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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0. 2021

신종플루

코로나19와는 전혀 달랐던 2009년 신종플루 상황

 2009년 10월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나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내가 응원하는 롯데 자이언츠가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내가 직접 야구장에 응원하러 갔다가 신종플루에 걸려 죽을 정도로 아팠던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야구 관전 후, 경북 구미의 회사로 다음날 복귀하였고,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 때부터 약간 목이 아프면서 기침이 나왔는데, 솔직히 그냥 감기이거나, 몸살 기운으로 생각했었다.


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팬데믹 상황이었지만, 솔직히 ‘설마 내가 감염될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막 우리나라에 퍼져 나가기 시작하던 때라, 경북에는 확진자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신종플루는 그저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재수없게, 누군가가 걸리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라 내 주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문제의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산 모자, 재고인지 2008년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좀 더 몸 상태가 안 좋았다. 그래도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씩씩하게 출근을 하였다. 신종플루 감염자 선별을 위해 회사 입구에는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열이 좀 있었는데, 만약 내가 문제가 될 정도로 체온이 높다면 열화상 카메라 감별에 걸릴 것 같았다. 지나가면서 스크린을 통해 내 체온을 봤는데 ‘정상’ 이었다.


너무 이상해서 다시 통과했는데도 이상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찝찝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추석 연휴를 마친 후 첫 출근이라 사무실은 평소와 다르게 느슨한 분위기였다. 반갑게 이미 출근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오전에 K양, 너랑 셋이서 실험실에서 나 좀 도와주라.”


앞자리의 P대리가 당연히 내가 바쁜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간단한 아침 조회가 끝나고, 실험실에서 P대리를 도와서 몇 가지 테스트를 진행하였는데, 갑자기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열이 계속 올라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선배가 부탁한 일인데 최대한 아픈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30분만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상을 감지한 P대리가


“이제부터는 나 혼자 해도 되니까, K양이랑 둘이서 의무실에 다녀와라.”라고 말했다. 입사 동기인 K양은


“오빠, 혹시 신종플루 걸린 거 아냐?”라고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정말로 신종플루였는데, 나도 그렇고, K양도 그렇고, 절대 신종플루는 아닐 것이라, 그 당시에는 마음대로 결론짓고 있었다. 의무실에 도착해서 체온을 재어보니 37.5도가 나왔다. 체온이 높은 편이어서, 혹시 모르니 회사 지정병원에 다녀오라고, 의무실 간호사님이 말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부서장님께 보고 드리고, 병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야, 혹시 신종플루 아냐? 일하기 싫다고 연기하는 거면 나중에 가만 안 둔다.”라고 말씀하시며, 장난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휘휘 저으셨다. 병원에 도착했다. 간호사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서, 열이 나는데 신종플루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체온을 재었다. 그리고는


“헉.”


체온계를 본 간호사가 갑자기 짧은 감탄사를 날리며, 살짝 뒷걸음질 치며, 마스크를 고쳐 쓰더니, 몇 도 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다시 측정해 보자고 하였다. 귀에 체온계를 꽂고, 다시 측정하더니,


“지금 안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아파요. 한 시간 전부터 갑자기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프네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체온이 39.5도예요. 굉장히 높은 건데, 신종플루 검사를 해야 됩니다.”


갑자기 심각해진 분위기에 나는 처음으로 신종플루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이검사와 정밀검사가 있는데, 간이검사 결과는 몇 시간 뒤에, 정밀검사 결과는 하루 뒤에 나오는데, 간이검사는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하였다. 검사를 받고, 마스크와 타미플루를 받은 후, 병원을 나서는데, 이제 정말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일단, 확진이 되면 회사에 출입할 수 없다는 규칙이 얼마 전 회사에 생겼는데, 회사에 전화를 하면, 아예 출입을 제지할 것 같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무엇보다 사내 기숙사에 거주하던 때라, 옷이나 필요한 짐을 가지러 들어가는 것도 안 되고, 기숙사에 못 들어가니 당장 오늘 밤에 잠 잘 곳도, 갈아 입을 옷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갑과 핸드폰은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라도 안 가지고 나왔더라면 정말로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졌을 것이다. 사내 담당자에게 전화했는데 이쪽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검사결과가 안 나왔다고 틀림없이 얘기했는데, 계속 확진인지 아닌지를 물어보았다.


이젠 기침까지 막 터져 나와서 말 하는 것도 힘든데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려니 슬슬 짜증이 났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는데, 일단 회사 들어오지 말고, 커피숖 같은데 가 있다가 간이검사 결과 나오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하였다. 몇 시간 뒤 간이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고, 사내 담당자에게 결과를 알려주었더니, 일단, 자기도 보고를 해야 하니, 다시 전화 주겠다고만 하였다.


또 한참을 혼자 기다려야 되어 너무나 힘든데, 다행히 심심할 일은 없었다. 부서장, 회사 동료들, 사내 건강관리 센터, 협의회, 인사과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화가 와서 핸드폰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계속 똑같은 상황 설명을 하였고, 어떻게 하면 되냐는 내 물음에 아무도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알아보겠다는 게 모두의 답이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사내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고, 오늘밤은 근처 모텔에서 자고, 경비처리는 회사 경비로 처리해 주겠다. 오늘 사내에서 만난 사람 모두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할 때, 결국 내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버럭 화를 내며,


“아니,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 4천명이 넘고, 내가 오전 내내 정상근무 하고, 사내 식당에서 아침도 먹었는데, 만난 사람을 어떻게 다 기억을 하겠냐? 그리고, 아파 죽을 것 같은데 혼자서 근처 모텔에서 자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고함을 쳤다.


