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얼 May 05. 2020

턴 다운, 오늘도 애썼으니까

매일 밤 나를 위해 베푸는 정돈의 시간

턴 다운 서비스가 제공되는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 오전의 하우스 키핑은 객실 전체를 청소하고 소모품과 침구를 바꿔주는 것이라면, 이른 저녁 턴 다운은 ‘각’을 잡아주는 수준의 정돈이다. 그 여행에선, 오후 외출을 끝내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마음이 설레곤 했다. 물기 없는 세면대, 반듯하게 걸린 타월, 깨끗한 베갯잇. 이제 네가 할 일은 이 쾌적한 방에서 편안하게 쉬는 것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귀중한 여행의 또 하루가 깎이는 것도 슬프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면, 돌아갈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아쉬움이 마음에 그렁그렁 차오르곤 했었는데 말이다. 그건 누군가가 묵묵히 매만져준 방 안에서, 하루 동안 수고한 나 자신이 토닥임을 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원룸으로 독립해 나온 뒤, 나는 꽤 오래 집안일에 공을 들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기 무섭게 세탁과 청소를 하고, 그걸 다 끝낸 뒤에야 저녁 식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 집안을 매일 완벽하게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 사람분의 살림이란 건 전혀 작지 않다는 것을 점점 실감하게 됐다. 일은 적지만 그걸 할 사람은 이미 지친 나 하나니까.


그런데 누가 이런 집안일 좀 해주면 좋겠다는 아쉬운 욕심 끝에는, 불만 끄면 포근하게 잠들 수 있던 그 여행 중의 밤들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런 따뜻하고 온전한 위로를 내 집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공기는 달콤하고 바다는 보석처럼 빛나는 먼 이국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이 방 안에서 부드럽게 하루의 매듭을 짓고 잠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 좋았던 순간을 떠올린 뒤로 매일 밤 나를 위해 집안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진다. 호텔의 턴 다운 서비스처럼, 잠깐씩이라도 간단하고 사소한 서비스를 나에게 베풀어주는 것이다. 이 과정은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이미 시작된 휴식을 해치지 않는, 빠르고 간단한 정돈들로 이루어진다. 무심결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영수증을 치우는 것. 의자 등받이가 짊어지고 있는 하루 치 옷더미를 정리하는 것. 침대 위엔 반듯하게 매만진 베개와 이불만 남겨둔다. 


턴 다운에는 북북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 문지르고 물을 튀기는 설거지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낮의 시간을 돌이키기엔 하루는 너무 조금 남았고, 나를 챙기는 나도 너무 무리해서는 안 되니까. 그리고 그런 조용한 위로와 배려의 시간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불빛을 낮춘 방 안에는 조용한 아늑한 격려가 깃든다.


긴장의 연속인 실낱같은 하루하루, 짧은 턴 다운은 그 속에서 놓치기 쉬운 섬세한 보살핌을 스스로에게 베푸는 일이다.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이 없는 것만 같은 어느 날은 또 찾아온다. 겨우 익숙해지는 것 같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시 낯설어지는 듯한 그런 날, 나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구겨져 있던 이불을 포근포근 다시 펼치며 ‘오늘도 애썼어, 이제 푹 자’하고 토닥여줄 나를 만나러.




André Arbus, Design for a Bedroom in Blue with Twin Beds, 1935, © 2000–2020 The Metropolitan Museum 





※ <코스모폴리탄>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에세이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