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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26. 2021

취업에 성공하다.

20대에 아마도 가장 기뻐했어야 하는 날

 5월 7일 월요일, 어버이날을 하루 남긴 날 저녁 5시 반 나는 초조하게 S사 최종 합격 결과를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수험번호를 입력해 보아도 아직은 발표가 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팝업 창만 뜬다.


6시에 발표되는데 도저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가 없다. 간혹 발표가 빨리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일 이분 마다 재확인을 하였다. 5시 50분 정도쯤에 무심코 수험번호를 넣고 결과확인을 클릭했는데 기다려 달라는 한 줄짜리 메시지가 아닌 두 줄짜리 메시지가 있는 팝업 창이 떴다. 심장이 순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마음을 다 잡고, 팝업창의 글을 읽었다. 합격이다. 항상 불합격이었기 때문에 믿기지가 않았다. ‘(합격을)축하합니다’라는 글이 자꾸 ‘(지원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라는 글로 변할 것만 같아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나는 두 번 더 내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한 번 더 사이트 접속부터 다시 해서 재확인을 하고, 다음 일정인 신체검사에 대한 안내사항을 확인하고서야  


“합격이다.”라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무심히 내뱉듯이 말한 것인데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가 다 듣고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실이냐고 물었다. 확실하다고 얘기하고,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일단, K군에게 전화해서 합격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취업카페에 합격 후기라도 남겨야겠다. K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장이 되어서 두 번이나 K군의 전화번호를 잘못 터치하였다. 평소보다 신호음이 길게 갔다.


“여보세요.” 드디어 K군이 전화를 받았다.


“좀 전에 합격 발표 확인했다. 너는 확인했나?”


“아니, 아직 확인 안 했다. 너는 합격했나?”


갑자기 겁이 났다. 나는 내가 합격 했다는 사실에 기뻐서 소중한 친구가 합격했을지, 불합격 했을지, 불합격 되었다면 심정이 어떨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짧은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내 목소리에 기쁜 뉘앙스가 풍기지 않게, 감정을 최대한 죽인 담담한 목소리로


“나는 합격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 축하한다. 나도 확인해보고 전화 줄게.” K군이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K군은 떨어졌구나. 나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K군이 나보다 더 늦게 결과를 확인한 적도 없었고, 무심한 K의 말투, 그건 정말 정상이 아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숨기는 그런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K군은 나보다 항상 성적이 좋았다. 언제 한 번 이겨보냐고 3년 내내 얘기했는데, 오늘 드디어 이겼다. 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다. 괜스레 서머하다.


5분 정도 지나서 K군의 전화가 왔다. 물론 예상한대로 불합격했다고 한다. 나는


“장담하는데 너는 나보다 더 좋은 곳에 취업하게 될 꺼다. 나도 합격했는데 너는 당연히 취업된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내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로 K군을 위로했다. 나도 안다. 하나도 위로가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날 핸드폰이 이렇게 무거운 물건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팔이 자꾸 부들부들 떨린다. 전화를 끊고 나서 보니 핸드폰 액정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S사 합격 후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저녁을 샀다. 메뉴는 삼겹살에 소주였고, 거의 대부분의 친한 친구들이 왔다. 물론 K군도 왔다. 친구들은 불합격한 K군에게는 위로의 말을 그리고 나에게는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 열심히 맛있게 먹고 마시었다. 소주가 오늘따라 묽숙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언제나 그렇듯 군대 이야기, 여자 이야기, 게임 이야기 등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갑자기 재미가 없어져서 멀뚱히 앉아 기계적으로 맞장구만 치면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같이 느껴졌고,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의 일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렇게나 바라던 회사원의 삶,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시시하게 느껴졌고,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술잔만 만지작거리다가, 친구들의 이야기에 대충 대꾸만 하며, K군의 얼굴을 계속 살폈다. 슬프다. 손을 내밀어서 K군을 잡고 내가 있는 곳까지 끌어올리고 싶은데 K군과 나 사이에 커다란 강이 있는 것 같다. K군이 저 멀리 보이지만 내가 어떠한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나는 어머니가 빌려주신 카드로 멋지게 결제를 하였다. 직장인들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정말로 이렇게 여러 사람이 같이 먹고 혼자서 당당하게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는 것이 멋지게 보였었다. '일시불요' 이렇게 말할 때는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이제 S사 임직원이다.


다음날이 밝았다. 아침에 늦잠 자는 게 도리어 어색해서 8시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S사와 함께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인 H사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되었는지 확인했다. 어? 발표가 났다. 나는 탈락이다. 에이 씨. 까짓 H사 안 가면 되지. 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결과를 받아 들였고, 곧 H사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렸다. 나는 이제 S사 임직원이다.


- 취업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생생히 기억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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