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te Colonialism
작년 여름, 석사 프로젝트에 몰두하던 여름날, 런던에서 내게 엄마 같은 존재인 패피(Pepe)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들을 도와줄 수 없을까? 제발 도와줘.”
그녀가 보낸 사진과 영상 속에는 끝없이 쌓인 옷더미, 땅을 뒤덮은 직물 조각들, 바닷가로 밀려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낡고 해진 의류들이 담겨 있었다.
패피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가나 출신이다.
내 프로젝트 역시 가나의 비스포크 패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기에, 현대 패션 산업이 가나의 남긴 폐해는 더욱 참혹하게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님의 고향을 찾았을 그녀가 마주한 현실과 그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이날 나는 패션 산업이 만들어낸 ‘쓰레기 식민주의(Waste Colonialism)’를 직면하게 되었다.
쓰레기 식민주의란?
쓰레기 식민주의란 부유한 국가들이 ‘기부’나 ‘재활용’이라는 명목으로 사용한 제품과 폐기물을 개발도상국으로 보내면서, 해당 국가들이 환경적·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89년 바젤협약(Basel Convention)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최근 패션 산업의 폐기물 문제와 맞물려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헌 옷을 기부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판매되지 못한 중고 의류들은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칠레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로 수출되며, 이는 현지 의류 산업을 약화시키고 폐기물 관리 시스템이 부족한 국가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 역시 매년 30만 톤 이상의 중고 의류를 수출하며, 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양이다. 이러한 의류는 주로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파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와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여러 국가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쓰레기 식민주의를 가속화시키는 패스트 패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UY NOW에서도 다뤄졌듯이,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연간 제품 출시 속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GAP: 12,000 스타일
• H&M: 25,000 스타일
• ZARA: 36,000 스타일
• SHEIN: 1,300,000 스타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숫자가 연간 출시되는 ‘스타일 수’ 일뿐, 실제 생산되는 의류 벌 수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한 스타일당 몇십~몇백 벌씩만 생산한다고 해도, SHEIN의 경우 매일 수천 개의 새로운 스타일이 추가되면서 총생산량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울트라 패스트 패션(Ultra-fast fashion) 시대의 도래로 생산 속도는 극도로 빨라지고, 품질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빠른 생산과 짧은 유통 주기를 추구하는 현대 패션 산업은 소비자들의 과소비를 부추기고, 내구성이 낮고 쉽게 버려지는 옷들이 대량 생산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저품질 합성섬유 의류가 시장을 뒤덮고, 재판매보다는 폐기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결국 쓰레기로 전락한다. 특히, 이러한 의류에 사용되는 합성섬유는 플라스틱, 즉 석유 기반 소재로 만들어져 미세플라스틱 오염을 가중시키며, 염색에 사용되는 화학 염료는 생태계에 해로운 독성 물질을 방출한다.
결국, ‘기부’라는 이름 아래 수출된 의류들은 ‘환경 재앙’이 되었다.
동물들이 섬유를 삼키고, 바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옷들로 가득 차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오염 문제가 아니라, 인간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지 산업의 붕괴와 사라지는 가치
옥스팜(Oxfam)의 연구에 따르면, 중고 의류 시장이 확장되면서 서아프리카를 포함한 여러 개발도상국의 직물 및 의류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케냐에서는 30여 년 전 50만 명이 의류 산업에 종사했지만, 2017년에는 2만 명만이 남았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쇠퇴가 아니다.
현지의 장인 정신(Craftsmanship)과 전통 의류 문화가 사라지는 과정이다.
전통 직물 생산과 디자인 기술이 점점 설 자리를 잃으며, 패션 산업의 다양성과 가치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더 많은 옷을 만들고, 소비하고, 폐기해야 할까?
개발도상국으로 유입되는 대량의 중고 의류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폐기물로 남아 환경을 오염시키고, 현지의 전통 직물 및 의류 산업을 붕괴시키고 있다. 패스트 패션이 가속화되면서, 개발도상국들은 ‘기부’라는 이름 아래 점점 더 큰 부담을 떠안고 있으며, 많은 도시들이 버려진 옷들로 뒤덮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랜 역사와 기술을 담은 장인 정신이 깃든 지역 산업이 사라지고 있다.
쓰레기 식민주의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경제적 착취의 구조적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지속 가능한 패션과 사회적 변화를 연구하는 슈퍼바이저에게 이 문제를 공유했고, 그는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다. The Revival (https://www.therevival.earth), The OR Foundation (https://theor.org/), 그리고 Buzigahill (https://buzigahill.com/)과 같은 단체들은 패션 산업의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기부’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빠른 생산과 폐기를 지양해야 한다. - 지역 기반 생산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현지 직물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옷을 기부하거나 폐기하기 전 내가 입었던 이 옷이 어디로 가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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