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거북이 May 02. 2021

용두산 공원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고향 부산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하다가, 지난주에 잠시 다녀올 수 있었다. 우연히 옛 추억에 젖어 옛날 사집첩을 뒤적이다가, 어릴 적 용두산 공원에서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찾을 수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이 무척이나 좋아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공원에 있는 꽃시계를 좋아했었고, 공원에 떼 지어 사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도 좋아했었다.


비둘기 모이는 조그마한 자판기에게 살 수 있었는데, 마른 옥수수 알이었고, 한 봉지에 100원 또는 200원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물가로는 꽤나 비싼 편이었다. 외할머니와 자주 같는데, 매번 사달라고 졸랐으나,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사 주신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비둘기에게 뿌린 모이를 몰래 한 알씩 주워 모아서, 다시 비둘기에게 주곤 했었다. 그렇게 하다가 한 번은 대학생 누나에게 걸려서 야단을 맞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좀 야박한 일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용두산 공원에 갈 일이 없었다. 꽃시계를 보는 것도,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도, 초등학생에게는 시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꽤나 자주 소풍이나 사생대회를 하러 오기도 하였는데, 초등학교에서는 대신공원이나 민주공원을 갔었다. 한꺼번에 수백명이 시내 중심에서 가까운 용두산 공원으로 가기는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중, 고등학생 때, 위암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더 이상 외갓집에 갈 일이 없어졌고, 나는 가끔 사진첩의 사진으로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젊을 때, 선장을 하셔서 여러가지 수석을 많이 가지고 계셨고, 그 중 몇 개는 우리집에 가져왔다. 하지만, 외할머니 물건 중에서 남겨진 것은 하나도 없다.


대학생 때, 아주 가끔, 근처에 다른 일로 왔다가 시간이 많이 남고, 돈마저 없을 때, 용두산 공원에 갔었다. 꽃시계, 비둘기, 타종각, 부산타워, 용과 이순신 장군 동상 등등, 예전 어릴 적 기억과 똑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혼자서 공원 이곳 저것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솔직히 별로 재미는 없었다. 지금 나도 이렇게 재미없는 곳인데, 외할머니께는 얼마나 재미없는 장소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용두산 공원에 가자고 조르기만 했지, 외할머니 입장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릴 때 살던 집, 유치원, 외갓집, 친한 친구의 집, 동네 놀이터, 모두 이제는 부서져 버렸고, 다른 알고 있을 가치도 없는 건물들이 들어서 버렸다. 5~7살 내가 좋아하던 장소 중 거의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 있는 장소라 그런지, 용두산 공원에 가면,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그 시절로 잠깐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든다.


추억이란 지나간 시간, 지나간 기억, 만날 수 없는 사람,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 생각한다. 용두산 공원에 오르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딱 한 번만 더 외할머니와 같이 이 곳에 왔으면 좋겠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았는데, 사진 속 용두산 공원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별로 다른 게 없어서, 더 가슴이 아프다. 외할머니만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고, 지나간 시간만큼 이제는 기억도 흐릿해 가고 있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부산을 떠났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도, 이젠 TV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잘 아는 장소가 우연하게 TV에 나오면, 아직도 무척이나 반갑다. 연말 재야의 종소리 타종을 할 때, 나는 항상 부산 용두산 공원 타종식을 본다. 내가 살고 있는 경북 구미는 그렇게 멋진 종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멀리서라도 한 해의 마지막 순간에 고향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며, 마음을 다지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딸들에게는 용두산 공원에서 좋은 추억을 남겨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번 같이 왔었는데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혹시나 세월이 많이 흘러서 외할머니처럼, 손자, 손녀 손을 잡고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내가 부산에서 부모님과 살았던 아파트도 이제 재개발이 된다고 한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학생 수가 자꾸 줄어서 통폐합 이야기가 매년 나오곤 한다. 세월을 이겨내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용두산 공원은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



- 제30회 부산자랑 10가지 순회시민 예술제 장려 -

작가의 이전글 족저근막염에 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