 당황해서 어떻게 할 지 몰라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담당자와의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근처 모텔로 갔다. 대충 밥 먹고, 샤워하고, 오후 4시쯤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한참 자다가 깨어보니 8시였다. 벽에 걸린 시계만 보고, 아침 8시인지, 저녁 8시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픈 상태로 깊이 잠들었던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타미플루 덕분인지 열은 많이 내렸고, 이젠 일상생활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회사에서는 정밀검사 결과 나왔냐고 아침부터 전화가 오고, 성질 급한 부서장은 병원에 전화해서 빨리 결과 받고, 음성이면 빨리 출근하라고 하였다.


좀 많이 서운했다.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고, 신종플루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닌데, 나보다는 업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소문이 회사에 다 퍼져서 회사동료들에게 안부전화도 많이 왔다. 같은 회사 사람이지만 이름도 잘 모르고,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전화 와서, 혹시 어제 회사에서 나랑 마주친 적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정말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바로 전화를 끊었는데, 그 날 하루 종일 그 일 때문에 화가 났다.


검사결과는 오후 늦게 나왔고, 물론 양성이었다. 나는 그제야 기차를 타고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다음날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고, 다 나을 때까지 최소 일주일 정도는 걸릴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회사에서 진단서를 가지고 올 경우에만 공가 처리를 해 준다고 하였기 때문에, 진단서를 고이 받아 들고, 이 나쁜 소식을 전화로 부서장님께 알렸다.


“뭐? 일주일이나 걸린다고? 그거 타미플루 먹으면 바로 열 내리지 않아? 지금 상태가 어떤데? 열은 많이 나고?”


의사라고 되는 양, 다그쳐 내 상태를 물었다. 열은 다 내렸지만, 기침은 계속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하루에 한 번 나에게 상황 보고하고, 인사나 총무에서 전화하면, 열 다 내렸다고만 얘기해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많이 기분이 나빴다. 아마 바쁜 시기에 부서원 한 명이 일주일이나 더 예정에 없이 결근하는 게 싫긴 하겠지만, 내가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리고, 인사나 총무에 마치 내 상태를 사실보다 좋게 말할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릴없이 PC를 켜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핸드폰이 울렸다. K양이었다.


“오빠, 신종플루 걸렸다며? 오빠 때문에 우리 부서 난리가 났어. 호호.”


가볍게 놀리는 말투로 얘기를 꺼내며, 우리 부서는 점심시간이 끝나면, 별도로 이동해서 따로 식사를 하고 있으며, 모든 회의에 참석 불가, 출퇴근 버스 이용 불가, 그리고, 내 기숙사 방은 방역을 실시했다고 하였다. K양 말고도 내 앞자리의 J군도


“아직 안 죽었네?”라며 장난스럽게 물으며, 안부전화를 했고, 그 외 많은 사람들이 걱정 반, 우려 반 전화를 주었다. 하루 종일 전화 받은 기억 밖에 안 난다.




다음날 K양은 갑자기 열이 나서 병원을 찾았고, 그 다음날 결국 신종플루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틀 뒤엔 J군이 A형 독감 판정을 받았는데, 같은 날 J군의 기숙사 룸메이트가 신종플루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이후에 다시 재검사를 받아 결국 신종플루 양성 판정을 받았다. 불쌍한 J군은 양성 판정을 받고 나서야, 타미플루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K양과 J군은 나와 같은 부서였기 때문에, 우리 부서장은 진짜로 화가 났었다. 그 날도 지시를 받은 대로 몸 상태를 전화로 보고 드리며, 4~5일 정도 더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했더니 화를 내며,


“부산에 있는 병원은 못 믿겠으니, 구미에 있는 병원으로 와서 다시 진찰받아.”라고 말했다.


부산의 병원이 더 규모도 크고, 시설이나 의료진도 더 좋은데 말도 안 되는 지시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구미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소견은 똑같이 4~5일 정도 경과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부서장에게 보고를 드렸고, 부서장이 이렇게 사람 빠지면 업무를 할 수가 없다고, 관련 부서에 엄청나게 컴플레인을 한 결과, 나는 그 날 저녁에 내일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부랴부랴 기차를 타고, 그 날 저녁에 구미로 올라갔다. 다른 증상은 다 사라졌으나, 아직 기침이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할 것 같아, 병원에 가서 꽤나 긴 시간동안 담당 의사에게 설명을 하고 나서, 강력한 기침약 처방을 받았다. 처방전에 붉은 글씨로 ‘마약류’라고 적혀 있었고, 약을 받기 위해 몇 가지 귀찮은 과정을 거쳤다.


이 약을 먹으니 기침은 싹 사라졌는데, 일시적으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부작용은 아닌지 겁이 났던 기억이 난다. 신종플루를 겪고 나서 기침을 하도 많이 하였기 때문인지, 목 상태가 안 좋아졌다. 침을 삼킬 때, 열에 세번 정도는 목이 아주 따갑게 느껴져서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다. 적응을 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고, 이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기까지 몇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 끝 -


제1회 질병체험수기 우수상


제1회 질병체험수기 공모전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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