면 좋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이웃들이 대부분 나보다 훨씬 늦게 귀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월급이 적은 대신 야근이 없다. 나는 대부분 정시 퇴근을 하고 초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나처럼 아침에 출근해도, 훨씬 늦게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일찌감치 마쳐놓은 일과들을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건물 꼭대기 층에는 늘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를 하는 이웃이 있었다. 출근은 나와 비슷한 시간에 하는 것 같은데, 일이 늦게 끝나는 모양이었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그의 발소리는 항상 느리고 무거웠다. 그 소리는 이 집으로 독립해 나오기 전 큰언니와 같이 살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여행사에서 영업 일을 하는 언니도 나와 같이 사는 동안 늘 야근에 시달렸다. 가까스로 퇴근을 하고 나면, 저렇게 피로한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나는 과로가 언니의 건강을 해칠까 걱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렇게 힘든데 왜 일을 줄이지 못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직장을 옮길 순 있어도 일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작년 언제부터인가 꼭대기집 이웃의 그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이 부디 그동안의 야근 수당을 알차게 잘 챙겨서 형편이 나아진 것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갔기를.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 아니면 2층이나 3층에 있는 집으로. 그리고 그가 언젠가 주 40시간 근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새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갈 수 있기를. 


  층간소음이 난무하는 다세대주택에 살며 인간혐오에 빠지지 않으려면, 투명한 상식과 모호한 인류애 대신 두껍고 묵직한 인내심이 필요하지도 모른다. 오늘도 여전히, 건물 곳곳에서 들려오는 다른 집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제발 그만 좀 쿵쿵거리라는 짜증 대신, 그들이 빨리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조용히 응원하기도 한다.

  층간소음이 없는 건물은 없다. 소음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 나는 지금까지 집 사이의 벽이 꽤 두껍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옆집 이웃이 이사 가던 날, 깜짝 놀랐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말소리가 우리 집까지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내가 운 좋게 특별히 조용한 집을 골라 들어온 게 아니라, 그동안 이웃이 되어준 그 사람이 무척 조용했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행운을 뿌듯해할 게 아니라, 그 조용한 이웃에게 감사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다세대주택 생활의 제1법칙이 떠올랐다. ‘내가 내는 소리는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과연 그에게 나는 얼마나 조용한 이웃이었을까. 음, 그날 뒤로 새벽에 화장실에 갈 때면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들게 된다.





Nayarit, House Model, 100 B.C.–A.D. 200, © 2000–2020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 R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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