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 들어왔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언젠가 문득 (퀴즈를 빙자한) 토크쇼 방송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워딩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혜리가 새로운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다. 그 드라마에서 혜리는 귀신을 보는 능력으로 죽은 자들의 여한을 풀어주는 장례지도사라고 했다. 혜리는 역을 소화하기 위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다수 인터뷰했는데, 대부분이 사랑한다는 말을 미처 못 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단다. 그것을 듣고 혜리도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평소에 많이 표현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꼬리를 물고 네덜란드 장례보험회사 [델라(DELA)]의 광고영상이 떠올랐다. 그 회사는 사람들에게 “너무 늦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 놀라운 말을 하세요.(“Why wait until it’s too late? Say something wonderful today.)”라는 캠페인을 벌였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놀라운 광고를 만들었다.
In fact, you’re always there for me.
정말 당신은 언제나 저를 위해 계셨어요.
Dad, I don’t say it often but I love you.
아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못했어요.
You are a great son in tough times. And in ordinary times too.
너는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언제나 훌륭한 아들이란다.
(이 광고는 2013년 칸 광고제 미디어 라이언스 부문의 대상을 수상한 광고이며,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 장례보험회사에서 가족 관계의 회복을 위한 캠페인을 하는 걸까? [델라]는 장례보험 판매만이 아니라 죽음과 이별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좋은 죽음 혹은 후회 없는 죽음에 대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캠페인 후 [델라]의 보험판매량이 증가했다니 꽤 훌륭한 광고효과다.
혜리의 방송을 봤을 때 내가 읽던 책은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의 책 2권,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와 <소중한 사람이 죽은 후 후회한 21가지>였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 그리고 죽음으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을 수십 년 지켜보았던 경험으로 가는 사람과 남은 사람의 감정에서 후회라는 강력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죽음과 후회는 아주 밀접하게 붙어 다니는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후회 없이 죽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만들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고 회한의 고통으로 삶이 흔들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가 우리를 더 미치게 한다. 죽음이란 것은 어떤 짓을 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불가항력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제발 다시 잠깐만 살아봐, 라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죽음은 목표가 될 수 없지만 좋은 죽음은 목표가 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아니 일말의 후회도 없을 수는 없으니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으로 하는 것이 맞겠다.) 죽음을 준비할 수는 있다. 그것이 웰다잉의 요체가 아닐까 한다. 웰다잉은 하고자 하면 할수록 죽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대부분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열렬히 살지 않으면 못 하는 것이 웰다잉이며, 대략 50이 넘은 사람들이 잘 살자고 말하는 것은 ‘잘 죽자’로 대체할 수 있다.
잘 죽기 위해 “늦기 전에 말하세요.(Why wait until it’s too late?)”
혜리는 먼저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낸 이들의 후회를 듣고 지금 가족들에게 많이 표현한다고 했다. 진행하던 유재석이 물었다.
“뭐라고 말해요?”
“엄마 예쁘다. 아빠 파이팅”
“엄마는 예쁘고, 아빠는 왜 파이팅이에요?”
“아빠는... 안 예뻐요. 헤헤.”
유쾌한 배우다. 죽음과 후회에 관해서는 생각이 깊다. 깊은 지혜를 유쾌하게 말할 줄 아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