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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May 08. 2024

틈만 나면 자연으로

[나의 안식월 이야기] 복귀

복귀를 하루 앞두고 다짐한 게 있다. 복귀하면 오전 6시에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바깥 산책해야지. 다음날 오전 6시에 알람이 울렸다. 그냥 잤다. 6시 40분. 눈이 떠졌다. 그냥 일어났다.


냉동실에서 베이글 두 개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0분. 꺼내서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놓고 말했다.


"얘들아! 아침 먹어."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출근하는 사람처럼. 원래는 우리 동 앞을 슬슬 걸으려고 했다. 좀 더 걷고 싶었다.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까. 아파트 뒤쪽 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숲 가는 길에 간단히 운동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도 있지만 이용해 본 적은 극히 드물다.

3분이면 도심에서 숲으로 공간이동. 캬. 좋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아파트와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엄훠나, 깜짝이야. 그 사이 잎들이 어찌나 수북해졌는지. 수염 안 깎은 남편은 나이 들어 보이지만 며칠 사이 늘어난 잎들은 청소년기에 들어선 우리 아이들처럼 싱싱하고 명랑하다. 그런데 그게 못내 아쉽다. 아이들도 숲도 연두연두할 때가 이쁜데...


그래도 비가 오면 숲은 한층 더 매력적이다. 엄청 섹시하다. 진짜다. 물이 잔뜩 오른 나무 몸통과 탱탱해진 잎. 밤하늘의 별도 아닌데 반짝반짝 빛나는 잎들. 작고 연약한 잎에 가만히 손을 대어 만져보는 느낌, 알랑가 몰라. 그냥 좋다. 으이구. 예쁜 것들.



아카시아 꽃은 6월 정도에 피지 않나? 벌써 펴서 그새 많이 떨어졌다. 비바람을 이기지 못했나 보다. 줄기째 떨어진 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꽃을 아카시로 고쳐 써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다. 망설이지 말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아카시아로 써야겠다.


아카시아 꽃 구경하고 가세요.



윤기가 좔좔. 반짝반짝 눈이 부셔.


초록으로 목욕재계 한 것 같은 아침.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집으로) 출근했다. 재택 하니 너무 좋다. 매일 이런 루틴으로 살아야지. 한 시간 반 출근 시간이 줄었는데 이 정도를 못하는 건 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출근 길이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좋으니까 계속 해야겠다. 아침 산책을 하며 '틈만 나면 자연으로'라는 글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서 가볍게 썼다.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나는 모처럼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부터 다시 출근, 복귀 1일 차다. 


이게 불두화인 건가.


내 눈에만 하트로 보이나. 하뚜하뚜. 어떻게 그냥 갈 수 있을까. 사진으로 남겨야지. 아웅... 이뻐.


- 복귀는 했지만 밀린 '나의 안식월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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