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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Dec 29. 2019

다음 봄은 다음 집에 있다

“안녕, 잘 썼어. 잘 있었어”…텅 빈 방에 인사를 했네



얼마 전에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봤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이 한 줄로 쭉 적혀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십오 년, 내 초본은 두 장짜리가 되었다. 내 이십대와 삼십대는 둘째 쪽에 적힌 집들에서 지나갔다. 초본 첫 쪽에는 지금 내 나이였을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기록되어 있다. 젊었던 나의 부모님도, 지금의 나도 이사 참 많이도 다닌다. 평생 한 장짜리 초본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고, 석 장이나 넉 장짜리에 인생이 담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는 집도 이제 떠날 때가 가까워졌다. 이 집은 원래 직장 동료가 살던 방이었다. 한 번 놀러가 봤는데, 건물도 깨끗하고 방이 무척 아늑해서 놀랐다. 날림으로 엄벙덤벙 지은 신축 빌라에서 사느라, 집수리로 적잖이 지쳐 있던 때였다. “언니, 아늑함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벽 두께에서 오는 거였어요.”그의 말을 듣고 창을 열어 보니, 정말 창이 외벽 두께가 내가 살던 집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집을 옮기게 되거든 꼭 내게 넘기고 가라고 다짐을 받았다가, 정말로 그가 금방 결혼을 하면서 바로 들어오게 됐다.
  

이 집에서 나는 계약을 두 번이나 연장하며 잘 살았다. 살아보니 장점이 더 많은 집이었다. 도로를 등지고 있어 조용하고,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그러나 내년 봄에는 이사를 간다. 역에서는 한참 멀어지지만, 낮 동안 볕이 잘 드는 집을 택했다. 대학 새내기 때 잠시 살던 고시원까지 합하면, 서울에서 얻은 딱 열 번째 집이다.



자취를 하며 살아본 집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0년 전에 살았던 빌라 꼭대기집이다. 다용도실에 천창이 나 있어, 비가 오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온 집안에 근사하게 울리곤 했다. 하지만 그 집에선 1년 밖에 못 살고 이사를 해야 했다. 초인종 밑에 누군가가 네임펜으로 남긴 표식을 발견되면서였다. 남자는 X, 여자는 O. 그렇게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여자 둘 하는 식으로 집집마다 기호가 쓰여 있었다. 경찰은 표식이 보일 때마다 제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때 말고는 안전 문제로 이사를 결정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은 결로현상이나 층간소음, 월세 인상 요구 때문에 이사를 했다. 그 중 최악이 지금 집 직전에 살았던 신축 빌라였다. 어찌나 부실하게 지었던지, 한 달이 멀다하고 하자가 발견되어 보수 공사를 해야 했다. 봄에는 환풍기가 역류하고, 여름엔 마루가 벌어지고, 가을엔 누수로 바닥에서 물이 차올랐다. 겨울이 되자 최종 보스인 결로가 나타났다. 보일러만 틀면 벽지 위로 결로가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수준이었다. 그 집에서 산 1년 동안 가장 무서웠던 걸 꼽으라면 ‘삼한사온.’한파가 지나고 날이 조금 풀리면 젖은 벽 위로 금세 곰팡이가 스멀스멀 비쳤다.
  집은 늘 살아봐야 제 얼굴을 보여주었고, 사계절을 보내보기 전엔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실패의 경험들 덕분에, 집 보는 안목이 제법 쌓였다. 이제는 집을 고를 때 매의 눈을 하고 건물 밖부터 집안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곤 한다. 어릴 적, 이사 갈 집을 촘촘히 스캔하던 엄마의 그 날카롭던 눈초리를 기억한다. 성장이 끝난 후에도 닮아갈 것이 더 남는 것인지.


집을 고를 때 중요한 건 가장 중요한 건 꼼꼼함보다도 여유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간적 여유라도 확보해야 한다. 몇 번 집을 옮겨보면서, 나는 점점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을 때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정해진 자원 안에서 가능한 좋은 집을 찾으려면 최대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고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지금 사는 집도 계약 종료 반 년 전부터 공인중개사에 연락을 하고, 초겨울부터는 집을 보러 다녔다.
  

집을 보는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방위, 층높이, 채광, 통풍 같은 기본 사항들부터, 보일러 연식 같은 자세한 조건들까지 목록을 만들어 꼼꼼하게 체크를 한다. 일단 남향집이라고 다 같은 남향받이가 아니다. 정남향, 남동향, 남서향이 있고, 해가 드는 정도가 전혀 다르다. 심지어 실제로 집을 보러 가서 나침반을 켜보면 전혀 다른 방위인 경우도 많았다. 그 외에도 살필 것은 많았다. 수압은 정상인가, 배수도 정상인가. 건물 외벽 쪽에 결로가 생긴 흔적은 없는가. 거실 곳곳에 바퀴벌레 약이 붙어있지는 않은가.
  

품질검사원처럼 목록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집을 보면, 일단 공인중개사나 집주인들은 싫은 기색을 비친다. ‘아유, 원룸 투룸 안 이런 데 없어요.’나 ‘그런 건 자기 집 살 때 따지는 거지, 뭐 잠깐 살 집에 그렇게까지…’하는 핀잔 섞인 말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런 말들에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는다. 빨리빨리 거래를 성사시키고 싶은 그들의 입장도 있겠지만, 앞으로 그 집에서 살게 되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부자가 될 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


서울에서의 아홉 번째 집. 운 좋게 발견한 거지만, 처음으로 집을 잘 얻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 집을 떠나는 날 역시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이사는 몇 달 남았지만 조금씩 잔짐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이사 가는 날을 종종 상상한다. 내 삶을 비워내고 난 텅 빈 집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예전의 나는 살았던 집들을 지긋지긋해하며 떠났다. 애써 발품을 팔아놓고도 고작 그런 집을 고른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삿짐을 싸기 시작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내 삶의 흔적을 걷어낸 그 자리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집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사 가는 날 짐이 다 빠진 빈 집 안에 서 있는 순간은 왠지 각별하다.
  어릴 때 이사를 가면, 엄마는 짐을 실어나간 방바닥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놓고, 우리 집한테 인사를 하자고 했다. 텅 비어 낯설어 보이는 방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안녕’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스무 살에 처음 살았던 고시원 방을 나가던 날, 나는 짐이 빠진 방을 둘러보며 나도 모르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잘 썼어. 잘 있었어.” 그렇게 소리 내서 말을 하고 문을 닫았었다.
  


삶은 집에 깃들지 않는다. 저녁에 들어가 눕는 집이 지금의 내 삶에 하루하루 내 삶에 스며들어간다. 두 장짜리 주민등록초본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내 삶 속에 한 줄 한 줄 남은 집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주소와 날짜 한 줄로 새겨질 새 집을 생각한다. 조금 숨이 찰 정도로 언덕을 올라가야 하지만, 그 집엔 화분을 놓아기를 수 있는 다용도실이 있다. 비록 회사에선 해가 전혀 들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내가 출근한 사이 빨래는 햇빛을 받아 부숭부숭 말라갈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나의 다음 봄은 그곳에 있다. 언덕 조금 위, 조금 더 밝은 집.



Paul Cézanne, Entrance to a Garden, 1878–1880, © 2000–2020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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