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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May 04. 2024

끝내주는 수목원, 오산 사람들은 좋겠네

[나의 안식월 이야기] 초록으로 물들뻔 한 물향기수목원


끝내주는 날씨다.

봄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일할 때는, 특히나 재택근무를 오래 하면서부터는 계절을 크게 느끼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밖에서 시간을 덜 보내기 때문이다. 쉬면서는 달랐다. 4월~5월에 걸쳐 안식월을 보내면서 봄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지 너무나 실감했다. 쉬는 동안 주로 산에 다니고 산책을 많이 해서 그런가.  



6학년 8반이었던 친구들과 오산 물향기수목원에 갔다. 어쩌다 보니 셋이 이렇게 놀러 다닌 지 3~4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모두 아직까지 한 동네에 살고 스케줄 근무를 하는 탓에 평일에 쉴 수 있어서다.


작년 가을 화담숲에 가고 오랜만에 모였다. 여사친 하나가 연말 음에 큰 수술을 해서 겨울은 건너뛰고 만났다. 남사친이 여사친 1, 2를 픽업해서 오산 물향기수목원에 갔다. 운전대를 잡던 남사친이 묻었다.


"근데 왜 오산 물향기수목원이야?"

"그냥... 가까워서?"


"가까운 건 인천대공원 아니냐? 고양이나? 지금 거기 꽃 축제 하는 것 같던데..."

"그래? 그럼 거기 갈 걸 그랬나? 난 그냥 예전에 가 본 곳이라 지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어."


"그랬구나, 하긴... 인천대공원이나 고양은 지금 가면 사람은 엄청 많겠다. 요즘은 사람 많은 곳 가기가 좀 그렇더라."


그냥 선택한 곳이었다. 별 기대 없이. 가볍게 산책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오면 좋겠다 싶어서. 그랬는데... 미안하다, 몰라봐서. 여긴 꼭 가야해요. 너무 예뻐서요. 팔로우 팔로우 미.


일단 한적해서 좋다. 사람이 없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평일 목요일 오전 9시 반. 입장 시간과 동시에 들어가서 그런지 붐비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이 적당히 부는 환상적인 날씨 때문에 손에서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었다. 뭘 찍어도 화보가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애들 어렸을 때 왔었는데, 그때랑 너무 다르네... 잘 정비를 해둔 것 같아. 그때는 흙길이었던 것 같은데... 애들 데리고 와서 정신이 없었을 때라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이렇게 나 홀로 오니까 그때랑 느낌이 너무 다르다."


여사친의 말이다. 진짜 그랬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잡느라 바빴는지 달리 기억에 남는 게 없는데... 이번에는 한 걸음 뗄 때마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어쩜 이렇게 예쁘지?"라는 말이 끊이지가 않았다.



특히 물향기식물책방 앞에서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물향기식물책방은 책을 파는 곳은 아니고 식물과 관련한 책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쉼터 같은 느낌이었는데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왔으면 한 모금 마시면서 사색하기 좋을 것 같았다.


물향기수목원 내부에는 편의점, 카페, 자판기 아무것도 없으니 마실 것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우린 그냥 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너무 아쉬웠다. 주차장 입구에 메가커피가 있으니 낮에 오시는 분들은 꼭 텀블러에 커피를 챙겨 오시길.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야외 공간도 있으니 가족끼리 소풍을 나온다면 보냉백에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괜찮지 싶다. 아무것도 준비 못 한 우리는 사진만 찍고 놀았다.


책방에서 마주 보는 이 장소는 특히나 너무 아름다워서 스몰 웨딩 장소로 하면 너무 좋겠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했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머리를 짜 보았다. 습지를 따라 나무 데크가 놓여 있는데 친구랑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서 나무 앞에서 만나는 연출을 시도해 보기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어떻게 재미나게 찍지?'를 고민하는데 나는 그 시간이 참 즐겁다. 열세 살 꼬마 아이들로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남사친에게 구도를 알려주고 "이대로 찍어" 당부했다. 한 장이라도 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삼백 장 정도 난사를 날린 친구 덕에 사진을 고르느라 머리가 띵. 덕분에(?) 맘에 드는 사진 몇 장은 건졌다.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세 번이라도 오고 싶을 만큼 마음의 평화를 주는 장소였다. '한여름에는 덥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그늘 아래서라면 폭염도 상관없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 각자가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서 공유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도 크다. 누가 누가 더 잘 찍었나 대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들이니까 이런 것도 가능한 거겠지? 간만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만끽한다. 이쁜 척, 귀여운 척, 분위기 있는 척 다 하면서 잡아보는 포즈. 워낙 처음부터 이러고 놀아서 어색하진 않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잘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지.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야야, 여기 서 봐. 진짜 너무 이뻐", "친구들아, 여기 봐라" 타이머 맞춰 놓고 셋이 찍는 건 또 다른 재미. 잘 나오면 잘 나온 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 웃고 떠드는 시간. 애들이나 어른이나 역시 밖에서 놀아야 더 재밌나 보다.  이 나이에 이렇게 놀 수 있는 친구들이 가까이 사는 것도 복이다 싶고. 살면서 이렇게 틈틈이 짬을 내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내 삶이 조금은 더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아래 사진은 그렇게 건진 이번 나들이의 베스트컷.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인근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 나온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꼬맹이 시절은 다 지나서인지 삼삼오오 모여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귀한 아이들에게 잘 대해줘야지. "얘들아, 안녕!"



그리고 메타세쿼이어 나무. 이렇게 가까이에 이런 숲이 있다는 걸 왜 몰랐지? 봄, 여름, 가을, 눈 내린 겨울에도 너무 예쁠 것으로 예상되는 길.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길을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내 안에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한 바퀴 돌아 다시 온 처음의 장소. 한 바퀴 더를 외치고 싶었으나 시간은 11시 반을 넘기고 슬슬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점심시간 식당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피하고 싶으니 이쯤에서 정리하기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한번 더 올게.



오늘의 코스 :

1. 대중교통 이용 시 1호선 오산대역에서 하차, 도보로 7분 거리.

2. 자동차 이용 시 주차장에 주차 후 (다시 간다면 메가커피에서 텀블러에 취향 대로 커피를 준비) 매표소로 출발! → 입장권 1500원 → 수목원 한 바퀴 산책하는데 느린 걸음으로 1시간 반~2시간 정도 소요 →  수목원 인근 '팔월가배'라는 곳에서 연어덮밥과 냉모밀(사진)을 먹었지만 다시 간다면 '다정면가'라는 곳에서 열무국수를 먹고 싶다. 더울 땐 열무국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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