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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0. 2021

칼 ; 트라우마

펜은 칼보다 강할까?

나는 칼을 무서워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어릴 때부터 칼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5살 때, 복숭아를 먹고자 과도로 복숭아 껍질을 깎으려 하다가 그만, 왼손 검지를 베었다. 난생 처음 겪는 아픔과 솟아 나오는 피에 깜짝 놀라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일 이후로 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10살 정도가 될 때까지 칼은 거의 한 번도 손에 잡은 적이 없었다. 미술시간에 칼을 써야 할 때도 나는 가위로 자르거나, 부득이 하게 칼을 써야 할 때면 친구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칼을 두려워하는 내가 좀 부끄러워졌다. 이까짓 칼을 언제까지나 두려워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과도로 혼자 과일 깎는 연습을 했었다. 조심조심 신경을 쓴 탓인지, 생각보다 잘 깎였다. 자신감이 붙어서 그 이후 가족들 앞에서 보란듯이 사과 껍질을 깎는데 두 살 어린 여동생이 피식 웃었다. 그게 뭐가 겁이 나서 검지 손가락을 그렇게 칼에서 멀리 두고, 마치 꽃게 집게처럼 손가락을 두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와라!  꽃게 검법


머리 속으로는 칼이 무섭지 않는데, 내 손가락, 아니 정확하게는 내 검지는 예전 일을 절대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칼을 든 오른손 검지는 최대한 칼등에서 먼 위치에 있었고, 사과를 든 왼손에 있는 왼손 검지는 아예 사과에서 떨어져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남들과 같이 정상적인 거리를 만드는데, 몇 년의 세월이 더 소요되었던 것 같다.


십대 중반이 되면서 칼을 써야 할 일이 또 생겼다. 코와 턱 면도를 해야 했는데, 당연히 나는 전기면도기를 사용하였다. 평생 전기면도기만 사용할 줄 알았는데, 군대에 가니 스테인리스 칼날의 일회용 면도기만 지급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그 면도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 동안 수백 번 면도를 하였는데, 딱 두 번 얼굴을 베였다.


사실 일회용 면도칼에 베여봐야 잘 표시도 안 나고, 따끔하고, 하루 이틀 딱지만 앉는 정도인데, 나는 이 두 번 모두 아직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면도하는데, 누가 말 시키는 바람에 베였고, 한 번은 휴가 가기 전 날 들뜬 마음에 그만 실수를 했었다. 두 번 다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었다.


장기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남는 일회용 면도기를 몇개 남겨서 가져온다. 별로 쓸 일은 없지만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좋아진 것 같다. 복숭아 깎다가 베인 것도 30년이 넘은 일이고, 군대에서 일회용 면도기에 베인 것도 20년 전 일이다. TV를 보면서 과일을 깎기도 하고, 아침에 다른 사람들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기면도기를 사용하지 않고, 수동 면도기를 사용한다.


정말 부끄럽지만, TV를 보면서 과일을 깎다 보면, 가끔씩 또, 검지가 남이 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위치에 가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수동 면도기 사용도 별 문제는 없지만, 면도 크림은 쇼핑할 때 내가 정말 꼼꼼하게 고르는 물건 중 하나이다. 트라우마가 아직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이젠 이런 내 행동을 나는 습관이라고, 스스로 단정 짓고 있다.




가끔 아직도 왼손 검지에 남아있는 흉터 자국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그 때 차라리 베인 것이 잘 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일 덕분에 40년 가까이 칼에 대해 조심을 하고 살았는데,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더 크게 다치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주 희미해진 옛날 베인 상처


무엇이든 잘못 사용하였을 때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모든 기술과 과학이 그렇듯, 옳은 일에 바르게 사용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칼을 통해 얻은 하나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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